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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레토릭

 

 

1.

레토릭(rhetoric)은 ‘말과 글을 도구로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수사학자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레토릭은 B.C. 467년 시칠리아 시라큐스의 법정 변론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레토릭은 양날의 칼이었다. 타당한 설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쓰이는 건강한 레토릭이 있다. 반면에 일그러진 언어로 진실을 왜곡하는 타락한 레토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정보기관은 작전 수행 시 의도치 않게 민간인이 사망하는 것을 “부수적 피해”라고 부른다. 가치판단을 말끔히 소거함으로써 현실의 참혹을 감추는 타락한 레토릭의 전형이다.

 

윤석열정부가 앞선 정부들과 크게 다른 특징을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검사 출신들이 요직에 압도적으로 많이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압수수색 횟수 또한 역대 최고다. 과거에는 정치권 내부 공방에 불과했던 사안에 대하여 대통령실이 직접 형사고발을 한다. 법무부 장관이 (언론의 취재권리 억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자 접근 금지를 법원에 신청하기도 한다.

 

 

2.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차별점은 역시 기괴한 레토릭의 대잔치다.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바이든이 날리면” 소동은 접어두자.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신년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핵심 개혁 대상으로 연금문제, 교육 문제, 노동문제를 제시했다. 이후 발언 빈도를 살펴보면 세 가지 가운데 노동문제, 특히 노동조합 문제가 타깃임이 분명해 보인다.

 

과연 한국의 노동조합 상황이 개혁의 대상인가?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4.2%에 불과하다. OECD 국가 중 영국이 23.5%, 이탈리아 32.5%, 덴마크가 67.0%다. 유명무실화의 길을 걷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상징하듯, 대한민국은 경제 수준에 대비해서 거꾸로 노동자 권리가 가장 억압된 국가 중 하나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 레토릭’은 중요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건폭(건설현장의 노조 폭력)이란 작명이 예시하듯, 팩트의 일면을 침소봉대함으로써 교묘하게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기업규모와 유형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쌍둥이 2중구조의 특성을 지닌다. 여기서 대통령이 지칭하는 귀족화된 노동기득권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7.4%에 불과한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국한되는 것이다.

 

 

3.

이러할 때 개혁을 빙자한 대통령의‘전면적’ 노동조합 공격은 사회 저변의 반 노동조합 정서를 이용하여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중소기업/비정규직 노조를 갈라 치는 정치경제적 선동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노동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통해 보수 유권자 정서를 자극하고 지지율을 확대하려는 목적인 것이다.

 

지난 2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은 연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자신이 추진하는 혁신에는 “기득권의 저항이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혁신은 낡은 생각이나 구조를 바꾸어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중립적 개념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낯 두껍지 않은가.

 

나부끼는 검찰 통치의 깃발 아래 재벌자본, 고급관료, 보수언론 등 우리 사회 과두 기득권의 이익을 앞장서서 실현하는 사람이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추진하는 경제, 사회, 복지 전 분야의 심대한 양극화. 주 69시간 근무제로 대표되는 노동환경의 극단적 퇴행. 남북관계의 긴장과 전쟁위험 고조를 어찌 감히 혁신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4.

매국노 이완용은 1919년의 삼일운동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이렇게 썼다. “대저 조선과 일본은 상고 이래 동종동족이며 동종동근임은 역사에 있는 바이라, 그런즉 일한합병(日韓合倂)으로 말하자면...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로 단행”되었다, 고.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삼일절 기념사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변했다. 국권 상실의 원인을 일본의 침략이 아닌 우리 책임으로 몰아가는 기괴한 레토릭이다. 곧이어 튀어나온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수단방법 안 가리고 본질을 숨기는 이들 레토릭이 일시적으로 대중을 현혹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원히 속지 않는다. 마그마의 압력이 증폭되듯 언젠가는 진실이 지표를 뚫고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코미디를 닮은 것은, 언어의 왜곡이 극단에 이르면 ‘리플리증후군’이 온다는 거다. 가짜를 웅얼거리다가 스스로의 정체성까지 착각하는 것이다. 2023년 3월 8일 고양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통령이 입장하는 순간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가 왕왕 울려 퍼졌다. 그가 민중의 대변인이라는 뜻이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윤석열은 대한민국 기득권 세력의 확고부동한 대리인이다.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에서 극단적 수구 정치인이다. 군내 나는 신자유주의 레코드판을 틀어대며 온갖 극우적 정책을 밀어붙이는 권력집단의 수장을 향해 민중의 노래라니.

 

언어가 타락하면 그렇게 나라가 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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