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운동장 기억의 대부분은 교장 선생님이 구령대 위에 서서 훈화 말씀하시던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말의 구체적인 내용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훈화 말씀 시간은 곧 흙장난을 치는 시간이었다. 한참 서 있으면 곧 지루해져서 발끝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에게 흙을 튀겼다. 바닥에 앉을 수 있는 운수 좋은 날에는 손으로 흙을 모아 쌓거나 지나가던 벌레를 장난감 삼아 놀았던 것만 생생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거 같아 고개를 들어 구령대를 쳐다보면 아직도 누군가가 일장연설 중이었다. 구령대는 늘 선생님들 것이었다. 운동회 때 유일하게 그늘이 생기는 구령대 아래에는 대회 본부석이 차려졌다. 우리는 옆쪽에 위치한 스탠드에 자리를 잡았다. 운동회를 시작하는 타이밍엔 스탠드에도 그늘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움직이면 여지없이 직사광선이 내리 꽂혔다. 그때는 학생들이 햇빛을 받는 게 너무 당연해서 한껏 찌푸린 채 손 그늘과 손부채를 만드는 게 전부였다. 요즘은 분위기가 반전됐다. 운동회 때 학생들을 위해 각 스탠드마다 천막을 쳐서 햇빛 가리개를 만들어 주는 건 기본이고, 교사들의 전유물이었던 구령대까
우리 반 아이들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일 등교한다. 교육부에서 2학기부터 전면 등교를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학교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우리 학교는 한 달 먼저 등교를 시작하기로 했다. 1년 4개월 만에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올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아이들을 매일 보려나 기대하던 찰나에 옆 학교에서 확진자 수가 갑자기 늘었다. 다시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넘어가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다행스럽게 위기가 넘어갔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언제나 매일 학교에 오고 싶어 했다. 거리 두기 때문에 교실에서 별다르게 재밌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 학교가 재밌냐고 묻자, “뭘 하든 학교에 가는 게 낫죠.”라고 말하곤 했었다. 교육부에서 실시한 등교 관련 설문조사를 봐도 고등학생은 등교를 원하는 학생이 26퍼센트에 머무르는 반면 초등학생들은 열 명 중 일곱 명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역사의 기록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마지막 온라인 쌍방향 수업이었다. 어떤 내용으로 수업할까 고민하다가 교실에서 하지 못했던 음식 만들기를 했다. 6학년 실과에는 한 그릇 요리를 만드는 단원이 7차시 분량 정도 나온다. 등교했을 때 실습을 하기가 어려워서 콘텐츠로
얼마 전에 근처 초등학교에서 내년 혁신학교 신청 관련 학부모 설문조사를 돌리려다가 홍역을 치렀다.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반대한다고 학교에 항의 전화와 민원을 넣었고, 해당 아파트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아파트 벽에 붙어있던 종이에는 혁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력이 떨어지므로 찬성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과 17년도 뉴스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정말 혁신학교에 다니면 아이들이 바보가 되는 걸까. 혁신학교에 가면 학력이 떨어진다는 뉴스는 18년도에 교육부가 7년에 걸친 종단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낸 보고서로 반박할 수 있다. 기사가 났던 해를 제외한 모든 연도에서 혁신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높았다. 혁신학교에 다니면 아이들 학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실체 없는 불안에 가깝다. 필자는 첫 근무를 혁신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시작했다. 면접과 수업 실연을 거쳐 기간제 교사로 채용됐지만, 교사로서 큰 기대는 없었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진로를 모색하던 중에 공백기를 줄이려고 시작한 직장 생활이었다.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이 없었으니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설레지 않았다. 이전까지 과외 지도를 해왔으니 학교 교사도 그와 비슷한 연장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산소가 만들어지는 곳은 어딜까요?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이 신나서 대답한다. "숲이요!", "아마존 아닌가요?" 대체로 나무와 관련된 답들. 바로 답을 말해주지 않고 한참 뜸을 들이고 있으니 눈치 빠른 아이 하나가 숲이 아닌 다른 곳인 거 같다고 답을 정정한다. 아이들을 둘러본 후 정답이 '바다'라고 말하자 교실이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다. 바다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는데 어떻게 바다에서 산소가 나오냐는 아이부터, 책 어디선가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라고 써 있는 걸 봤다는 아이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한껏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면서 바다에서 산소가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바다에는 작은 플랑크톤이 사는데 그 친구들이 번식하면서 산소를 배출합니다. 우리가 숨쉬는 산소의 절반 이상은 바다에서 옵니다." 우리반 친구들과 환경 수업을 처음하면 어디에서 산소가 제일 많이 나오는 지를 알아본다. 바다가 만들어 내는 산소를 확인시키며 아이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스키마(Schema)를 깨뜨린다. 그 후에 바다가 얼마나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지 준비한 사진과 영상 자료를 꺼낸다. 주로 바다에 떠 있는 한반도 7배 크기의 쓰레기 섬과 인간이 버린 쓰
초등학교에서 보통 성교육은 보건 교사가 한다. 5학년 교육과정에 성교육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포함한 몇 차시 정도를 보건 선생님께서 수업해주신다. 덕분에 담임 교사가 직접 성과 관련된 가르치는 일이 흔치는 않다. 담임 교사 본인의 의지가 있어서 손수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하면 창체 시간을 이용해서 가르칠 수 있다. 그렇지만 굳이, 싶은 마음이 들어 포기했었다. 얼마 전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성교육을 해봤다. 6학년이라 교육과정에 자세한 내용이 없는데 여학생들에게 생리팬티 기부 제안이 들어와서 겸사겸사 진행했다. 처음엔 성교육 그거 뭐 별거라고 그냥 하는 거지!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공작새 깃털처럼 부풀어 있던 자신감은 교육 자료를 정리하면서 폭삭 쪼그라들었다. 13살은 이성에 한참 관심이 많을 나이다. 이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까지 교육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5학년 교과서 수준보다는 한 차원 높아야 했다. 작년에 배운 내용을 그대로 다시 가르치는 건 아이들도 나도 재미없을 것 같았다. 남자 여자 신체의 구조와 기능 정도는 벗어난 심도 있는 재구성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어린이들의 동심을 보호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북유럽은
어릴 적에는 스승의 날이면 학생들끼리 돈을 모아 케이크를 준비해서 파티를 했다. 반 회장을 주축으로 모여서 칠판에 풍선을 붙이고 분필로 편지를 썼다. 선생님에게 진짜 감사를 표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파티를 열어 합법적으로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요즘은 김영란법이 생겨서 이런 식의 파티는 거의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파티를 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교사들은 오히려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작년 스승의 날엔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으니 정말 아무 일이 없었고 올해엔 학생 몇 명이 꽃과 편지를 가져왔다. 편지는 받고 꽃은 사진을 찍고 돌려보내면서 사진으로 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학생이 아쉬워했지만 편지만으로 충분하다고 거듭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전체 교사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히 받았다. 스승의 날엔 교사들끼리 그간 고생이 많았다, 앞으로 힘내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스승의 날이라고 별 다를 건 없다. 평소처럼 수업을 하고, 아이들 하교를 시킨 다음에 업무 처리를 했다. 어제와 똑같이 지나갈 뻔 했는데 오전에 받은 편지를 펼치니 감회가 생겼다. 교실에 앉아 학생들이 주고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45년의 메타버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줄거리는 이렇다. 영화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VR 기계를 끼고 특정 게임에 로그인해서 하루를 살아간다. 게임 속에서 아이템을 채굴해서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걸로 현실 수입을 얻는다.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은 게임 회사가 내건 퀘스트에 도전하며 갖은 위험에 처한다. 결말에서 주인공과 친구들이 모든 퀘스트를 완료하고 악당이 물러나면서 가상공간 세계의 평화를 되찾는다는 다소 뻔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가 뻔한 것과 별개로 메타버스를 주된 소재로 삼은 영화라서 무척 흥미로웠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이다. 언제부턴가 자주 보이는 단어지만 생각보다 훨씬 예전부터 생활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메타버스 분류 중 라이프로깅(lifelogging) 분야의 대표적인 플랫폼들이다. 또, 인터넷에 접속해서 타인과 함께 하는 게임은 모두 가상 현실의 한 모습이다.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게임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태초에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같은 고전 명작들과
20년 전에는 우산 없이 등교해서 비가 오면 별다른 수가 없었다. 비 사이로 뛰어가는 축지법을 쓰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은 없어서 그냥 맞고 갔다. 어둑어둑한 학교 정문에 학부모들이 우산을 들고 서 있다가 자신의 아이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르르 쏟아져 나가는 아이들 틈에서 많던 사람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나처럼 우산도 데리러 올 부모님도 없는 아이들만 남아 있게 되면 급하게 뛰어서 집으로 갔다. 요즘은 이런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우산을 대여해주는 사업을 벌이는 곳도 있고, 교실에 남아 있는 우산들이 4~5개씩은 있어서 담임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우산을 빌려준다. 없으면 옆 반에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아이 손에 우산을 들려서 보낸다. 그러니 아이가 비 맞는 걸 강력하게 원하지 않는 이상 혼자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서 집에 갈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봄비가 내렸던 며칠 전 일이다. 퇴근하려고 나가는 데 정문 앞에서 3~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머리를 신발 주머니로 가린 채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우산이 없어서 집에 못가나 싶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태권도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가 평생 친구이며, 사회에 나가면 그렇게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다고. 훈화는 늘 친구를 소중히 여기라는 말로 끝났다.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흐르고 보니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하다. 동창들과 연락하고 지내지만 학교 다닐 때만큼 가깝게 지내지는 않는다. 사는 곳과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내가 절친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스무 살이 넘어 만났다. 대학 동기들과 동아리 후배들. 학교 발령 동기인 친구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면서 가까이 사는 몇 명과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난다. 지금껏 서로 다투거나 마음 상한 적이 없기에 시간이 지나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의 존재가 소중하다. 아이들에게 친구가 차지하는 무게감은 어른이 느끼는 것보다 몇 배는 크다. 6학년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코 친구다.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인정받기보다 또래 집단이 추켜세워 주는 걸 원한다. 반 친구들의 이목을 끌고 싶은 마음에 돌발 행동을 하거나, 이성 친구를 의식하며 신경을 쏟는다. 성격이 조용한 아이들도 자신이 무리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무
아이들은 글쓰기를 어려워 한다. 여러 학년을 가르쳐 봐도 글쓰기 만큼 격한 거부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수업이 없다. 교실 분위기가 활기로 가득 차 있으면 '글을 써 보세요' 한마디로 넘실 거리던 에너지를 다운 시킬 수 있다. 예고 없이 당장 수학 평가를 하겠다고 말해도 이보다 더 반응이 안 좋을 수는 없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할 때 아이들이 이목구비가 심하게 구겨지던 걸 떠올리면 가히 공포의 글쓰기다. 간혹 글로 막힘없이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런 아이들은 가뭄에 콩나듯 드물다. 어른들에게도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백지 앞에서 막막한 건 어른이나 어린이나 매한가지다. 투정 부리는 아이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가끔은 글이 너무 안 써져서 마감을 못할까봐 공포에 떨 때가 있다.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교육 해야 하는 상황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분투한다. 글쓰기를 시키면서 펜과 종이를 건넨 다음 막연하게 '자, 이제 써보세요'라고 말하진 않는다. 국어 시간에 설명문이나 설득하는 글의 구조를 배운다. 각 구조마다 어떤 내용을 써야 하고, 왜 그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하나씩 익힌 다음 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