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초 상반기로 예정됐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재개 시점이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이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달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이하 통방회의)를 앞두고 있는 한은의 고민은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지난해 10월부터 총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 인하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2.75% 수준이다.
한은은 올해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밝히면서 연내 1~2회에 걸쳐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기준금리 결정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월을 포함해) 올해 2~3회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은 한은의 가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한은이 상반기 중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재개하며 경기를 띄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한은은 지난 2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하향했다. OECD의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도 1.5%로 대폭 낮아졌다. 한은은 다음 달 17일과 5월 29일 통방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다만 다시 늘어나고 있는 가계부채가 발목을 잡는다. 지난달 전(全)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672조 원으로 전월 대비 4조 3000억 원 증가했다. 토지거래허가제(이하 토허제) 해제 여파에 따라 확대된 주택 구매 수요가 가계대출 증가로 이어진 셈이다.
서울시가 한 달 만에 토허제 확대 재지정에 나섰지만, 주택 매매 심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향후 1년 뒤 집값 상승 기대 심리를 나타내는 주택가격전망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이달 105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6p 오른 것으로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보였다.
금통위도 부동산 시장 과열에 따른 가계대출 증가세를 경계하고 있다. 지난 24일 공개된 '2025년 제4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서울 일부 지역의 토허제 지정이 해제되면서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 매도호가가 급증했다"며 "수도권 여타지역에서도 주택가격 선행 지표들 간 엇갈린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향후 주택시장이 선도지역을 중심으로 과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금리 인하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4.25~4.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중국과 일본, 영국도 줄줄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현재 상단 기준 1.75%p인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로 더욱 벌어질 경우 최근 나타나고 있는 원화 약세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 한국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강화가 점쳐지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도 늦어지고 있어 원화 약세 요인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5일 장중 한때 1470원을 돌파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미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 이후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연준의 통화정책 경로, 관세정책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통화정책은 이런 효과를 지켜보며 결정할 것"이라며 "대외 리스크에 국내 정치·경제 상황과 맞물리면서 국내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경계감을 가지고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하는 필요하지만, 집값과 가계부채, 환율 등 금융안정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금리 인하 적기로 5월보다는 7월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연내 1회 금리를 낮춘 후 내년 초에 한 차례 더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보인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