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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소] 자연을 사랑한 한시의 대가…인천 연수구 ‘쌍명재 이인로선생 문학비’

고려 무신정권기 전후 문신…19세 때 무신정변 일어나 불가 귀의
29세 때 장원급제, 문학적 능력 뛰어났으나 무신들 세상에 소외
시문집 은대집‧쌍명재집 집필, 우리나라 최초 시화집 파한집 완성

 

20. 자연을 사랑한 한시의 대가…인천 연수구 ‘쌍명재 이인로선생 문학비’

 

'산에 살면서 봄은 갔건만 꽃은 그대로 있고 하늘은 맑건만 골짝은 그늘졌네. 한낮인데도 두견이 슬피 우니 비로소 사는 곳이 깊음을 알겠네.'

 

세상을 잊고 자연에 묻혀 지내는 마음을 표현한 한시 ‘산거(山居)’는 이인로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인로는 고려 무신정권기 전후 문신이자 문인이다. 본관은 인천 이씨로, 문벌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돼 화엄승통(華嚴僧統)인 요일(寥一)에게 거둬졌다.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 이인로는 시문과 글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하지만 19세 때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화를 피할 목적으로 불가에 귀의했고 6년 뒤에야 속세로 돌아왔다.

 

29세가 되던 해 진사과에 장원급제했는데, 3년 뒤 지금의 부평구인 계양군 서기(書記)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인로는 문학적 능력이 뛰어났으나 당시에는 크게 평가받지 못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무신들의 세상에서 소외된 문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인로는 문학이 외면 받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어 틈틈이 모은 시와 문인들의 동향을 기록해 나갔다.

 

 

이런 노력은 그가 집필한 시문집인 은대집‧쌍명재집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시화집으로 평가받는 파한집의 완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인로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문인들과 권력의 안락함보다 자연 속에서 시문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가치를 찾고자 죽림고회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매일 모여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 것을 즐겨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무신정권 아래 있는 문인들이 소외받고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문학비는 이인로가 사망하고 800여 년이 흐른 지난 2001년 그가 남긴 문학의 위대함을 기리고자 인천이씨대종회,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를 비롯해 당시 최기선 인천시장까지 힘을 합쳐 연수구 연수동 원인재 앞에 세웠다.

 

원인재는 인천 이씨의 근원지이자 시조 이하겸을 모시는 장소로, 1990년 인천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됐다.

 

 

[ 경기신문 / 인천 = 박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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