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계엄과 전쟁에 관한 공방이 뜨거웠다. 이 논쟁에 국민의 힘 한기호 의원(3선)의 문자메시지가 기름을 부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협조가 되면, 북괴군부대를 폭격, 미사일타격을 가해서 피해가 발생하도록 하고, 이 피해를 북한에 심리전으로 썼으면 좋겠다"는 문자메시지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에게 보냈다. 신실장은 "잘 챙기겠다. 오늘 긴급대책회의 했다"고 답했다. 소름끼친다.
‘조일 7년전쟁’(임진왜란.1592~1598)이 끝난 뒤 서울의 모습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지옥이었다. "전쟁이 끝난뒤 흉년에 염병까지 돌아 서울의 경우 수구문(水口門. 지금의 광희문) 밖에 버리는 시체가 산을 이뤘다. 그것을 처리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황소 한 마리값이 쌀 서말, 무명 한 필에 좁쌀 두서너 되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 죽으면 달려들어 그 살을 뜯어먹었다. 왜군은 지놈들 필요한 모든 걸 약탈하고, 명군(明君)은 전국의 소 돼지 개 닭을 다 잡아먹었다. 술 취한 명군이 토악질을 하면 다투어 핥아먹고, 약한 놈은 그것도 못먹어 울부짖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 조선편 한 대목이다.
어느 시대 어느 대륙에서든 전쟁이 끝나면, 장삼이사 씨알들은 우선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집을 손볼 것이다. 엉성하게나마 집집이 부엌을 이룩하여 솥을 걸고 불을 지펴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죽이라도 끓일 것이다. 폭격맞은 마을이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는 30년쯤 걸리겠지만, 살아남기 위하여 심지어 어린 자식을 버린 피난길의 그 독한 '짐승'을 망각하는 것은 죽는 날까지 가능치 않을 일이다.
다대한 인명을 잃고,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짓들을 무수히 저지르고서 살아남은 자들은 다행스러워하기는 커녕, 그래서 삶이 곧 저주임을 깨닫는다. 포탄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바로 옆 멀쩡하던 친구의 머리통이 분쇄되는 걸 보면서 지나온 그 참혹한 시간 동안, 최소한의 품위를 지킨 자 누구인가. 더러운 정치세력 말고는 단연코 없다.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사업가들은 무기를 팔아먹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을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들은 웃으면서 악수하고, 장사치들은 생필품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부모들은 자식의 무덤을 찾아서 통곡한다." 30년 전 내전으로 지옥을 겪은 세르비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경전에 올려야 할 어록이다.
전쟁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우리는 지금 나쁜 정치의 악의(惡意)와 사악함에 이끌려 그 문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손을 뿌리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벌이는 정치"라고 말했다. 나쁜 정치의 최악은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민초들의 일상은 고통이다. 모욕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누가 이기더라도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나는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는 점을 귀하게 여겨 그의 당선을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