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은행권이 관세정책의 영향을 반영한 기업금융 포트폴리오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방향성이 나오지 않은 만큼, 반도체·자동차·2차전지 등 주요 수출업종에 대한 모니터링을 이어가며 상황에 맞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올해 업종별 기업대출 한도를 설정하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따른 업종별 영향도를 반영했다.
은행들은 업종별로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며 미국에 새로 도입되는 규제의 업종별 영향을 정밀하게 분석해 대응할 방침이다.
농협금융은 지난 20일 모든 계열사의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와 리스크 실무 책임자가 참석하는 리스크관리 전략회의를 열고 자회사별 리스크 관리 계획을 집중 논의했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에 대비해 정밀한 산업 분석을 통한 리스크 점검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칩스법) 등 정책 변화에 따라 배터리·자동차·반도체·태양광 업종의 수익성 저하와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수익성 저하가 현실화되고 있는 업종이나 중장기 업황 악화가 예상되는 업종에 대해서는 취약 업종으로 선정해 보수적 익스포저(대출) 관리 정책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환율 변동성이 여전히 크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향이 나오지 않은 만큼, 아직 유망 업종과 피해 업종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10% 보편관세와 60% 대(對)중국 관세 부과’라는 동일한 미국의 관세정책 시나리오를 두고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산업연구원의 총 수출액 감소 예상 폭은 각각 226억 달러, 92억 달러로 큰 차이가 났다
이에 은행들은 미국의 관세 도입에 따른 불확실성이 예상되는 반도체·자동차·2차전지 등 주요 수출 업종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영향도를 분석하고 필요 시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설 예정이다. 업종별로 대출 한도를 조정하거나 대출 조건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별개로 중소 수출입기업의 유동성은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7개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부산)은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협업해 금리는 낮추고 보증 한도는 높이는 ‘수출패키지 우대보증’을 통해 올해 중소·중견기업에 100조 원의 무역보험을 제공한다. 또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특별대출을 실시하는 등 자금 공급도 이어나간다.
아울러 고환율 리스크로 인해 외화 위험가중자산(RWA)의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은행들은 자체 위험가중자산 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본부 차원에서 진행되면 RWA 모니터링을 개별 영업점 단위에서도 관리할 수 있도록 조만간 체계를 개편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상반기 대출 만기가 도래한 기업 가운데 재무 성과가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우선 대상으로 조기 신용평가를 진행하고 악화 예상 기업을 ‘관심기업’으로 지정해 장기적으로 여신 한도를 축소한다는 계획이다. 농협은행은 추가적인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자산별 일일 RWA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한편 부서별 환율 변동 영향도 분석 및 미사용 한도 감축 등을 실시하고 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