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뉴스소비자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심각한 정파적 편집증을 앓고 있는 언론들 때문이다. 뉴스를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되는지 한 번 더 생각한다. 일종의 ‘뉴스 의심증’이다. 억지춘향식으로 짜맞춘 기사는 아닌지,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해 꾸민 기사는 아닌지…지향이 다른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판단해야 완전한 뉴스를 얻게 된다. 이런 불편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개선될 기미가 없어서다. 중병을 앓아도 진단과 처방이 정확하고 환자가 잘 따르면 희망이 있다. 검진결과는 ‘저널리즘 원칙 무감각증’이다. 처방전은 “환자(언론)가 처방약(저널리즘 원칙 준수)을 상당기간 꾸준히 복용하고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그러나 이 처방전을 따르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과거 선배들이 했던 경험요법에만 집착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들이다. 이런 식이다. 힘 있는 자를 최대한 비틀고 자극적으로 보도한다. 그 대상은 대통령이 가장 좋다. 신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가 일본보다 늦으면 한국이 무시 당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린다. 바이든에 앞서 시진핑과 통화했다고, 왜 미국에 앞서 중국이냐고 힐난이다. 미·중 강대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현실은 안중에 없다.
왜 이렇지? 자칭 잘난 사람들 집단인데 국민들은 못 믿겠단다. 검찰과 언론이 그렇다. 수없는 원인이 어우러진 결과겠지만, 자신들의 눈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려는 그릇된 선민의식에 대한 반감이 클 것이다. 지난해 코로나19와 검찰 이슈는 한국사회를 지배했다. 상반기엔 정부의 코로나 방역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았지만 한국언론이 애써 외면했다. 외신들의 찬사는 총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내언론의 보도 프레임이 의도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유신 때나 5공화국 시절 1단 기사의 가치가 1면 톱기사나 9시뉴스 첫 보도보다 더 의미있었던 때가 있었다. 외국 언론의 한국보도가 더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자들을 앞서는 국민들의 뉴스 수용 수준을 보여준 반증이다. 하반기에는 검찰 이슈가 세상을 뒤덮었다. 왜 검찰의 권력집중 문제가 개혁 이슈로 부각됐는지는 찾기 어려웠다. 언론보도는 추미애와 윤석열의 치킨게임, 넓게는 청와대와 윤석열의 파워게임으로 환치시켰다. 공수처 설치의 발상은 왜 나왔는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양은 어떤 연유로 제기 됐는지 그 배경은 다룬 기사는 거의 없었다. 두 사안 모두 과도한 정치적 시각으로 기사를 다뤘다. 언론이 위기라고한다. 맞다. 다만 전통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