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골 내려가는 길, 진달래가 비를 맞고 있다.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혀있다. 남한산성 아래 법화골은 조선 인조 때 청나라군 유인술에 속아 우리 병사 300명이 몰살당한 곳이다. 상관은 북문을 통해 병사들을 억지로 내몰았다. 뒤에서 머뭇거린 병졸은 현장에서 참수당했다. 북문 현판 전승문은 이런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데, LH는 그 땅을 파헤치겠단다. 이곳 주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집회를 나갔다. 그때 법화골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 되어 온 공동체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은 2014년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법화골 주민들이 사용하던 연자방아 역시 경기도 제82호 문화재로 지정됐다. 하남시는 교산 3기 신도시 재개발로 인해 연자방아를 이전한다고 했다. 천만다행히 존치로 결정 나 그대로 두고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나는 너무 기뻐 수리를 하는 인부들에게 불 피울 드럼통과 전기를 제공하고 라면을 끓여 주었다. 그렇지만 더는 인적을 들을 수 없다. 어둠 속에서 기침 소리만 듣고도 서로를 알아보던 이웃들은 모두 사라지고 적막만 남았다.
옛날 이곳은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주민들은 산곡동 미군 부대 군용 트럭을 타고 시내를 오갔다. 마을버스가 법화골까지 올라온 것은 1991년의 일이다. 마을 사람들은 단체로 이 버스를 타고 시내 목욕탕에 갔었다. 바쁜 이웃 대신 시장을 봐주고 대소사를 서로 전하기도 했다. 100번 버스는 주민들의 미팅 장소였던 셈이다. 지금 그 버스는 텅 비고 차장에 구름만 매달린 채 달린다.
어느 날 귀가하던 길이었다. 진눈깨비가 무섭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옷을 가볍게 입어 입술이 얼얼했다. 그때 마침 100번 버스가 오고 있었다. 나는 차를 타러 뛰었다. 선글라스를 낀 여기사에게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태워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버스에 올라서 이웃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종점에서 내리자 개들이 꼬리 치며 달려왔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며 어둠 속 길을 익숙하게 걸어 집에 도착했다. 며칠 후 종점을 지나고 있는데, 그 여기사가 시동을 걸고 있었다. 외상 버스를 탔던 일이 생각났다. 버스 꽁무니를 탁탁 치며 문 앞으로 갔다. 못 낸 요금을 건네며 일전에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그녀는 자주 있는 일인 양 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떠났다.
나무가 땅속에 잔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듯 나는 어느샌가 이곳의 찐 주민이 되었다. 지방에 일을 보러 가던 날 한파가 들이닥쳤다. 워낙 허술한 우리 집 수도가 얼을 게 분명했다. 고민하다 마을 끝 집에 전화해 사정을 말하고 비번을 가르쳐줬다. 아저씨는 곧바로 내려가 수돗물을 틀어 놓고, 녹슬어 물이 새는 순간온수기도 고쳐놓았다고 했다.
나는 한강 변을 지날 때면 방벽처럼 서 있는 아파트를 쳐다보곤 한다. ‘저 창, 한 칸’이 몇억씩 아니, 몇십억 한다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꼭 ‘달나라의 장난’ 같다. 벽 하나로 이웃을 가르고 옆에 누가 사는 줄도 모르는 아파트촌을 만들어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봄이 오면 꽃소식처럼 낭자해지던 법화골, 사람들 소리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빈집에 목련이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