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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고양군수 의병장 행적 발견

임진왜란 당시 고양군수였던 이빈이 의병장으로 활약했다는 행적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400여년 전에 이미 인구 100만의 거대도시를 예견했으며 의연하게 행동한 사실이 문헌을 통해 밝혀져 고양시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는 지역역사 발견과 연구가 한층 더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사실은 고양시사편찬위원회 이은만 상임위원이 시사편찬 작업 과정에서 고양의 인물사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조사하던 중 ‘전주이씨대관’을 통해 밝혀졌다.
전주이씨 대관에 따르면 당시 고양군수 이빈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의병을 거느리고 왜적과 치열하게 전투하다 경기도 여주 추산읍에서 승전 끝에 전사했다.
그동안에는 임진왜란 당시 고양군수의 행적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었으며 지난 1987년 발간된 ‘고양군지’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다.
선조 41년(1604) 이전의 고양군수에 대해서는 그 명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양군수는 이빈(李贇)이었다. ‘贇’은 ‘윤’과 ‘빈’ 두가지로 발음이 되는데 전주 이씨 측에서는 ‘전주이씨 대관’에서 ‘빈’으로 발음해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전주이씨대관은 사단법인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1999년 발행한 것으로 1천300년 전주 이씨의 간략한 역사책이다.
이 상임위원은 “임진왜란 당시 고양군수가 의병장이 되어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사실은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감격스러운 일이다”며 “지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역사발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우쳐준 놀라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또 한성대 정후수 교수에 따르면 이같은 고양군수 이빈의 행적은 ‘한국계항보’에도 똑같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당시 고양군수 였던 이빈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거느리고 경기도 여주 추읍산으로 들어가 진을 치고 있다가 왜적이 나타나면 치열하게 싸웠으며 여러 차례 왜적과 싸우면서 승전하기도 했지만 결국 1592년(선조 25년) 10월 17일 전사했다고 기록돼 있다는 것.
아울러 이빈의 아들 이지강(李之綱)은 선조 16년(158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여산군수를 지냈으며 지극한 효자로 전해졌다. 특히 시묘 살이 할 때 도적 떼가 “효자 아무개의 여막에는 침범하지 말라”고 하고 30리 밖에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다.
현재 이빈의 묘는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문촌리 세당골 축좌에 있으며 비석은 오래돼 심각하게 마모돼 있어 이빈에 대한 역사적 재고증과 함께 보존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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