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의 제국제마 사택이 사라진다.
학익동에는 일본 제국제마주식회사 인천공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일했던 일본인과 조선인 사택이 남아 있는데, 재개발로 철거를 앞두고 있다.
24일 제국제마 조선인 사택 일대 골목길은 양팔을 뻗으면 벽에 닿을 만큼 좁다. 나란히 선 주택도 골목길을 닮아 조그맣다.
꽉 닫혀 있던 대문들은 가스 철거 때문인지 열려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주저앉아버린 지붕과 마당에 버려진 판자·장판 더미가 드러난다. 담벼락은 지킬 주인이 없어서인지 바닥과 한 몸이 돼버린 모습이다. 무너진 주택가는 사람의 부재를 조용히 알린다.
조선인 사택에서 두 블록을 이동하면 일본인 사택을 만날 수 있다.
파란 대문을 열면 여름과 어울리는 초록 정원이 등장한다. 이 사택은 일본에서 유행하던 전형적인 문화주택의 모습이다. 옹기종기 붙어있던 조선인 사택과 달리 외부부터 널찍하다. 거주면적뿐만 아니라 주거형태도 차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동네 곳곳에 설치된 현수막에는 ‘차량 통제 및 이동 안내’라고 적혀 있다.
학익3구역은 올해 철거를 앞둔 상황이다. 오는 26일부터 주차와 통행을 통제할 예정이다. 학익동의 역사를 보여 줄 수 있는 근대유산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제국제마주식회사 터는 이미 아파트로 점령된 지 오래다.
구 관계자는 “2015년부터 동별로 지역사 관련 역사 자료수집 작업과 책자 사업을 진행했다”며 “도시마을생활사·미추홀구사에 제국제마주식회사 관련 내용이 실려있다”고 설명했다.
책자에는 제국제마 사택에 관한 간략한 내용만 담겼을 뿐이다. 이에 깊이 있는 기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학익동’ 전시를 진행한 곽은비 작가는 “학익동의 사택은 다른 지역보다 관심이 적은 편이라 아쉬움이 남는다”며 “철거되기 전, 전문가를 투입해 도면 등 자세한 기록화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인천에는 일본인들이 세운 대규모 공장들이 들어섰다.
학익동에 들어선 제국제마주식회사는 1939년 착공, 1940년 준공됐다. 함경남도 고원지대에서 재배한 아마(亞麻)를 원료로 제품을 생산했다.
1941년 31동 60가구 규모로 제국제마주식회사의 사택이 조성됐다. 두 블록을 사이에 두고 서편에는 일본인 사택을, 동편에는 조선인 사택을 구분해 지었다.
광복 후 제국제마주식회사는 한국에서 철수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김민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