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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삶의 시 같은 서사

 

숲으로 이어진 길을 걷고자 아파트 뒷문으로 나섰다. 어린이 놀이터에 자리 잡고 있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들이 길가 콘크리트 벽 쪽으로 몰려 쌓여 있다. 가을이면 도심의 길가 가로수 아래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엔 다른 시선으로 씨앗에 대한 생각을 안고 걷게 된다.

 

그동안 나는 이 은행나무의 잎 지는 모습에만 눈을 주었지 식물로서 생식생장을 위한 씨앗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은행나무는 아름드리나무가 될 때까지 한 해 한 해 버텨오면서 가을이면 후대를 위한 나무를 생각하며 열매 맺어 지상으로 내려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은 일찍부터 은행나무 열매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방의 땅이 온통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씨앗이 비집고 들 틈이 없었다. 그래도 은행나무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본능적으로 ‘행여나’하고 열매를 내려 보냈을 것이다.

 

나무는 그 열매가 씨앗으로 움틀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러한 자연 현상과 악한 사회 환경 속에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청년들의 의식이 싹튼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결혼을 한다 해도 아이는 갖지 않겠다는 생각 또한 그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추석 전 일이다. 수필창작 반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강의가 끝나면 회원들 모두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베풀던 해동 선생이 찾아왔다. 그는 몇 년 전 고향으로 주거지를 옮긴다고 하고 떠났기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찾아왔다. 그분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청력도 전 같지 않았다. 부인이 운전하고 왔던 것이다. 두뇌에 좋다는 선물도 받고 이 말 저 말 끝에 서로 감사하다고 헤어지는데 나는 그분이 타고 온 자동차 번호를 적고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수필장작 반에서 회장으로 일하다 아들 곁으로 간다고 서울로 간 김ㅇ진 회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뭔가를 찾다 보니 내가 보낸 친필 편지가 있어 읽고 나니 마음이 울적하여 전화를 했다며 건강을 염려해 주었다.

 

나무는 본능적으로 땅에 씨앗을 심고자 온 힘을 다해도 뜻대로 안 된다. 바다는 일본의 후쿠시마 핵폐기물 오염수로 오염되어 어족들의 종(種)이 죽어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기후위기 문제보다 인간의 삶의 위기가 더 시급한 것은 아닌지? 문학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슴 섬뜩해질 때가 있다.

 

나무는 씨앗으로 시(詩)를 쓸 것이다. 사람은 타고난 성정과 닦은 인품으로 시를 쓰고 서사를 엮어간다. 깊어가는 가을이다. 나뭇가지에서는 다이빙하듯 낙엽이 대지를 향해 뛰어내리고 있다. 식물체로써 한 세대가 삶에서 죽음으로의 질서를 지키고 있다, 계절의 한계를 용기 있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을 하늘 맑다 해도 계절의 우울을 느끼게 된다. ‘유머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될 수 있으면 웃는 얼굴로 유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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