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투어에 불이 붙었다. 인구의 고령화와 1인가구의 증가로 반려동물이 늘어났고, 반려동물을 단순한 동물이 아닌 가족으로 여기며 사람처럼 보살펴주는 이들 역시 늘어났다. ‘반려동물’을 의미하는 영어 ‘pet’과 ‘가족’을 의미하는 영어 ‘family’의 합성어인 펫팸족은 여행 역시 사랑하는 동물과 함께한다. 한국관광공사의 ‘2022 반려동물 동반여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려견 동반 당일여행을 해본 응답자는 65.7%이며 이중 숙박까지 경험한 응답자는 53%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펫투어의 종류도 다양하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펫리조트는 반려견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글램핑, 캠핑카, 콘도는 물론 펫 전용 수영장까지 갖췄으며, 강원도에는 애견 전용 해수욕장 까지 존재한다. 국내 항공사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할 때마다 스탬프를 찍어줘 할인 또는 무료 탑승의 기회를 주거나, 반려동물키트를 선물로 안겨주거나, 반려동물의 이름이 기입된 전용 탑승권을 판매하는 등 펫팸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갖가지 프로모션을 펼친다. 그러나 15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 반려동물 인구 모두 펫팸족은 아니다. 휴가철인 6~9월은 펫산업 호황기인 동시에 유기동물 수가 급증하는 시기다. 지난
여행길에서 처음 보는 꽃을 마주했을 때 사진을 찍어 이름을 물을 수 있는 앱이 있다. 질문은 주로 청장년층이, 답변은 주로 노년층이 했다. 식물의 이름을 잘 아는 평범한 노인들을 전문가로 만들어주던 이 앱은 스마트렌즈가 출시돼 기계가 검색으로 답을 내려주기 전까지 꽤 인기였다. 종종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에서 쩔쩔매다 결국 주문을 못 하고 돌아서는 어르신들을 마주한다. 키오스크가 아닌 점원에게 직접 주문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알 수 없을 만큼 긴 커피 이름을 줄줄 읊으며 각종 옵션을 추가하는 이삼십대와 달리 노인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각 매장마다 다른 커피 이름 대신 가장 기본적인 커피 이름을, 또는 자신이 아는 이름을 대며 어렵게 주문한다. 한 패스트푸드 매장은 일반적이지 않은 구조에 영어 안내판, 키오스크와 무인의 조합으로 ‘NO 노인존’으로 불린다. 심심한 사과가 화제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한’ 사과를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과로 받아들인 일부 사람들은 격분했고, 격분한 그들을 비난하는 소리도 높아졌다. 문해력을 중심으로 시작된 세대 간의 논쟁은 뜨겁게 옮겨가는 중이다.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때때로 일상은 여행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일들은 여행이라는 이름 안에서 특별한 경험으로 남게 되지만 일상이라는 범주 안에서 일어난 어떤 일들은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례적인 폭우가 중부지방을 덮쳤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다.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순식간에 물 위에 루프만 보이는 섬이 되고, 운전자는 그 섬 위에서 구조를 요청하며, 지하철역 계단에서는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고, 열차에 승하차하는 승객의 안전을 도모하던 스크린도어가 지하철 노선까지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방어하는 가드가 되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SNS와 끊임없이 보도되는 생방송에 사람들은 그곳이 익숙한 일상 터전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어 재생을 반복했다. 80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을 쏟아낸 집중호우는 동서 길이는 길고 남북 폭은 좁은 형태로 형성된 구름 때문이었다. 폭염과 열대야로 시달리는 남부지방에서는 모습을 감춘 비는, 길고 좁은 구름 때문에 주변보다 지대가 낮은 항아리지형의 강남에 시간당 100mm가 넘게 집중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사상 최악의 침수에 많은 이들의 꿈이었던 강남 아파트와 건물이 물에 잠기거나 물이 새거나 전기가 끊기는
플로킹이 유행이다. 플로킹(Ploking)이란 길을 걸으며(Walking) 쓰레기를 줍는 행동으로, 이삭줍기를 의미하는 스웨덴어 플로카 웁(Plocka upp)과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인 플로깅(Plogging)과 함께 북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된 전 세계적 환경운동이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이 스쿼트 운동과 비슷하며, 쓰레기를 담은 봉투를 들고 뛰기에 조깅보다 칼로리 소비가 많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MZ세대를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또한 최근 방송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플로킹을 하는 모습이 노출되며 교육적 놀이로도 주목받고 있다. 기업은 임직원 플로킹 캠페인을 열거나 플로깅 용품을 제공하는 등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위해 유행에 편승한지 오래다. 여행 역시 국내 숙박업소는 물론 여행상품에서도 플로킹을 활용한 사례가 늘고 있다. ‘몽골 대자연 지키기’와 같은 플로킹 상품이 점점 인기를 얻는 중이다. 그러나 현실은 SNS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주워도 끝이 없는 쓰레기, 워킹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많은 쓰레기에 SNS엔 뿌듯함보단 씁쓸함이 가득하다. 이런 유행은 전부터
내 취향 음악 좀 찾아주세요. 평소 A, B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데 내 취향의 음악이 더 없을까요?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문이다. 답변으로는 제시된 음악을 분석해 일정한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그와 유사한 음악을 추천하는 글이 달린다. 취존(취향 존중), 개취(개인 취향)라는 줄임말이 흔히 사용될 정도로 취향은 이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다. 취향에만 맞는다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품도 과감한 펀딩을 통해 구매하고, 해시태그를 이용해 취향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태그니티(TAGnity, TAG+Community)를 형성한다. 숨겨졌던 당신의 취향을 찾아주겠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다양한 취향이 점점 더 세분화되는 요즘, 좋고 싫음은 분명하지만 취향에 맞는 것들을 찾아 나설 시간도 열정도 없는 사람들은 SNS(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에 의탁한다. AI가 한 사람이 올린 사진과 글, 대화 등의 라이프로그를 끊임없이 분석해 ‘당신의 취향엔 이것’이라며 새로운 것을 제시하면 그 사람은 분석된 결과물의 호불호만 분류하면 된다. 취향의 시대는 여행에도 스며들었다. 여행을 자주 할 수 없던 시절 여행은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는 관광 목적이 많았지만, 여행이
장마철에 열대야가 겹쳤다. 비 소식이 그치지 않고, 연일 6월 최저 기온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장마철에는 식중독, 신경통, 호흡기 질환 등이 늘고 건강에 이상이 없는 사람도 신체 조절 능력이 떨어져 실수가 잦아진다. 꿉꿉한 공기와 제대로 마르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옷, 조금만 움직여도 끈적끈적해지는 습도에 불쾌지수도 올라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게 되고, 일조량이 부족해 불면증과 우울증도 짙어진다.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고 다닐 만한 시기다. 그러나 장마철에도 여행은 계속된다. 삶의 모퉁이에서 연속된 불행이 잠시 멈추고 숨 고를 시간을 주지 않듯 날씨도 사람들의 사정을 봐주며 잠시 쉬었다 가라고 맑은 날을 안겨주진 않지만, 삶처럼 여행도 끊이지 않고 지속된다. 비가 내리는 날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실내관광지다.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 식물원, 온실, 실내 물놀이장, 찜질방, 실내 동물원, 아쿠아리움에 카페, 원데이 클래스 체험, 영화나 공연까지 실내에서도 즐길 수 있는 여행은 얼마든지 있다. 이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실내관광지에서 실내관광지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실내형 여행’은 쾌적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송보송하고 청량하게
성장과 부를 추구하며 빠르게 달려가던 세상은 육체적, 정신적 조화를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웰빙(well-being)’을 일으켰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치유와 회복을 추구하는 ‘힐링(healing)’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제 칠랙스(chillax)의 시대다. ‘쉬다, 놀다’를 의미하는 ‘chill’과 휴식을 의미하는 ‘relax’가 합쳐져 생겨난 속어 ‘chillax’는 ‘느긋하게 쉬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다. ‘chill’의 본래 뜻은 ‘무언가를 얼지 않을 정도로만 차갑게 한다’지만, 영어적 표현인 ‘cool’과 비슷하게 쓰인다. 즉, 시원하고 차분(cool)한 태도는 한층 나아가 삶이 과열되지 않도록 차갑게 식혀주는(chill) 삶에 대한 태도로 진화됐다. 실제로 칠랙스는 ‘긴장 풀다’를 의미하는 ‘chill out’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삶에 대한 태도는 조화에서 치유로, 치유에서 식힘(가라앉힘)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긴장되고 과열될 것 같은 삶은 어떻게 식히고, 풀어줘야 할까? 웰빙, 힐링에 비해 칠랙스에는 주체성이 더 짙다. 앞의 두 개념이 명상, 요가, 산책 등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이완을 꾀한다면
떠났던 자유가 돌아왔다. 2년여 동안 수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만남과 이동을 제한하고 사람들을 옭아맸던 코로나가 기세를 꺾었고, 이제 매일매일 가파르게 상승하는 확진자 수 소식 대신 자유로운 시대를 향한 소식이 쏟아진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여전히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원숭이두창 같은 새 전염병 소식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해외는 아직 두렵고 국제선 항공권 요금은 2~3배로 치솟아 여행의 자유는 국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시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22 여행가는 달’ 캠페인을 추진한다. 6월 2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이 캠페인은 KTX와 5개 관광열차 요금 최대 50% 할인, 5만원 숙박 특별 할인권, 지역 특화 콘텐츠 등 다채롭고 풍성한 혜택을 마련했다. 국내 여행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고, 멈춰있던 대한민국을 살리자는 의미를 담은 ‘2022 여행가는 달’의 주제는 ‘여행으로 재생(再生)하기’다. 재생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테이프나 필름 등으로 본래의 소리나 모습을 다시 들려준다는 의미.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 또, 상실된 생물체의 일부가 다시 자라나는 일이라는 의미. 어떤
빛의 벙커에서는 자신의 경계가 흐려진다. 캔버스를 벗어난 그림이 벽과 바닥을 넘어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까지 물들이기 때문이다. 온 공간을 채운 예술 속에선 사람도 예술이 된다.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본질이다. 미디어아트란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사진, 영화, TV,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에게 파급효과가 큰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미술에 적용시킨 예술을 의미한다. 미디어아트는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감각에 직접 호소하며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처음으로 한국에 정착한 곳은 제주였다. 넓은 공간과 장기간의 전시, 꾸준히 찾아올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늘 관광객이 많은 제주가 적합했다. 한국 안에서 가장 멀리 떠나온 사람들은 궂은 날씨에도 찾아갈 만한 실내관광지를 원했고, 독특하고 신선한 체험을 바랐으며, 조건만 맞는다면 제주 어느 곳이든 찾아가려 했다. 2018년, 국가 기간 통신시설이었던 9백 평 면적의 철근 콘크리트 건축 구조물에 빛과 색이 들어섰다. 자연 공기 순환방식을 이용해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고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는 비밀벙커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미디어아
올레길을 걸을 땐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길에서는 조랑말 모양 표지인 간세가, 나뭇가지에 묶인 파란색과 빨간색 리본이, 전봇대와 돌담에 붙은 화살표가 방향을 알려준다. 때때로 부슬비가 내리거나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흐리지만 한적한 숲길이나 바다 옆길을 걸을 때면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어느 골목 어귀에선 집 앞에 앉아 지나다니는 이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어르신에게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말을 지날 땐 반가움에 살짝 손을 든다. 잠시 생각에 잠기거나 으레 가던 방향으로 가다 보면 표지를 놓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당황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표지를 봤던 곳까지 되돌아가 다시 길에 오른다. 자동차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은 가장 빠른 길과 시간을 검색한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초행길을 걸을 때면 모르는 길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경계하면서 스마트폰을 꼭 붙들고 긴장을 놓지 않는다. 길을 잃었을 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게 먼저지만 위치 파악은 위성이 해주니 화면만 들여다보며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가면 된다. 자연스레 길을 보는 시간보다 화면 속 지도를 보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초록 나무와 파란 바다를 마주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