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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희의 향기로운 술 이야기] 그윽한 솔향기 가득한 ‘송화천로주’

 

사그락 사그락.

 

쌀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전통주 갤러리에 있으면 전통주를 홍보하거나 대외적으로 나서는 일이 참 많다. 예전에는 때때로 그런 일들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사명감을 가지고 즐기며 해나가고 있다. 우리의 전통주를 한 분에게라도 더 알리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나는 술을 빚는 일을 사랑한다. 그런 본질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내가 해내는 모든 일들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송홧가루는 봄철에 사람들에게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술의 재료가 된다. 송홧가루는 예로부터 식용으로 사용했지만 귀한 재료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접하기는 어렵다. 송홧가루는 채취하기도 참 까다롭다. 나는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송홧가루를 얻는 법을 배웠는데, 그 방법을 살펴보면 옛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먼저 송화가 반쯤 피었을 때 채취하여 3~4일 숙성시킨 후 물에 담근다. 그러면 불순물들이 밑으로 가라앉고 노란 송홧가루가 물 위에 떠오르게 된다. 그 위를 한지로 덮어놓으면 노란가루와 물이 한지에 달라붙는다. 그대로 한지를 걷어서 말리면 노란 가루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얻어지는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이런 수고로움 때문에 여전히 송홧가루는 귀한 식재료이다. 이렇듯 귀한 송화를 고스란히 모아 빚은 술이 있다. '산가요록'에 등장하는 멋진 이름을 가진 전통주, ‘송화천로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산가요록은 조선초기, 1450년대 왕실어의 전순의가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합 농서이자 요리책이다. 농업기술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있지만, 229가지의 조리법이 함께 수록에 있어 가치가 더욱 높다. 장류 만드는 법 19가지, 식초만드는 법 17가지, 김치 만드는 법 37가지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술을 빚는 법은 66가지나 쓰여있다.

 

그중에서도 귀한 자료로 인정 받는 부분은 온실설계법이다. 온실설계법은 서양의 온실보다 약 170년 정도 앞서는 것이었다. 2002년 KBS '역사 스페셜' 프로그램에서 직접 재현이 가능했을 정도로 정교하게 설명되어 있다.

 

내가 그 귀한 책에서 배워, 매년 빚는 술이 바로 송화천로주이다.

 

송순과 송화를 채취해 물에 넣어 진하게 끓여 쌀가루에 부어 섞는다. 된죽이 식으면 누룩을 넣고 버무려 1차로 발효시킨다. 일주일 후, 고두밥과 송화 달인 물을 추가로 넣어 2차로 발효시키면 된다. 다른 술에 비해 발효 기간이 두 배나 걸리는 이 술은, 60일 정도가 지난 후에야 걸러내어 맑은 술을 얻을 수 있다. 거기에 더 깊은 맛을 내기 위해 한두 달 더 숙성시키면 비로소 가장 완벽한 송화천로주를 맛볼 수 있다.

 

그 기다림에 답을 해주듯 한 모금만 마셔도 은은한 솔향기가 입안을 가득 메운다. 송화 특유의 쌉쌉하면서 약간의 떫은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푸른 솔 숲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매년 봄에 나를 찾아와주는 고고한 벗이다. 우리 선조들도 이런 느낌을 받으셨을까? 이 벗을 만나면 풍류를 즐기던 그 시절 옛 어른들과 시공간을 초월해 함께하는 기분이 든다. ‘산가요록’처럼 귀한 자료 덕분에 지금도 다양한 전통주를 만날 수 있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내 벗을 소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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