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항상 특별하다. 첫사랑, 첫학기, 첫등교, 첫만남 등. 매년 3월이 되면 학교는 다시 처음을 맞이한다. 새 학년, 새 학기의 출발이다. 움크렸던 겨울을 지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이 될 때, 아이들은 한살 더 커서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러 학교로 온다. 항상 설레기만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설렘보다 떨림이 더 많다. 나만해도 그렇다. 개학날이면 늘 배가 아팠다. 원체 예민한 장을 가졌기도 했고, 불안과 걱정 많은 성격이 장을 괴롭힌 탓이기도 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학교에 도착하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교문에서부터 교실까지 가는 길이 꽤 멀게 느껴졌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면 뛰어가서 나와 같은 반인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며 아는 얼굴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친한 친구가 반에 앉아 있으면 기뻤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배 아픔과 심장의 덜덜거림이 좀 나아졌다. 운 나쁘게 생면부지의 사람들만 그득그득 할 때도 있었다. 그때부턴 일주일 내로 어떻게든 친밀한 존재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쳤다. 운 좋게도 반에는 나와 기운이 맞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의 기운을 영양분 삼아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었
작년 5월 어느 날이었다. 다른 선생님과 복도를 걸으며 아이들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배움이 일어나야 할 곳에 배움의 주체가 없으니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대화가 길어지며 아이들이 학교에 안 올 때의 장점은 뭐가 있을지까지 이어졌다. 내가 다른 건 모르겠고 학교 폭력이 없어져서 좋다고 해맑게 말했다. 옆에서 걷던 선생님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학교 폭력이 없어진 대신에 가정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아동학대를 당하다 시설에서 보호 받게 된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A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동학대 신고로 시설 보호 기관에 갔었다. 어린 A에게 시설에서 지켜야 할 수많은 규칙들은 너무 엄격했고, 함께 지내는 아이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다. 접견하며 만난 아빠는 다시 학대하지 않겠다고 다짐의 다짐을 했다. 결국 짧은 기간 시설에서 머무르다 다시 아빠와 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하게 A를 학대했다. 학교에 다닐 땐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학대의 정도가 점점 올라갔다. 집안일
새해를 며칠 앞둔 2020년 연말 교육청에서 공문이 하나 왔다. 올해 다문화 교육 관련 연수를 들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고양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다문화 교육 연수가 필수이니 얼마 남지 않은 12월 31일까지 꼭 15시간 이상 연수를 이수하라고 해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소동은 21년 내에 연수를 학습하라는 수정 안내로 마무리 되었다. 다문화 교육이 필수 연수가 된 건 교실에 다문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문화와 크게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는 고양시 일산구 어느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우리 학교에도 한 학년에 몇 명 정도 학생이 다양한 국적을 가졌거나 부모님 중에 한분 혹은 두분 모두 외국인이신 친구들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비율을 따지면 대략 5% 남짓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비율인데 조금씩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몇 년 전에 2시간 정도의 짧은 다문화 연수를 들었다. 강사님은 경기도에서 가장 다문화 학생이 비율이 높은 안산시 원곡동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셨다. 그곳은 다문화 학생 비율이 90% 이상인 학교였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학생은 10%가 채 안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입학식 때
보통 회사에서는 1년의 마무리를 12월 즈음에 한다. 11월부터 연말 결산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학교 회계도 2학기가 한창 진행 중인 11월에 마감 요청이 들어온다. 반면에 교사들은 종업식이 끝나야 한 해가 갔다고 느낀다. 종업식 전에 작성해야 할 서류들이 많고 학기가 끝날 때까진 학교 폭력이든 사건 사고든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학교 종업식이 1,2월 중에 있으니 교사의 연말은 1, 2월에 있다. 종업식이 다가오면 두 가지 마음이 든다. 내가 힘들어 하던 아이와 이별하고 새출발 할 수 있으니 좋은 마음 하나, 나와 주파수가 잘 맞던 아이들과 헤어지는 아쉬움 하나. 기쁨이 큰지 아쉬움이 큰지에 따라 1년이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다. 보통은 아쉬움이 크지만 가끔 너무 힘들었던 해에는 빠른 이별을 원할 때도 있다. 어찌됐든 시간이 흐르면 헤어질 수 있으니까 열심히 버틴다. 올해의 종업식은 기쁨도 아쉬움도 아닌 쓸쓸함이 가장 컸다. 여러 가지 감정은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서사가 쌓이고 친밀해져야 생기는데 이번엔 도무지 그럴 틈이 없었다.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학년을 올려보내는 경우는 처음이다. 등교하면 내 자리 주변에서 기웃 기웃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아
아이 하나가 엉엉 울면서 내게 다가온다. 보통은 다른 친구가 우는 아이를 토닥이며 데리고 온다. 눈물을 쏟는 아이를 달래며 자초지정을 묻자 친구 A가 자신을 때리면서 욕했다고 말한다. 한참 성토대회를 열던 아이는 이때부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낸다.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고 폭력을 쓰는 건 선생님께 혼나야 하는 일이니까. 친구가 얼마나 혼날지, 내가 어떤 판결을 내려줄지 기대감이 차오른다. 막상 A를 불러서 삼자대면 해보면 나쁜 행동을 저지른 나름의 이유가 있다. B가 먼저 놀리고 도망쳤거나, B가 먼저 때렸거나, B가 예전 어느 날에 자신을 놀리면서 때렸거나. 보통은 셋 중 하나의 이유로 귀결된다. 장난치려고 먼저 때리는 경우는 있어도 아무 이유 없이 욕하면서 건드리는 경우는 드물다. 과거의 어떤 사건이 마음 속에 남아 있다가 갑자기 행동으로 드러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상담하면서 두 아이 모두가 잘못한 점을 발견했을 때 담임교사인 나는 홀가분한 마음이 된다. 잘못의 경중을 크게 따지지 않아도 되고, 서로 사과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 걸로 종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지만 본인들도 잘못한 점
코로나에 걸리거나 밀접 접촉자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나 인터넷에 후기를 남겨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서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다. 확진자는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병원에 입원한다. 무증상이면 보건소서 정해준 시설로 들어간다. 접촉자라고 보건소에서 연락받았다면 코로나 검사 후 자가격리해야 한다. 어른들에게는 일련의 과정들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확진이면 몸이 아플 수도 있으니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 접촉자가 되어서 자가격리하는 거라면 생활하기에 조금 불편해도 못할 일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어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다. 우리 반 학생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이들이 코로나로 어떤 일을 겪을 수 있지 끝까지 몰랐을 거다. 지난 달에 우리반 학생 A가 밀접 접촉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스럽게 음성이라고 했다. 처음 학부모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음성이니까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확진자와 학원 버스를 같이 탔는데 밀접 접촉이 되었다면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거 같았다. 집에서 가족들이랑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는 건 문제가 없겠지. 여기까지가 나의 상상력
초등학교 같은 학년에서는 비슷한 일주일 시간표를 운영한다. 반은 달라도 하루에 배우는 과목이나 내용은 동일하게 맞춘다. 매년 2월 즈음에 교사들이 모여서 한 주 시간표를 어떻게 운영할지 정하거나, 학년 부장이 반별 시간표를 결정해서 공유하면 다른 교사들이 틀에 맞춰 비슷하게 짠다. 드물지만 매주 회의를 통해 모든 시간표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일 년에 한 번 시간표를 정하든, 매주 한번 시간표를 정하든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규칙이 있다. 체육은 가급적 1교시를 피하라. 길지 않은 교사 경력이지만 체육을 1교시에 고정해 둔 시간표를 보거나 짠 적이 없다. 아침부터 운동장에서 수업하는 장면을 보는 건 드문 일이다. 체육 전담교사나 스포츠 전문 강사가 아닌 담임교사가 체육 수업을 하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체육은 보통 점심 먹고 잠이 쏟아지는 5교시나 햇빛이 너무 강하지 않은 오전 어느 때에 하는게 일반적이다. 처음 교사가 되어서 동학년 회의에 들어갔을 때 50대 초반의 교사 경력 30년 차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귓가에 생생하다. "1교시에 체육하면 애들이 너무 산만해져서 안돼."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격렬한 활동 후에 아이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홀수와 짝수로 나눠서 등교하다가 전체가 다 모인 건 6월 4일 뒤로 4개월 16일 만이었다. 아침 시간의 찬 공기를 뚫고 학교에 온 아이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마친 뒤 한명씩 교실에 입장했다. 약간은 어색하고, 약간은 설레는 새학기 특유의 분위기가 10월의 교실 안을 감돌고 있었다. 절간처럼 조용하던 교실이 간만에 활기를 띄고 시끌벅적 했다.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편승해 나도 평소처럼 아이들에게 '아침은 먹었느냐', ' 잠은 잘 잤느냐' 같은 말을 건넸다. 10명 이내의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번 씩 올 때는 교실이 너무 조용해서 그런지 농담을 걸어도 대답이 시원찮았다. 코로나가 사람의 성격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이들의 재잘거림까지 가져간 모양이었다. 열 명 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공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실이 조용했었다. 등교하자마자 1교시부터 이동 수업이 있었다. 여름 방학 이후로 처음 하는 이동 수업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아이들은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받다가 집으로 가곤 했다. 교사들이 교실을 옮겨 다녀서 학생들은 이동할 일이 없었다. 짧아진 쉬는 시간과 이모저모로 제약이 많은 수업 내용 때문에 학교에서 몸을
아이들 교육용으로 나온 코딩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겨울왕국의 엘사가 모니터 어딘가에 서 있고, 화면의 오른쪽에는 코드를 입력하는 란이 있다. 사용자가 입력한 코드에 맞게 엘사가 선을 따라 움직인다. 캐릭터를 선의 처음 지점에서 끝 지점으로 이동시켜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 코딩의 초반부는 간단한 직선 이동과 정사각형 이동이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쉽게 코딩 수식을 찾아낸다. 게임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콧노래를 부르는 친구들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반 친구들이 좌절을 겪는 건 코딩의 6단계부터다. 엘사가 움직이는 각도, 회전하는 횟수, 움직이는 거리 등이 늘어나면서 코딩 수식이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5단계까지는 틀렸을 때 한 두번 정도 수식을 수정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코딩의 6단계는 11살 아이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엘사가 이동하다가 어딘가에서 멈추면 코드 처음부터 전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잘못된 부분을 찾기 위해 수식을 전체적으로 다시 짜거나, 코드의 일부를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반복된 코드 확인과 수정, 끝없는 실패로 지쳐가는 아이들이 생긴다. 특히 빠른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 널리 알려진 안중근 의사의 명언이다. 그는 사형 집행 전 마지막 소원으로 읽다만 책을 마저 읽게 해달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독서가였다. 나는 안중근 선생님처럼 죽기 직전에 읽던 책을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틈나면 책을 읽어서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는다. 활자 중독처럼 끊임없이 읽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읽었던 건 아니다. 초등학생 때는 평범하게 학습 만화나 전집류를 읽었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면서 만화책에 빠졌다. 만화책은 너무 강렬하고 중독적이라 걸어다니면서 만화책을 펼쳤다. 한번은 만화를 읽으며 걷다가 노상에서 생선을 파시는 할머니의 바구니를 밟았다. 어찌나 스냅 좋게 밟았던지 바구니가 180도로 뒤집어지며 바닥으로 생선들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교복 입은 내가 쩔쩔매며 굽신거리는 걸 보곤 그냥 가라고 하셨다. 그 뒤론 걸어다니며 만화책을 읽지 않았다.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지혜의 팔 할이 만화책에 나와 있었다. 친구 사이의 의리는 ‘원피스’ 속 루피와 해적 친구들을 지켜보며 체득했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그 남자 그 여자’를 읽은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