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옆 좌석 안모 집사님이 내 손을 잡더니 말문을 연다. ‘오월은 참 좋습니다. 나뭇잎의 싱싱한 기운도 좋고 짙은 숲의 깊은 느낌- 모두 싱그럽고 시원스러운 빛입니다.’라고. 나는 엉뚱한 그러나 싫지 않은 답변의 인사말을 드렸다. ‘저는 계절의 5월보다 안 집사님의 아들 ’0록‘이의 봉사하는 모습이 더 든든하고 5월의 청년으로서 자랑스럽고 장래가 푸르러 보입니다.라고.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봄이다. 5월의 봄날에는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는 노인들도 젊은 모습이다. 피천득 선생은 《오월》이라는 수필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청신한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이어서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라고도 했다. 내 어머니 별명이 ‘앵두’이어서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피천득 선생은 ‘오월’이라는 수필 마무리 부분에서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라고 썼다. 이 문장은 피천득 작가를 영원히 대신할 것이다 박완서 소설가는 《피천득 선생을 기리며》에서 ‘나는 박애보다 편애를 좋아하는데 아마 선생님도 그러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선생님 댁에
지난 식목일에는 서울에 있는 손자 손녀에게 편지를 썼다. 개인적인 일로 편지를 쓸 때 나는 마음 가볍고 흥미롭다. 내가 촬영한 사진 아래 간단한 문장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개성 있게 제작한 우편엽서를 2000년부터 꾸준히 써오고 있다. 우편엽서나 편지나 쓰는 순간부터 받는 사람의 마음과 인연을 생각하며 정성껏 써서 우체국으로 가서 보내고 나면 나만의 삶에 충실했다는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서울에 살고 있는 손자 손녀의 생일은 이 달에 다 들어 있다. 손녀가 먼저이고 맏손자는 오빠인데 중하순이다. 찾아가서 녀석들 나이에 걸맞게 신나게 해주고도 싶다. 하지만 시시한 할아버지는 치킨 값에라도 보태서 제 아버지가 내 몫까지 즐겁게 해 줄 것을 부탁하며 몇 푼 안 되는 지폐와 축하의 원고지 글을 아들에게로 보낸다. 호수가 있는 동산에 올라 진달래를 본다. 다른 나무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 그런데 내 발길 앞 진달래나무는 가지 하나에 작은 꽃 한 송이만 피어 있다. 그 꽃잎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떨고 있다. 문득 아내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세상 온갖 작은 바람에 떨면서도 목소리 한번 돋우지 않았다. 가족들의 미세한 감정을 살펴 위로만 하며 살다 간 사람이다. 정채봉
나는 박인환의 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에서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잘 아는 시인 후배 이름이 ‘인환’이다. 성은 추가이고, 호는 추산(秋山)이다. 그런 그가, 가족을 잃고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다고 신음하고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주 한옥마을로 당장 오라는 것이다. 오지 않으면 자기가 걸어서라도 데리러 오겠다면서. 전주역에 내리면 첫 마중 길에는 프랑스 파리풍의 붉은색 1000번 버스가 한옥마을로 모셔다 드리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코앞에 전동성당이 있다. 맞은편은 경기전이다. 좀 더 걷다 우회전하여 전주천변 쪽으로 100여 미터 가면 최승범 시인의 '고하 문학관'이 나온다. 이어서 천변 쪽으로 더 내려가면 (사)전주한옥숙박체험협회 이사장으로서 이름은 인환이요 호가 추산이라는 시인이 운영하는 업소로써 2층 한옥집이 있다. 명당 터 이마의 대문에는 “한옥의 별” ⸀금원당(琴園堂)」 ‘전주시 지정 한옥마을 우수업소’라는 동판이 붙어 있는데 별 3개가 새겨져 있다. 추산을 만난 그날이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안마소로 데리고 갔다. 육체적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그
산길을 걷기 위해 과수원 옆을 지나며 본다. 어젯밤 비에 젖어 눈트는 매화나무 가지 끝 부분의 매화를. 콩알만 한 크기의 매화 꽃망울은 붉은 화피가 별자리 같이 째지면서 희고 맑고 연한 매화의 속살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저렇듯 여리고 보드랍고 아련한 꽃잎으로 빗물이 스민다면 아리고 쓰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서둘러 오신 화신이요 이 땅의 고운임처럼 바삐 오신 꽃잎이 비에 젖고 있다는 생각에 안쓰러웠다. 매화는 분명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화피가 째지는 아픔을 견디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 밤 편한 잠결이었구나. 나무라고 아픔이 없겠는가. 매화는 삼천 년 전 중국을 원산지로 한국에 전해졌다. 이어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문화적 의미와 함축된 뜻은 각기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절개와 금욕의 상징으로서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데 있어 으뜸 꽃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홍매는 성적인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매화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중국의 꽃이라고 하면서 약용으로 그 매실이 일찍부터 이용되어 왔다. 그리하여 중국, 한국, 일본을 매화권 문화라고 하였다. 매화는 겨울 언 땅에서 피어나는 강인함만 있는 게 아니다. 역사와 사회 그 모진 한파에 시달려도 동북
에세이는 자유로운 문학이지만 자기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 비록 평범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진실이 탑재되어야 힘을 얻는다. 수필적 사유의 깊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심도와 깊은 상관성을 갖는다. 동시에 독자에 대한 설득력으로 이어진다. 허풍 떨지 말고 겸허하게 수신에 힘써야 한다. 그런데 내가 성장해 오는 동안 학교 졸업식에서나 대학 학위수여식 때의 총장 축사에서 보면 거창한 말들이 많았다. ‘큰 꿈을 가져라’ 고 하거나 일류대학, 일류 사회, 선진국으로의 진입, 부강한 한국 등, 그것은 결국 경쟁으로 이어지고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상징하게 되었다. 따라서 학교에서나 기업에서나 연구기관에서나 수석이 되어야 하고 등수 안에 들어야 대접을 받았다. 그런 사람만이 행복한 것 같았다, 다수의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행복을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고 배우지도 못했다. 행복에 대해서 선생님이나 부모로부터 배운 게 없다. 돈 때문에 한숨짓고 다투며 손발이 갈라진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돈이 있으면 좀 더 편하고 행복하겠구나. 하고 ‘돈 = 행복’을 막연하게 동경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학생은 공부 못하면 불행하고 어른은 가난하면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반장선거에 나섰다. 그런데 그 아이는 투표 때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고 상대편 경쟁자 이름을 적어낸 탓으로 지고 말았다. 왜 그랬냐면 두 아이는 원래 사이가 좋아 투표 때 서로 상대방 이름을 적어내자는 약속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상대방 아이는 그것을 어기고 본인 이름을 써낸 탓으로 당선이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거와 표(票)에는 패자는 없고 승자의 느끼한 웃음만 있다. 또 그렇게 약속을 어기고 이기고 보자는 자들이 우등생도 되고 학생회장이 되어 일류대학을 진학해서 고시에 합격하여 고속 승진을 하며 거들먹거리며 살았다. 그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국어 실력이 밑 힘이요. 인문학이 인생 공부의 기본이라고 한들 먹혀들겠는가. 정채봉의 ‘두꺼비와 개구리’라는 글이 떠오른다. 두꺼비와 개구리가 논두렁길을 가고 있었다. 개구리가 엉금엉금 기는 두꺼비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느리게 기어서 언제 양지바른 언덕에 도착하니?’ 두꺼비가 숨을 가쁘게 쉬는 개구리를 향해 대꾸했다. ‘그렇게 빨리 가서 뭐 할 거지?’ 개구리가 눈을 뒤룩거리며 대답한다. ‘그냥 빨리빨리 가는 거야, 가서 시간이 남아 누워
나이가 들수록 절대자의 섭리에 순응해야겠지 싶다. 운명이란 두 글자가 품고 있는 그 의미 속으로 푹 빠져들어 허둥대다 끝나는 것이 인생인가 싶기도 하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내며 버스비를 아끼겠다고 온몸으로 걸었다. 기초적인 생활경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때때로 하늘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지족자선경(知足者仙境)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살았다. 매사에 족한 줄 알고 나와의 인연에 감사하며 상대를 배려하고자 했다. 따라서 창조적인 자신의 빛과 스타일을 위해 나 자신답게 살고자 했다. 그런데 진(眞)과 선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을 때 영혼이 감전되어 죽어 가는가 싶기도 했다. 몇 년 전 이청준의 산문집에서 『부끄러움, 혹은 사랑의 이름으로』라는 글을 읽었다. 내용은 이렇다. 한국전쟁의 어느 해 겨울, 외국 선교사가 눈 덮인 시골길 다릿목을 지나가는데 교각 아래에서 웬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내려가 보니 한 남루한 여인이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죽어있는데 그의 품속에는 갓 태어난 여자아이가 아직 살아 울어대고 있었다. 심한 눈보라와 추위 속에서도 아이가 살아남은 것은 그 엄마가 자신의 옷을 벗어 아이를 꼭꼭 감싸 안고 죽었기
신정의 새벽 교회의 나무의자에 앉아 기도한다. 큰아들을 사랑하고 응원할 방법을 알게 해주시라고 했다. 작은 아들은 미래의 희망을, 외동딸은 행복의 길을 잘 터득하고 살아가기를 빌었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내 인생에 따른 아이들이 불쌍하기만 하여 가슴이 복받쳐 올라 울었다. 희미한 불빛에 의지하여 아이들과 아내에게 스마트 폰에 문자를 심어 보냈다. ‘사랑하는 너에게 금년에는 더욱 따뜻한 아버지가 되어야겠기에 아파트 옆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있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금년에는 더욱 가까이 지내면서 웃는 시간이 많도록 서로 마음을 기울이자. 너희와의 사랑을 위해 노력하마.’라고. -이 일기는 2016년 원숭이해 아침에 쓴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그때의 일기를 읽어보며 오늘날 우리 가족의 삶과 건강을 챙겨보고자 한 뜻이다.- 한때는 그믐날 지리산 아래의 백무동이나 장터목산장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갔다. 정상의 ‘지리산 천왕봉’이라는 돌비가 있는 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야호!’를 외치며 가슴 큰 기쁨을 맛보곤 했다. 장엄한 빛이 산 정수리를 붉고 뜨겁게 물들
12월도 하순 길이다. 세월은 벌써 일 년을 다 소비해가고 남은 시간의 잔고는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산중 무일력’이라고 산에는 달력이 없다고 했다. 아프리카 오지에도 일 년을 365개로 쪼개 놓은 시간 같은 것은 없다. 현대인은 시간에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면에서도 자유를 잃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가만히 있으면 부동산 경기에 아파트값 폭등에 뭔가를 해야 할 일을 안 하면서 손해 보며 뒤진 것 같다. 높은 계층의 인사를 만나지 못하면 세상 정보에 뒤지고 하위계층으로 추락하는 기회 상실자 같은 스트레스도 따른다.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체, 일류기업의 인사는 매년 1월 1일 자로 발표되었다. 그에 앞서 문인들의 행사를 비롯한 예술단체 그리고 문화계의 수상식 행사는 보통 12월에 있었다. 12월이란 끝 달에는 개인이나 조직이나 연말정산에 따른 금전적 압박을 느끼며 정리 정산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수상자나 승진 자와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얼굴과 명예가 드러난다. 그러나 죽어라고 일하고 달려왔어도 매달 권에 들지 않거나 행운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더 많았기에 국민들은 혈압이 올라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아라비아 숫자는 우리에게 많은 스트
지난밤 빗물에 젖은 낙엽이 사람들 발길에 밟혀 형체를 잃어가고 있다. 생각 없이 아침 산길에 나섰다 낙엽의 가는 길을 생각하게 된다. 생명의 끝인 허(虛)와 공(空)과 무(無)를 떠올리게 된다. 공부하고 기도한다는 게 결국은 얼마나 부끄러움을 알고 살다 가는가?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헸다. 산길을 돌아 동물원 뒷산 숲 속 휴식공간에 이르렀다. 운동기구와 함께 장의자 세 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여기 앉으세요. 스티로폼을 놓아두어 젖지 않고 온기가 남아 있네요.”하고서 의자에 앉아 있던 분이 내게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히 갈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은연중 그분 뒷모습에 시선을 주고 한동안 서 있었다. 회색 점퍼에 검은 바지, 반백 머리스타일과 하얀 운동화에서 노인의 온유함이 깊게 느껴졌다. 노인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가로 50cm 세로 20여 cm의 직사각형 스티로폼에서는 노신사의 궁둥이 체온이 남아 있었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의 역사는 자리다툼의 투쟁이 아니었을까. 눈비가 내릴 때는 습기가 없는 자리, 추워지면 태양 볕이 잘 드는 곳.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하는 너럭바위의 중심- 농본 사회의 아랫목 자리에서부터 장군의 자리와 졸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