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完用!
우리 민족사에서 참으로 특별한 이름이다.
그는 1858년 지금의 판교 낙생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시시했다. 열살 때, 먼 친척의 양자가 된다. 장대높이뛰기와 다름없는 그의 성공가도에 첫번째 기회는 바로 이 입양이었다. 양부 이호준은 당시 한성판윤 등을 지낸 정계거물. 흥선 대원군의 절친으로, 사돈이기도 했다.
내성적인데다 집안에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자랐다. 양부 계보의 큰 지식인들에게 사서삼경을 배웠다. 선생들은 그의 뛰어난 머리와 높은 성취욕을 지적했다. 이 두 가지 장점이 이후 그의 삶을 그렇게 이끌었다.
당시 고종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무능하고 불행하고 측은한 지도자였다. 안으로는 아버지 대원군과 부인 민씨가 각각 설치며 죽기살기로 싸우고, 밖으로는 청나라 러시아 일본과 멀리 미국까지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다. 풍전등화였다.
국내 국제정치의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 나라의 운명은 영원히 이 변경불가한 지정학의 종속변수일 수 밖에 없다. 리더십의 수준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최선이 아닐 경우는 우리나라는 피할 수 없이 재앙의 현장이 된다.
위기의식이 하늘을 찌르는 처지의 임금에게 구원의 빛과 같은 존재들 가운데 하나가 완용이었다. 그는 동양고전을 공부한 다음 과거시험을 통하여 관리가 된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무후무한 초고속 승진의 주인공'이었다.
그 과정에서 귀족자제들과 관리들 가운데 탁월한 소수를 뽑아 전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육영공원(育英公院)이라는 학교에 들어가는데, 거기서도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성적을 낸다. 이 특수학교는 왕립으로, 교수들은 전원 미국선교사들이었다. 영어 잘하는 인재들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였다.
육영공원에서 공부하고 그는 주미공사관 개설요원으로 발탁되어 제2의 기회를 잡는다. 미국대륙을 횡단하고, 여러 가지 '최초체험'들을 하면서 자신의 상품성을 높여간다. 공사(박정양)가 귀국명령을 받고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바람에 공사직책을 이어받는다. 서른살이었다.
그는 친미 친러로 구르다가 친일로 변신하여 본격적으로 매국노의 인생을 펼쳐나갔다. 세번째 기회였다. 일취월장 승승장구였다. 총리로서 고종 순종을 손아귀에 쥐고 놀았다. 이때 일본어를 모르면서 통역을 대동하여 영어로 소통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킨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영어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1905년), 허수아비로 조선인들을 대신에 봉해놓고 일인들을 실세차관으로 앉혀 행정을 장악하고, 군대를 해산함으로써 사실상 식민지로 만든 정미7조약(1907년), 병탄조약(1910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일본을 위해 몸과 맘을 다 바친다.
일진회 송병준과 '병탄 기여도' 경쟁을 하면서 깡패들까지 동원한다.
일본은 실은 에도막부 말기인 1873년에 소위 '정한론'(征韓論)을 국책으로 수립한다. 그 국가전략은 중국과 러시아를 차지하여 세계 최강의 제국이 되려면 '무조건 한국을 먹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지진과 해일로 인하여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영토의 취약성 탓에 생긴 집단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을 걸로 본다. 그 악성 유전자가 소위 '삼광(三光)정책'을 낳았을 것이다. 그것이 일본(日本)의 '일본'(一本:제1 본질)이다. 그래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목숨걸고 주변국을 빼앗고(奪光) 불지르고(燒光) 죽이는(殺光) 일을 전광석화처럼 자행한다. 그 특질은 불변이다.
임진란(조ㆍ일 7년 전쟁)과 19세기 후반부터 병탄, 식민 36년간 일본이 우리 민족과 중국 등 동양사회 전반에 저지른 악마짓들은 정확히 삼광(三光)난동 그 자체였다. 완용은 민족을 통째로 그 지옥으로 밀어넣은 주역이다. 참으로 완벽(完)하게 쓰인(用)것이다. 그는 이 단계적 매국조약들을 체결할 때마다 지금 돈으로 백억원이 넘는 사례비를 받았다. 그 댓가로 조선갑부가 되었다.
일본은 오늘도 다수의 '완용'들을 거느리고 있다. 지시하고 보고받으며 정한론을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대륙진출의 숙원사업을 위하여 발톱을 숨긴채 모든 일본인이 '쓰미마셍'(죄송합니다)과 '아리가또 고자이마쓰'(고맙습니다)로 언젠가 거침없이 질주할 수 있는 길을 내고 있다.
비극의 막이 활짝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