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검찰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과 관련해 '늑장보고'를 이유로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을 거세게 압박하면서 현 경영진들의 사법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조병규 우리은행장의 연임이 사실상 어려워졌으며,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거취 또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김수홍 부장검사)는 지난 18일 손 전 회장 친인척의 부당대출 의혹 및 사후 조치와 관련해 우리은행 본점의 대출 관련 부서, 우리은행장 사무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당초 약 350억 원 규모로 알려졌던 부당대출 규모는 수사 과정에서 약 70억 원이 추가돼 총 4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조 행장이 피의자로 명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경법) 12조 '보고의무' 위반이다. 대출이 불법적으로 이뤄진 과정을 인지하고도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검찰이 사후 처리과정을 문제 삼아 수사 대상을 현 경영진으로 확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 이 사건을 검찰에 통보하면서 “우리은행 및 경영진이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적정 대출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처를 취하지 않아 부적정 대출이 계열사로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은 2020년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이어졌는데, 조 행장은 2020년 당시 우리은행 준법감시인이었고 지난해 7월 우리은행 대표이사에 올랐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진행 중인 금융당국의 정기검사도 연장됐다. 검사는 당초 지난 15일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확인할 것이 많다는 당국의 판단에 따라 연장됐으며, 이번 부당대출 사건으로 인한 금감원의 검사는 지난 6월 현장검사를 시작으로 반년째 이어지고 있다. 또한 금감원은 이날 검찰 압수수색 이후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검찰 수사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전했다.
이처럼 우리금융을 향한 금융당국과 검찰의 압박 수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조 행장의 입지는 한층 좁아졌다. 조 행장의 임기가 올해 말 종료됨에 따라 우리금융은 승계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 중이다. 이달 말에는 숏리스트(최종 후보군)가 결정돼야 하는 만큼, 오는 22일 있을 정기 이사회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 회장실, 행장실의 경우 자료를 남겨두는 곳이 아닌 만큼 이번 압수수색은 상징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면서 "결국 임기 만료를 앞둔 조 행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금융사고도 연임 가도를 가로막는 악재로 작용한다. 우리은행은 지난 15일 외부인의 허위 서류 제출로 인해 25억 원 규모의 사기 혐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올해 들어 발생한 네 번째 금융사고로, 조 행장이 내부통제 강화를 다짐했음에도 사고는 되풀이되고 있다.
아울러 '보고누락'에 초점을 맞춘 검찰과 금융당국의 칼끝이 임 회장을 향하고 있는 만큼 일단락됐던 임 회장의 거취 문제도 다시 불분명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은 이번 사태와 임 회장 사이의 연관성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임 회장이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다만 보고의무 위반과 관련해 금융사나 경영진이 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사례가 아직 없어, 금융당국의 제재 수위는 점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지난해 적발된 경남은행의 3000억 원 규모 횡령 사건에 대한 금융당국의 징계 수위가 이번 부당대출 사건의 제재 수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회장실 압수수색과 조 행장의 피의자 전환 등 거센 압박에 나선 것은 임 회장에게 적어도 연임포기 등의 입장표명을 하라는 신호일 수 있다"면서 "국정감사 후 임 회장의 임기 완주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었으나 이번 3차 압수수색과 더불어 금감원 정기검사 연장 등 모든 것이 사실상 임 회장에 대한 사퇴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