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2차 가해’ 문제는 단기간에 드러났다. 국민일보가 낸 “혐오 발전소 댓글창” 기획보도를 보면 이태원 참사 당일부터 열흘 뒤까지 ‘이태원’ 내용이 들어간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혐오를 포함한 댓글은 58.27%로 절반을 넘었다. 참사 이전 코로나와 대선이 있던 시기조차 비혐오 댓글 비중이 절반을 넘었던 것과 대비된 결과다. 전형적인 사회적 재난을 두고 충격이나 애도 등의 반응보다 혐오 감정이 더 높게 포착된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경찰을 비난하는 분위기에 주목했다. 경찰의 상황 통제가 실패했었기 때문에 참사를 키웠다는 언론 보도 이후, 경찰에 대한 비판이 당연해졌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질타가 더해지면서 “모두가 공격하는” 공방의 장으로 나아갔다고 진단했다. 2차 가해는 포털 댓글에만 있지 않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막말과 폭언을 쏟아낸 일부 단체와 유튜버를 상대로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분향소 앞에서 일부 단체가 대형 현수막과 방송 차량을 두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자극적이고 모욕적인 비난을 서슴없이 내뱉는 행태를 보였다.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와 아픔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지난 16일 이태원역 거리에서 열렸다.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는 희생자들의 생전 사진과 유족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스쳤다. 진행자는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리고 이름 하나마다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추모는 대상이 되는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일이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면서 슬픔을 넘어 현재를 살아갈 힘을 찾아내게 한다. 애도의 한 방법이기도 한 추모는 희생자를 잃은 상실과 슬픔, 그리고 아픔을 유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표현하게 한다. 이런 시간의 누적이 서로를 지지하는 힘을 이룬다. 희생자에 대한 개인의 기억이 미디어를 통하면 사회적 기록이 된다. 이렇게 모인 추모 기록은 사회적 기억을 구성한다. 희생자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이유가 될 것이다. ‘미안해, 기억할게’라는 제목으로 한겨레가 연재하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야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고 있다. 엄마 아빠에게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것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2030년까지 언론사 자체부터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화석 연료를 채굴하는 기업의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때 기후위기가 거짓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 기후위기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거나 답이 없는 문제라고 외면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고민하는 토론회가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철 학술대회에서 열렸다. 기상 전문 기자는 기자들이 ‘보도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자연재해를 우선으로 하고 중요하게 다루는 것에 비해 기후변화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편집국 분위기를 당장 바꾸기가 쉽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재생 에너지 연구자는 대중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보를 습득하는 주요 경로가 언론인데, 언론은 기후위기를 많이 다루지 않는 데다 제대로 다루고 있지도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얼마나 상황이 나쁜지 이야기하는 데 익숙해 있고, 해법을 위한 토론이 필요한데 이미 누구 편을 들어 입장을 정해두고 보도해서 논의조차 어렵게 만든다고
지인들과 파스○○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가 장소를 급하게 변경했다. SPC그룹 계열사 브랜드 목록을 공유하면서 당분간은 다른 커피숍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말한 이가 있어서였다. SNS에 ‘#SPC불매’, ‘#멈춰라SPC’ 해시태그가 늘었다. 불매운동 지지가 쉽사리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PC계열사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이 지난 15일이다. 동료들이 사고를 목격하고 직접 수습했다. 사고가 난 기계는 가림막을 해 두고 동료 노동자들이 일했다. 노동부가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의 트라우마 등을 이유로 작업 중지를 권하자 그제야 일단 중단했다. 사망한 노동자 빈소에 회사가 놓고 간 파리바게뜨 빵 상자 사진이 알려지고 비판 여론이 조금씩 확산했다. 노동과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일자 관행이고 회사방침에 따랐다는 대답이 사태를 키웠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사고 발생 엿새 만인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대체로 ‘늦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룹 회장이 내는 사과문 낭독은 소리가 작았다 하고, 기자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공지한 기자회견이었으니 ‘보여주기식 사과’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지난 8월 8일, 수도권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역대급’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났나 싶을 정도로 무섭게 내린 폭우였다. 하루 최대 강수량과 시간당 강수량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날이었다. 서울 동작구엔 시간당 강수량이 140밀리미터를 넘겼다. 1907년 기록을 시작한 이래 시간당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이 비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라는 주택에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이 집 안에 고립돼 목숨을 잃었다. 동작구에서도 반지하방 거주민이 같은 사고로 숨졌다. 유례없는 폭우가 가장 먼저 할퀴고 지나간 곳이 반지하였다. 기후 재난은 모두에게 불행을 안기지만,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취약한 조건에 놓인 이들에겐 비극적 참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후 위기에 대해 언론은 어떤 보도를 주로 하고 있을까? 민주언론시민연합이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1주일 동안 신문과 방송을 모니터한 결과를 참고했다. 기후 위기 관련 기사의 상당은 특정 기업의 대응을 소개하고 계획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국내 최초 혹은 최대를 언급하거나 강조하면서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강조한 홍보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기업이 신재생에너지로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잘 따른다면 그 자체
일제의 식민통치는 공식적으로 1905년 통감부 설치에서 시작해 1945년까지 무려 35년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1880년 무렵부터 조선을 침략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반세기 이상 조선의 식민 착취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 일본은 정보통제부터 실행했다. 조선인들이 말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해야 저항이 쉽게 일어나지 않고 손쉽게 조선을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1907년에는 신문지법, 1909년에는 출판법을 만들어 두고 조선어 민간신문과 잡지를 사건검열 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본격적으로 탄압했다. 조선어 민간신문이 일제 검열에 어떻게 투항하려 했는가를 연구한 이민주(2018)의 연구를 보면, 조선어 신문에 내려졌던 행정처분에는 주의, 삭제, 차압(압수), 발행정지, 발행금지가 있었다. 1930년 ‘조선에 있어서의 출판물개요’를 토대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두 신문에 내려진 1926년이후 1929년의 압수처분 월별 건수를 살펴보면 시기별로 차이는 있지만 매달 1~3건, 많게는 10건에 이르기까지 압수를 당했고, 발행정지 기간을 제외하면 압수가 없는 달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조선어 민간신문이 삭제나 압수를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 노동조합 파업 사태를 두고 ‘제2의 쌍용차 사태’가 우려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지만, 이 말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을 의미하는지, 언론이 제대로 알고 보도하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언론은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라고 말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에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여당 대표의 말을 옮겨 적으면서, 공권력을 동원하겠다는 의미인지 아닌지 파악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희생은 최대한 막아야 하지만 무력 충돌로 발생하는 상황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뉴스임은 분명해서 그 시기가 언제인가에 좀 더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론은 노동쟁의 관련 보도에 소극적이다. 대우조선 하청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건 6월 2일이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 대표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불법행위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6월 21일 열기 전까지만 해도 대우조선 하청 노조의 파업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음날인 22일 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높이 1미터의 철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뒀다. 쪼그려 앉은 유 부지회장은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손팻말을 움켜쥐고 비좁은 철창 사이로 얼굴을
언론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바닥 수준이라는 한탄은 새롭지 않게 들린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행하는 ‘디지털 뉴스리포트’ 뉴스 신뢰도 평가에서 최하위 혹은 꼴찌 수준이라는 평가를 종종 듣기 때문이다. 한국은 46개 국가 중에 2021년 38위, 2022년 올해는 40위라는 결과를 받았다.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 하락은 전 세계적인 경향이다. 2021년 평균 44%였던 신뢰도 수준은 일 년 사이 42%로 낮아졌다. 뉴스리포트는 코로나 영향을 지목했다. 다른 정보원에 비해 공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사 뉴스에 대한 신뢰가 상승했었다가,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니까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가 30%로, 글로벌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5년 전인 2017년 23%였던 것에 비하면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조사는 “최근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뉴스 기피 문항을 추가했다. 뉴스 기피 경험은 뉴스 신뢰도가 낮을수록 많게 나타났다. 뉴스 기피 경험자들은 “뉴스를 보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라거나
“1980년 5월에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고, 인터넷이 있고, SNS가 발달했다면, 신군부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했을 겁니다.” 나경택 기자는 지금도 5월이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기자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쉽게 잊히지 않는 듯했다. 광주 지역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랬듯 그 참상을 목격하고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을 싣지 못했다. 신군부의 보도통제 때문이었다. TBS가 5·18민주화운동 42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오일팔 증명사진관’에서 나 기자는 당시 광주의 상황을 밖으로 알릴 수만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광주는 고립무원의 도시였다. 광주와 전남 지역 외 다른 곳에서는 광주의 진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정부는 광주시민을 무자비한 폭도로 매도했다. 나 기자는 건물에 숨어 촬영을 계속했다. 옷 안에 카메라를 숨기고 다녔다. 건물 옥상에서 군용헬기가 자신을 조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황급히 숨었던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그는 계엄군이 시민을 곤봉으로 구타하는 장면을 찍었다. 광주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름과 사진을 잃을 수 없었다.
노인학대 근절, 모두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2017년 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의 고령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이며, 65세 이상 인구는 16.5%로 노인 빈곤율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노인복지 대책과 이들에 대한 인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2020년 노인학대신고 건수는 1만 6973건으로 2019년 1만 6072건보다 5.6% 늘어났고, 이 가운데 학대사례 건수는 6259건을 차지해 전년의 5243건보다 19.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생장소는 가정이 88%로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노인요양시설 등이 8.3%였다. 학대행위자는 아들 34.2%, 배우자 31.7%, 기관 13%, 딸 8.8% 순으로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학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대부분 가정 안에서 존속으로부터 가해가 이뤄지기 때문에 자식 일이라 차마 터놓지 못하고 혼자 고통을 감내하는 경우가 많은 바 이에 대응책을 함께 고민해보자. 첫째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고 경찰이나 노인보호 전문기관에 신고하도록 올바른 인식전환 등을 위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둘째 노노부양(노인이 노인을 부양)이 매년 증가하는 가운데 아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