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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나는 알지 못한다

 

새해 첫날 들었던 생각이다. 모른다. 나는 알지 못한다. 굳이 안다면, 그 어떤 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나는’과 ‘모른다’ 사이의 괄호에 어떤 단어를 적어 넣어도 무방하다. 나는 (구름을) 모른다. 나는 (바람을) 모른다. 나는 (햇살을) 모른다. 구름도 바람도 햇살도 모르는 내가 사람과 도시와 세상을 알 턱이 없다. 사람은 고사하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온갖 것들에 대해. 이를테면 미움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바름이라든지 그름 같은 것을 모른다. 모른다. 나는 알지 못한다. 안다고 끄덕였던 적도 있었는데 부끄러운 고갯짓이었다. 교과서 몇 권 읽었다고 안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앎이란, 그렇게 하자는 인간의 약속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니까.

 

모른다. 나는 알지 못한다. 하물며 새가 왜 우는지조차 나는 모른다. 우는지, 웃는지, 부르는지, 화내는지, 노래하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지 알지 못한다. 내게는 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눈이 없어서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다. 없으니 모를 수밖에. 새해 첫날부터 모르는 것투성이다. 모른다는 고백을 인간이 정한 약속으로, 그러니까 말 혹은 언어라는 기호로 나열하고 있는 나는 얼마나 궁색한가. 궁색을 넘어 무용한가. 열린 눈과 귀와 코를 향해 바람처럼 불어 닥치는 ‘앎’의 외침들. ‘앎’의 손짓들. ‘앎’의 가르침들. 낮이면 햇살처럼 밤이면 별빛처럼 쏟아지는 ‘앎의 은혜’ 앞에서 나는 철저히 주눅 든다. 쓸모없어서 무용한 것이 된다.

 

모른다. 나는 알지 못한다. 몰라서, 쓸모없어서, 무용하여서, 발가락만 꼼지락거린다. 간신히 숨만 쉰다. 눈 코 입 틀어막고 수그린다. 이런 자도 사람이랄 수 있을까. 새해 첫날이라는데,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막막하다. 아니 먹먹하다고 해야 맞을까. 뉴스를 보거나 듣지 않은지 한참이다. 애써 피한다. 피한다고 피할 수 없는 게 그것이지만, 그것이 토해내는 정보는 앎과 거리가 멀다. 정보라고 쏟아내는 말과 글이 오히려 앎을 가로막고 모름의 벽에 가둔다. 필요에 따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정보는 앎을 소비시킨다. 참으로 모를 일이다. 앎이라 가르치는 말과 글을 대할수록 모름에 빠지고 마는 까닭은 무얼까.

 

새해 첫날 보았다. 길가에 정차한 승용차 탑승자와 보도에 멈춰 선 행인의 실랑이였다. 조수석에 앉은 여인은 강아지를 안고 있었고, 가로수에 기대 선 사내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살 찌푸리며 여인이 말했다. “길에서 담배 피워도 돼요?” 사내가 승용차 꽁무니를 가리키며 답했다. “길에서 배기가스 뿜는 당신은요?” 여인이 받아쳤다. “우리 차는 전기차라 배기가스 없어요.” 사내도 지지 않았다. “전기는 꽁으로 나와요? 석탄 때서 만드는 게 전기요.” 말과 말이 충돌하고 정보와 정보가 충돌하였지만, 충돌현장을 지켜본 나는 여전히 모른다. 하기는 충돌하는 것이 어디 그것뿐인가. 앎이기도 하고 모름이기도 한 충돌이야 천지에 널린 것을.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침략자를 피해자라 가르친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그렇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라면서 무기를 파는 건 또 어떤가.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터지자 한국은 무기를 수출하고 떼돈을 벌었다. 몰라도 좋을 앎이란 그런 것일까. 새해 첫날이라는데,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대흥사에 갔다. 대웅전에 들어 세 번씩 아홉 번 절했다. 염치가 없어서 소원은 빌지 않았다. 하늘에 대고 기도하지 않았다. 당신을 향해 기도했다. 나만큼이나 쓸모없는 당신을 향해. 나만큼이나 무용한 사람들을 향해. 함께 건강하자고. 부디 함께 살아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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