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와 화해 정착을 위한 노력을 요청하고 북한을 방문해줄 것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에는 유엔 기조연설을 통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종전선언 추진상황을 설명하고 회원국들의 적극적 지지와 협조를 구했다. 이를 위해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을 미국에 보내 한반도 정책 관계자들을 만나 종전선언의 당위성을 설득하도록 하기도 했다.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남북 평화정착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평가할 만하다. 돌이켜 보면 한반도의 분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 구축과정에서 미국이 주도한 것이다. 분단이 운명이라면 마땅히 전범국가 일본이 그 짐을 지어야 했음에도 미국 등 강대국은 한반도에 그 업보를 뒤집어씌운 셈이다. 미국은 일제 강점기 친일 민족반역자 집단을 재기용함으로써 민족 내부의 갈등을 촉발하고 급기야 동족상잔의 전쟁에 이르게 했다. 이 죄업은 두고두고 미국이 갚아야 할 역사적 책무를 상기시킨다. 또한 미국은 군정을 통해 민족 내부에서 일어났던 정당한 단독정부 반대운동을 유혈 진압(4·3 사건)했을 뿐 아니라 통일정부 구성을 위한 남북 협상을 방해함으로써 민족국가 형성과 평화 정착 노력을 초기부터 깨트린
남북 간 화해를 위해 다년간 애써온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죄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재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무죄 결정을 했다는 기사가 최근 보도되었다. 애초 검찰의 공소사실은 신 씨가 지난 2014년 11월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북한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인데, 그 내용인 즉 자신의 여행 경험을 근거로 ‘북한에 핸드폰 보급이 상당히 이뤄졌다’, ‘맥주도 맛있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헌재는 해당 발언이 이미 발간된 책자나 기사에 기반한 것이어서 전혀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불렀다는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에도 북한 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은 없다며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힌 것이다. 검찰 논리대로 라면 분단된 73년 동안 남북이 민족 고유의 정서를 함께 지니고 각각 나름대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서 안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약 누군가 이를 공표할 경우 법으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 북의 진실을 알아서는 안되며 이를 알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불법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법 규정이 아닐 수 없다. 보안법은 이처
1872년 통일 제국을 건설한 프러시아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는 부국강병에만 힘쓰지 않았다. 그가 의료보험, 보훈 등 사회보장 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면 놀라는 이들이 많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으로 사회질서가 혼란해지자 전통 가치를 지키고자 등장한 이념이다. 기존 체제가 흔들릴 때 애국심과 명예, 민족의 융성, 자유시장 경제 신봉의 기치를 들고 나온 보수는 진보에 맞서 국가 경영의 당당한 이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비스마르크의 예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서구 보수정당의 이념적 지평은 우리 진보정당보다 오히려 훨씬 좌파적이다. 한반도에는 불행하게도 독일처럼 제대로 된 보수주의가 자리 잡은 적이 없다. 보수를 참칭한 비리세력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그 뿌리를 친일에 두고 있다. 해방 이후 미국의 냉전전략에 편승한 이들은 간판을 친일에서 반공으로 재빨리 바꿔달고 새로운 지배자 편에 붙었다. 그러나 외세를 뒷배로 한 그들의 최우선 작업은 반공이 아니라 자신들의 더러운 전비(前非)를 샅샅이 알고 있을 ‘눈엣가시’ 항일 독립투사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독립투사들에 대한 고문과 암살이 해방된 조국에서 버젓이 벌어졌던 까
독일에 귄터 발라프(G.Wallraff)라는 저명한 탐사전문기자가 있다. 1980년대 중반 그는 통상적 취재보도의 한계를 느끼고 본격 탐사취재에 나선다.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 시장의 패권을 틀어쥐기 시작하던 그 시절, 인간은 존중받지 못한 채 이윤과 효율의 극대화 논리에 뒷전으로 밀려난다. 독일은 ‘라인 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경제 성장으로 전 세계에 명성을 떨쳤지만 그가 주목한 것은 그 그늘 아래서 신음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이들에 대한 인종 차별과 착취가 만연한 것이 그로 하여금 탐사보도 전문기자의 외길을 걷게 한 셈이다. 당시 독일은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할 자국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3D 현장은 터키와 그리스 등 빈국 출신 불법 입국자들의 몫이 되었다. 산업 폐기물과 방사능 물질 등 독일인이 기피하는 위험한 오염물질 처리는 자연스레 그들에게 돌아갔다. 하청과 재하청, 재재하청의 고리로 인건비를 떼어먹고 부당해고를 자행하는 티센 제철의 불법 노동현장에 잠입한 그가 목격한 것은 작업 현장에서 최소한의 노동 인권이나 안전조치가 지켜지지 않은 ‘독일의 생생한 민낯’이었다. 마치 ‘죽음의 외딴 섬’과도 같은 곳에서
현 정부는 국정의 제1과제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으로 잡았다. 헌법에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건만 이 땅의 권력은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 권력’보다는 세습 재벌과 세습언론, 기소와 수사권을 모두 거머쥔 검찰과, 구태 관료 그리고 뿌리깊은 수구 정치세력들의 손아귀에 그대로 남아 있다. ‘더 센 살아 있는 권력’인 기득권 세력은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에도 아랑곳없이 민중의 삶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1945년 나라가 오랜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났음에도, 일제에 빌붙어 민족을 배반한 부역 관료, 일제 군인과 경찰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똑같이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에 대한 충성의 대가로 얻은 재력과 권력을 동원해 자녀들을 다시 지배층으로 키우는 데도 성공했다. 빈익빈 부익부는 해방 후 한국사회 작동의 메커니즘이었다. 비정상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것은 분단의 고착화이다. 같은 문화와 언어, 생활양식을 지닌 민족은 하나가 되는 것이 인류역사의 순리이다. 그러나 외세가 개입된 동포살육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한반도를 지구상에서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굳어지게 했다. 민족 내부가 극심한 분열로 갈라지고 찢겨져 최악의
법적 소송에서 사실관계를 가장 소중히 다뤄야 하는 판사가 판결문을 쓰느라고 사건 소송서류를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고 불평한다면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실제로 하는 집단이 있다. 언론인을 자임하는 상당수 언론사 취재기자가 그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기사를 쓰느라 취재를 할 시간이 없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논리의 모순이고 궤변이며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기사가 취재의 토대 위에서 작성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기자 초년 시절 수습기간을 거치게 하고 경찰서와 병원, 사건을 찾아 사람들을 만나서 현장감이 있는 기사를 생산하도록 하는 훈련을 받는 것도 충실한 취재와 엄밀한 확인의 과정에서의 긴장감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 아닌가? 그런데 요즘 기자들은 현장 취재를 통해서 보다는 사이버 공간, 즉 연예인과 정치인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검색해 기사거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취재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기보다 주로 저질 황색정보들을 골라 ‘단독’이니 ‘속보’니 하는 요란한 제목을 달아 포털에 올리는 경우가 흔하다. 사람들의 관음증을 자극해 조회수를 늘리려는 이른바 낚시행위가 자주 눈에 띈다. 클릭
단재 신채호는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아’는 단순히 ‘내것’ 또는 ‘내 나라’가 아니다. ‘비아’인 모든 거짓과 구별되는 옳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는 그 진실을 담은 기록이 된다. 인간이 추구하는 진실한 삶의 기록만이 참된 역사가 된다는 의미이다. 단재가 망명객의 신분으로 만주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수만개에 이르는 고구려인들의 거대한 무덤을 찾아낸 까닭이다. 그는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많은 실증적 역사가가 되었다. 진정한 역사가가 올바른 사료를 근거로 진실한 사람들의 생생한 기록을 담아야 하는 이를 지칭하는 것처럼 언론인 역시 비록 작지만 당대의 살아있는 현장기록을 역사로 쓰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현장 기록 가운데 진실인 것만을 찾아내 이를 토대로 스토리를 구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5·18 민주화운동 41돌을 맞아 이 땅의 언론인을 자임하는 자들은 처절하게 자신의 죄과를 참회해야 한다. 잔인한 학살행위를 두 눈 똑바로 보고도 반란군 선전대로 유언비어라고 매도했던 부역 언론인들의 역사적 죄과는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쉽게 씻기지 않을 것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부역매체들을 결코 언론이
지난 4월 7일이 신문의 날이었는데, 신문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신뢰의 추락이 그것이다. 편파보도와 허위 선동으로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는 오랜 불신에 이어서 부수조작으로 더 큰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난 대규모 부수조작은, 지금까지 구독의 대가로 자전거와 비데를 제공하고 나아가 현금 살포로 부수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선다. 최근 방송 보도를 보니 조중동을 비롯한 자칭 우리나라 유수 신문사에서 발행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신문뭉치들이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팔려 나간다는 것이다. 이제는 심지어 동남아시아로까지 폐지를 넘겨야 할 만큼 발행부수를 더 늘린 셈인가? kg당 5백원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신문의 유료부수를 조사하는 기관인 한국ABC공사가 집계한 각사의 유료부수는 정책광고를 수주하면서 정부로부터 받는 요금을 결정하는데, 이 자료 자체가 엉터리이다. 각 신문사가 자신의 부수를 크게 부풀려 허위보고를 하는데도 이에 대한 실사는 하지 않는다. 발행부수가 모두 유료부수인 것처럼 속여 ABC협회에 보고해도 당국에서 그 실태를 검사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누가 순수 유료부수만을 보고할 것인가? 오죽하면 부수공사 사무국장을 지낸 사람이 이 같은 잘못된 관
대통령책임제 아래서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이다. 그러나 이 시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여러 걸림돌들이 가로막고 있어 이를 제대로 행사할 힘이 부족해 보인다. 대부분의 권력은 여전히 특권 세력의 손 안에 놓여 있고 ‘선출되지 않은 세습권력’이 권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세습권력, 그들은 누구인가? 자본과 언론권력, 검찰, 사학, 종교권력 등으로, 이들이 흔들리지 않는 기득권을 쥐고 있다. 이 가운데 재벌과 검찰, 언론은 가장 막강한 세습권력이다. 경영을 광고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언론사는 재벌의, 사실상 수직계열화된 하부구조에 불과하고 따라서 재벌을 상전으로 모시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동시에 대기업의 범죄행위와 일부 공직자들의 비리 일탈은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의 좋은 먹잇감이다. 범죄와 비리로 얼룩진 재벌, 그 오래된 부패 구조와 관행은 되레 검찰과 언론, 이 두개의 축에게 가장 최적화된 수익형 모델이 된 지 오래다. 먹고 먹히는 고리인 셈이다. 재벌에 대한 수사결과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정치권력에 줄을 대서 얼마나 많은 범죄와 비리를 저질러 왔으며 또 재벌 총수들에 대한 검찰 수사 때마다 법률시장이 얼마나
문재인 촛불정부의 시대적 과제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민주화와 민생안정을 구축하고 남북한 화해와 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은 강력한 카르텔을 통해 민주화 과정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거기에 남북 화해를 외면하는 외세도 이 과정에 한몫을 한다. 우리 민주주의가 안팎의 도전과 방해를 받아온 것은 물론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따라서 특권의 온존을 위해 총궐기하는 극우 분단세력의 반발을 어떻게 통제하는가가 선결과제이다. 그들의 저항은 집요하고 결사적이다. 예컨대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 매체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자신들이 내뱉었던 북한 원전건설 주장을 뒤집으면서까지 문재인 정부의 ‘있지도 않은’ 정책을 공격하는 것이 그 대표적 가짜뉴스 사례이다. 지난 2006년 북한의 최초 핵실험 이후 전략물자 반출은 미국과 유엔의 엄격한 규제 대상이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미국이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쓰던 스틱조차, 그 성분 일부가 전략물자에 속한다며 생트집을 잡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물며 핵발전소 건설 기술과 물자의 대북 운송은 말을 해 무슨 소용인가. 설령 제재가 해제된다 하더라도 북미간의 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