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기업대출을 확대해왔음에도 중소기업에게는 보수적인 태도로 대출을 내주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 침체로 인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의 위험성을 우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중소기업의 원활한 자금공급을 위해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만큼, '중소기업 특화 은행'을 표방한 제4인터넷전문은행(이하 제4인뱅)의 설립이 추진력을 얻을 전망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164조 6356억 원으로 1년 전(137조 3492억 원)보다 19.87%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26조 9667억 원에서 665조 7354억 원으로 6.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출금리 상승 폭도 중소기업이 더욱 높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중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중소기업 대출금리(가중평균치)는 연 4.74%로 전월보다 0.15%포인트(p) 올랐다. 대기업 대출금리 상승폭 0.03%p(4.78% → 4.81%)의 5배에 달한다.
한은 측은 “대기업 대출금리보다 중소기업 금리가 많이 오른 이유는 은행이 상반기 우대금리를 많이 적용했다가 최근 그런 폭을 축소한 영향"이라며 “은행들이 상반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확대 정책을 폈다가 연말이 다가오면서 대출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몇 년새 은행들이 중소기업의 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하는 경향은 강화됐다. 한은에 따르면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중 담보·보증 비중은 2015년 말 66.7%에서 2022년 말 79.2%, 올해 9월 말 80.7%로 상승 추세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전 영업점에 '그룹장 여신금리 전결권'을 연말까지 일시 중단한다고 통보했으며, 기업대출을 회수할 경우 KPI(성과평가지표)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이례적인 결정도 내렸다.
경기 침체로 인해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은행들의 연체율 상승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평균 연체율은 0.78%로 한 달 새 0.11%p 올랐다. 반면 대기업 대출의 연체율은 전월과 비슷한 0.05%를 기록했다.
또한 올해 말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에 대비하고, 밸류업(Value-up, 기업가치 제고)에 맞춰 주주환원을 늘리기 위해 위험가중치가 높은 대출을 줄여 CET1(보통주자본) 비율을 높이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은행들은 올해 말부터 11.5% 이상의 CET1 비율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이익배당과 성과급 지급 등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추가 자본을 감안하면 13% 이상의 CET1 비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대출 문턱이 전반적으로 높아질 경우,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우량 기업들조차 쉽게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적 지원을 통해 중소기업 대출 시장에서 은행들 사이의 경쟁을 활성화시켜 원활한 대출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금융산업 경쟁도평가위원회를 열고 중소기업 신용대출 시장이 금융권의 새로운 경쟁분야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평가위원회는 "중소기업 대출 시장(은행·비은행)이 주로 담보·보증 대출에 집중돼 있어 '중소기업 신용대출' 시장이 금융권의 새로운 경쟁 분야가 될 수 있다"면서 "중소기업 신용대출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7일 "(은행권의) 중소기업금융은 신용보다는 담보와 보증에 크게 의존하는 현상이 굳어져 있다"며 "이러한 체계에서는 중소기업이 기술력과 잠재력을 인정받았다고 하더라고 담보 없이 원활히 자금을 공급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권이 담보, 보증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대출방식 대신 여신심사 시스템 고도화 등을 통해 기술, 혁신성 등 기업의 미래를 고려한 대출이 확대되도록 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중소기업·소상공인 특화를 내세운 제4인뱅의 설립 당위성은 한층 커졌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으로 신규 인터넷은행 인가 심사기준을 마련하고, 올해 안으로 설명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현재 ▲더존뱅크 ▲한국소호은행 ▲유뱅크 ▲소소뱅크 ▲AMZ뱅크 등 5개의 컨소시엄이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다.
금융권은 기존 인터넷은행 3사가 가계대출에 의존해 성장한 만큼, 제4인뱅은 자본력을 기반으로 수익성을 내면서 중소기업 금융에 특화된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4인뱅 설립을 추진 중인 컨소시엄들은 상대적으로 신용리스크가 크고, 비대면 영업방식의 한계 등으로 인해 기존 인터넷전문은행이 취급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금융에 특화하고자 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점에서 사업계획의 타당성 및 대주주 자금조달 능력이 인가의 필수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