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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한 그루 나무와 같이

 

 

유년시절은 홀로 서러웠고 혼자라서 두려웠다. 나이 든 지금 나는 다시 그 마음과 두려움으로 살고 있다. 인내와 성실과 용기만으로는 안 통하는 사회의 현실 앞에서 이제는 조금 서러워도 괜찮을 것이요. 내 운명의 주어는 ‘슬픔과 그 에너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 아침 깨끗하고 따스한 바람이 불면 어머니가 보내준 바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정월의 따스한 햇살이 악수하듯 손목으로 내리면 먼저 간 여인의 체온 같다는 생각도 했다. 2015년 일이다. 8월 『사람과 수필 이야기』라는 수필집을 엮으면서 표지화 또한 내 필력으로 그렸다. 문인화로서 커다란 나무 아래 갓 쓰고 수염이 긴 초췌한 노인이 거목을 우러러보는 이미지의 그림이었다. 문학과 예술을 거목으로, 노인을 나 자신으로 비유한 의미화였다. 이 그림을 산뜻한 우편엽서로 만들었다. 출간한 책을 보내온 작가들에게 축하엽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 어느 날 임(林) 선생이란 분이 책 표지 그림과 엽서를 보고 느낌을 보내왔다. ‘방금 보내준 귀한 선물 잘 받았습니다. 친필 엽서의 그림은 꼭 김정희 선생 ‘세한도’를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어쩌면 추사보다 더 깊은 마음의 깊이로 다가왔습니다.’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살아남으려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나 끊임없이 자기가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욕망을 재생산한다. 이러한 현실적 욕망과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의 상처 앞에 마음 괴로울 때 나는 숲속 나무 앞에 서게 된다. 적당한 선에서 삶을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안고 나무에 묻는 듯. 그 순간, 나무가 내게 물어왔다. ‘나도 사는데 왜 생명을 욕되게 하려는 거냐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사는 나무의 운명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나무는 사람에게 있어 산소의 공급원이다. 그리고 지구의 공기를 정화시킨 청소부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열대 밀림지대를 지구의 허파라고 한다. 소설가 조정래는 인간을 ‘누구나 홀로 선 나무’로 비유했다. ‘홀로 선 나무’ 이 안에 인생이 있고, 자연의 순기능이 있으며, 고독이 있고, 인내의 철학도 있다. 너도나도 외롭고 힘들고 지쳐 있다. 그래, 힘든 우리 영혼을 충전할 안식처는 어디에 있을까. 충전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를 것 아닌가.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충전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글을 읽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손목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독자와 작가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충분히 영혼의 수혈과 충전이 가능할 것이다.

 

2023년 토끼의 해에도 많은 세상 풍파가 밀려올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잠들지 않고 불쑥불쑥 가슴을 치밀고 올라오는 쓰디쓴 그리움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성탄절 맹추위 속에서도 작은 나뭇가지 하나 끄떡임 없이 눈을 맞고 있는 대지마을의 강철 같은 감나무의 의지로 견뎌낼 것이다. 인간을 창조한 것은 신의 영역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번영시킨 것은 책(BOOK)일 것이다. 독서하면서 한 그루 나무와 같이 살며 2023년을 기념하는 또 다른 ‘세한도’와 같은 작품을 웃으면서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이 땅에 전쟁과 경쟁이 없는 평화를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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