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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테라노스와 액트지오

  • 최영
  • 등록 2024.06.14 06:00:00
  • 13면

 

손가락에서 채혈한 몇 방울의 피만으로 약 250개의 질병을 진단하는 ‘에디슨키트’를 개발했다는 회사가 있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테라노스’, 창업자는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스탠포드를 중퇴한 여성이었다. 언론과 각계각층의 지지를 업고 2015년에 이르자 테라노스는 주가총액 90억달러로 실리콘밸리 최고의 스타트업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홈즈의 신화는 월스트리트저널 존 캐리루기자의 탐사보도에 의해 희대의 사기극으로 귀결된다. 에디슨키트가 진단했다는 결과는 다른 대기업의 기기로 검사한 것이었고 처음부터 만능키트는 없었다. 결국 2022년 11월 홈즈가 징역 11년 3개월을 선고받고 사건이 일단락되자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기극이 가능했던가를 궁금해했다. '젊고 신비로운 천재 미녀CEO', '여자 잡스'라는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에 키신저, 루퍼트 머독 같은 유명인들의 지지가 더해 거품이 치솟았지만 더 큰 문제는 실리콘밸리 테크언론들의 행태였다. 테라노스가 개발했다는 기술에 대해 질문하면 홈즈는 "에디슨에 적용한 극비 기술은 외부로 유출시킬 수 없다"며 구체적 답변을 거부했지만 언론들은 놀라울 정도로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기자들이 어떤 기술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쓸 경우 해당 언론은 더 이상 업체로부터 다른 정보를 받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다시는 인터뷰 기회조차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실리콘밸리의 테크언론들이 침묵하자 주류 언론이 홈즈를 띄우기 시작한 것이 테라노스 사기극의 시작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기름 한 방울 나지않는 나라”라고 자조해야 했던 대한민국, 원유가격의 등락에 경기가 요동치는 것이 당연시되는 대한민국에서 산유국은 필생의 꿈이었다. 그 꿈을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140억배럴로 부풀렸다. 이런 ‘아니면 말고’식의 화법이야 윤대통령의 캐릭터이니 그렇다 치자. 발표가 난 다음날 주류언론들은 대부분 선정적인 제목으로 산유국의 꿈을 퍼나르기에 바빴다. 왜 정부는 이미 파산당한 1인기업인 액트지오에게 분석을 맡겼으며, 액트지오는 어떻게 자료분석 만으로 140억배럴 매장가능성을 도출했는지 라는 분석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외려 성공가능성 20%라고 하니 “다섯 번 시추하면 100%가 되는 것 아니냐”는 해괴한 통계학까지 등장하는가 하면, 모 증권사는 시황보고서에 “액트지오 고문 아브레우가 히딩크 감독을 닮은 관상으로 사기꾼이 아닐 확률이 상승했다”는 점괘에 가까운 전망까지 내어놓았으니 정녕 이 나라가 미쳐버린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런 관상학이나, “강수확률 20%의 맑은 날씨가 5일이면 개중 하루는 100% 비가 온다”는 소리와 진배없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들에게 반박은 불가능하다. 그냥 미친 것이다.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제일 해먹기 좋은 작업이 하천준설과 시추라는데(검증이 불가하니) 하나에 천억이 넘는다는 시추공을 마구잡이로 뚫으면 도대체 국고를 얼마나 축낼런지, 주가조작으로 23억 차익을 실현한 경력이 있는 여사님을 생각하면 이번 석유발표가 마치 관련업종 작전주 띄우기와 유사한지라 이미 누군가 미리 알고 이익을 실현하지는 않았는지도 걱정이다. 그리고 절망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할 것이다. 청와대도 옮긴 그들이다. 그어놓은 고속도로도 노선을 바꿔버리는 그들이다. 수십조를 말아먹은 이명박정권의 자원외교처럼 그들은 동해로 진격할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테크언론들이 홈즈에 침묵했던 것처럼 언론이 그렇게 입을 닫는 한, 기자들이 대통령이 만든 ‘계란말이 먹은 벙어리’가 되는 한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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