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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복수는 금과 같지. 녹이 스는 법이 없어 그러니 좀 기다려.”

156 푸른 눈의 사무라이- 앰버 노이즈미, 마이클 그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미국産이다. 넷플릭스 재팬이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워낙 사무라이 색채가 강하고 다수의 일본인들이 제작에 참여해서 마치 일본 작품처럼 느껴진다.

 

한국에서 지난해 11월 첫 공개됐을 때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했던 건 일본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반감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이 애니메이션은 국내에서 폭발적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비교적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세계 반응도 비슷해서 인구에 회자되는 빈도가 높아지고 결국 넷플릭스가 올해 말 시즌 2를 내놓을 예정이다.

 

 

시즌 1, 에피소드 8편 마지막이 얘기의 매듭을 짓지 않기도 했다. 완연하게 시즌 2를 예고하는 끝맺음이었던 셈이다. 주인공이자 혼혈 사무라이 검객인 미즈(타무라 무츠미)는 자신의 원수 중 한 명인 어바이저 파울러(타키 사토시)를 죽이지 않는 대신 그를 앞세워 영국 런던으로(혹은 어디엔 가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는 것으로 끝난다.

 

미즈는 사실 여자인데, 푸른 눈을 가졌고, 자신의 생모가 어바이저 파울러를 비롯해 백인 남자 넷에게 겁탈을 당해 자신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미즈는 그래서, 매우 불행한 어린 시절과 인생을 살아왔고 자신을 혼혈 괴물로 만든 백인 넷을 반드시 죽여 없애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 배경은 막부 말기이되 쇄국이 한창이던 때이다. 어쨌든 백인 남자 넷을 죽인다는 설정이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주요한 설정이다. 좀 말이 안 된다. 결국 생부를 찾아서 죽이되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니 유린의 당사자 넷 모두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서구식 살부(殺父)의 이데올로기, 곧 아버지(같은) 존재, 물리적으로 진짜 아버지를 얘기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 버금가는 가부장 제도, 그것을 떠받치는 부권 사회, 그 시스템, 국가를 살해한다는 의미 그러니까 그것을 없애거나 전복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인공 미즈가 여자라는 것, 그녀가 하이브리드, 곧 변종이자 이종(異種)이라는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변방과 비주류의 존재라는 것, 그럼에도 외국 세력을 처단하려 한다든지 하는 민족적 폐쇄성을 담고 있다는 것 등등 여러 가지로 깔아 놓은 서브(sub) 텍스트들이야 말로  이 애니메이션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표방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다만 언뜻 보면 주인공 미즈의 행동 동기가 다소 황당해 보일 뿐이다. 모든 영화는 그 텍스트 안을 들여다보고 좀 더 깊게 파 들어가 봐야 한다.

 

 

생각과 의미가 어떻든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주인공 미즈의 사나운 ‘칼질’로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터진다. 목과 몸이 날아간다. 잔인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쾌감이 만만치가 않다. 오랜만에 만나는 19금이다. 그중 에피소드 4의 ‘기이한 욕망’편에서는 일본 사회의 기괴한 성적 기행들마저 펼쳐진다.

 

드라마에는 ‘마담 카지’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현대로 얘기하면 SM 클럽을 운영하는 여자이다. 이 마담 카지를 통해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애니메이션의 상상력 역시 베드신과 섹스 신에서도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 준다. 강력한 성인 취향의 얘기들이고 이 4번째 에피소드야말로 이 드라마의 인기를 폭발시킨 요인이다.

 

 

주인공 미즈는 검부(劍父), 곧 검을 만드는 눈먼 도공 에이지(타다노 요헤이)에게서 쇠를 담금질하고 명검을 만드는 법을 배운 뒤 무예를 익힌다. 미즈는 최고의 검객까지는 아니어도 무시할 수 없는 기량을 갖춘 무사가 된다. 무엇보다 그녀가 가진 칼은 사람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에이지의 명검이다.

 

미즈는 이 칼로 사람들을 삭둑삭둑 해치운다. 마담 카지의 부탁으로 갱단 무리의 한 변태성욕자를 죽인 후 조직 모두와 한바탕 싸움, 일대 백의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이 애니메이션의 압권이다. 미즈는 거의 죽을 뻔하지만 마담 카지도 지키고 자신의 오랜 적수인 또 다른 무사 타이겐(모리타 료스케)의 여자 아케미(타게 우치 에미코)도 지켜낸다.

 

미즈는 칼에 찔리고 베이지만 백인 넷에 대한 복수로 죽을 수가 없다. 사부이자 도공인 에이지는 그런 미즈에게 이렇게 말한다. “복수는 금과 같지. 녹이 스는 법이 없어.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8부작 애니메이션 ‘푸른 눈의 사무라이’에는 금과옥조의 대사들이 차고 넘친다.

 

 

극중 러브 라인도 만만치 않다. 미즈는 여자이고 약간은 에이 섹슈얼(a-sexual)이다. 연애와 섹스를 하지 않는 무성욕주의자이다. 근데 그렇게 되기까지 사연이 있다. 그녀는 한때 잠깐이나마 여자로 살았고 퇴락한 사무라이 남자와 지냈는데 겨우 그를 사랑하게 될 즈음에 자신의 검술 실력을 시기한 이 남자가 자신을 고발하는 배신을 겪는다.

 

그녀는 결국 남자를 죽인다. 남자는 이미 미즈의 엄마조차 죽게 한 상태이다. 미즈의 눈에는 이글이글 횃불이 타오른다.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한없이 증오할 뿐이다.

 

 

그런 미즈의 상대 라이벌 사무라이는 타이겐이고 이 타이겐을 사랑하는 여자는 아케미이다. 타이겐은 평민 출신이고 아케미는 다이묘를 아버지로 둔 공주이다. 당연히 둘 사이에 사랑은 이루어지지가 않는데 아케미는 아버지의 허락 없이 타이겐과 동침을 한다.

 

영주인 아버지는 아케미가 그런 딸인 줄 모르고 (아니면 모른 척하고) 쇼군의 둘째 아들과의 정략결혼을 서두른다. 재미있는 것은 아케미가 1)이 수렁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 하고 2)연인 타이겐을 끝까지 찾아 나서며 3) 그 일환으로 마담 카지의 변태 술집에서 몸을 팔려고까지 하다가 4)주인공 미즈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 싸움에서 간신히 살아 남지만 5)결국에는 그렇게나 싫어하던 쇼군의 둘째 아들에게 몸과 마음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캐릭터가 바로 아케미이며 처음엔 사랑을 추구하는 척, 사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진정한 야망의 소유자임을 드러낸다. 아마도 시즌2에서 아케미는 말더듬이인 쇼군의 둘째 아들을 뒤에서 섭정하며 권력을 차지하는 여인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

 

 

결론적으로 보면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화려한 채색감과 일본식 2D 애니메이션이 지니는 뛰어난 입체적 질감을 넘어 영화가 지녀야 할 기본 덕목, 곧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매우 탄탄한 작품이다. 캐릭터가 펄펄 살아 뛰어다닌다.

 

에피소드별 연결고리와 그 컨티뉴이티(continuity)가 뛰어나다. 대본 자체를 워낙 잘 쓴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건 할리우드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그게 그들의 진정한 경쟁력이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미국 작품임에도 역설적으로 일본 콘텐츠의 재 부상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서구식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를 지니고 있는 할리우드와 유럽 감독들 중 상당수는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로망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프랑스에서 일었던 오시마 나기사 열풍도 그랬고 미국 아카데미상이 구로자와 아키라에게 공로상을 주며 그의 세계 영화사적 업적을 기린 것도 그랬다. 오즈 야즈 히로에게 늘 오마주를 바치던 독일 빔 벤더스 감독이 이번에 ‘퍼펙트 데이즈’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로야마 상의 야쿠쇼 코지는 지난해 5월 칸에서 어김없이 남우주연상을 탔다. 일본 영화, 일본 드라마가 다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좌이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사무라이 영화가 꽤나 난폭한 재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 나름으로 속 깊은 의미를 주는 장르의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 준 셈이다. 다른 거 다 필요 없다.

 

모든 건 이야기의 흐름,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이야기를 잘 짜야 한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정말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성인 애니메이션의 시즌 2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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