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럴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시인 소개> 1907년 7월 전북 부안 출생~1974년 7월 별세 1931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본격 작품활동 시작 전주고등학교·김제고등학교·전주상업고등학교 교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지부 지부장 역임 한국문학상(1968), 문화포상(1972), 한국예술문학상(1973) 수상 대표작으로 제1시집 <촛불>, 제2시집 <슬픈 목가(牧歌)> 등
벌레소리 고이던 나무 허리가 움푹 패였다 잎 없는 능선도 낮아져 그 아래 눕는다 가지 하나가 팔을 뻗어 내 집을 두드린다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 듯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바라만 본다 저문 시간이 고개 숙이고 마을을 서성거리고 그의 머리위로 별이 벼꽃처럼 드물다 낡은 문창에 달빛이 조금씩 줄어든다 달내리는 소리가 마당을 지나 헛간에 머문다 누군가 떠나고 난 자리가 세상보다 크고 깊다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듯 하다 1941년 강원도 고성 출생~2001년 별세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1967년 고려대학 농대 농학과 졸업 1970년 ‘문학비평’에 <시인의 병풍>을 발표하며 등단 주요작품에 장시(長詩) <움직이는 아침의 음악(音樂)> <서재(書齋)에서> <축지법> <서랍> 등
맛있다, 참 맛있다 전어 굽는 저 하늘빛 발그레 술이 오른 산마루에 겸상 놓고 허아비 낮달을 불러 대작하는 그 한때. <김진길 시인 소개> 1969년 강월 영월 출생 2003년 시조문학,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09년 시집 <집시, 은하를 걷다> 발간 2011년 시집 <밤톨줍기> 발간 육군 중령으로 육군본부 근무 중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
내 살아가는 부대낌의 흔적 얼룩진 옷가지 낮 붉어지는 음밀함 가리고 돋보이고자 형형색색 드러낸 빛바랜 시간의 흔적 빨아낸다 노란 일상 마뜩해지려고 허술해지려고 부셔대는 세탁기 겨울 나목도 얼어 있는 하늘 파랗게 입고 눈발은 세상을 하얗게 빨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 소개: 1959년 경북 안동 출생 안동대 경영학과, 동국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졸업 1999년 시집 <기억 속에 숨 쉬는 풍광 그리고 그리움>으로 작품 활동 시작 욜목문학상, 경기문학인상, 한민족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 경기시인협회, 과천문인협회에서 활동 중
멀리 있다고 슬퍼말아요 아주 먼 곳이라도 함께하는 마음만 있다면 당신과 나는 아주 가까이에 있답니다 보고 싶어 자꾸 눈시울에 눈물이 적실 때에는 눈을 감고 살며시 떠올리세요 아무리 멀고 험한 곳에 있어도 당신 가슴속에 맺혀진 사랑을 믿고 있다면 살며시 미소 지으며 사랑 한다 속삭이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답니다 시인 소개: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동 대학원 작곡전공 이탈리아 로마 A.I ART 아카데미 합창지휘과 졸업 안동대학교 음악과 외래교수 제20회 ‘문예춘추’ 신인문학상 저서로 시집 <아름다운 여행> <행복한 풍경> <사랑하는 것은> <그대 사랑하다>등
가로수가 물든 거리로 코트를 입고 나섰더니 “선생님 추우십니까” 젊은 시인이 내게 묻는다 코트는 꼭 추워서만 입는 옷이 아니라 했다. 세월이 지향 없이 흘러가는 강물이라면 가을은 그 강물 위에 속절없이 실려가는 배 봄바람 가을 비 한 자락 걸쳐입고 나왔다 했다. 시인소개 : 1919년 경북 금릉군 봉산면 출생. 1960년 신춘문예 등단. 1965년 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 1992년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1996년 온겨레시조짓기추진회 회장. 문화공보부 문예창작기금 한국문학상(1974), 가람문학상(1979), 만해시문학상(1999), 유심특별상(2007),시조집 <채춘보>, <묵로도>, <실일의 명>, <난보다 푸른돌>, <시암의 봄> 등 다수
우정이란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 사랑은 조금씩 아껴가면서 꺼내 놓고 싶은 삶의 보배 아픔으로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루는 그늘도 되었다가 때로는 쉼터도 되었다가 끼리끼리 시린 몸을 기대며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 사람이 석류처럼 터지면 나는 그들의 눈높이로 작아지고 우리 사이 향 맑은 옥돌 은물결 한 계절 넉넉히 흐르느니 오! 그 빛남! 시인 소개: 1951년 전북 정읍 출생, 육사 31기(육군 소장 예편), 독일육군사관학교와 서강대 독문과에서 칸트, 괴테, 쉴러, 하이네 연구 몰두. 2000년 통일을 열망하는 목적시 <통일이 오는 길목에서>, 2007년 서정시 모음 <삶의 한 모퉁이를 돌아>
꽃잎과 꽃잎 사이의 거리다 물소리와 물소리의 틈이다 햇살과 바람이 사이든 물고 물리는 관계식이다 잠재한 힘들의 반응 속도다 큰 일을 치룬 작은 것들의 아픔이다 뿌리 들지 못해 떠난 것들의 변명이다 나와 나를 끊어놓은 순간의 울림이다 툭툭 끊어진 것들이 모여든 명상이다 흘러 새어 나온 것들이 밝힌 세상이다 다 하지 못한 말의 틈새다 금간 것들이 비집고 나온 연민의 소리 쨍하는 소리의 깊이다 시인 소개: 1947년 전남 광영 출생~2010년 1월 별세 1985~1989년 한국문인협회 여수 지부장 1986년 ‘월간문학’과 1988년 ‘예술계’를 통해 문단 데뷔 1989년 도서출판 ‘혜화당’ 설립 1997년 격월간 종합문예지 ‘정신과 표현’ 창간 2008년 한국시인협회 이사 선임
피고 짐이 없다면 꽃이 아니다 꽃은 피고 짐의 윤회 속에서 피고 진다 꽃은 환(幻)의 굴레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피고 진다 열반이란 꽃도 그렇게 피고 진다 모든 꽃들은 피고 지는 가운데 피고 집 없이 피고 진다 꽃은 윤회하며 열반을 즐긴다 꽃상여는 꽃의 상여가 아니다 꽃은 북망산첸에서도 피고 진다 피고 지지 않으면 꽃이 아니다 모든 꽃은 열반꽃이다 1954년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성균관대학원 유교대학원 2005년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모래인어> <사라진 얼굴> 등
때로는 잊고 가끔은 기억하며 고운 향기 품고 보낸 나날들 우러러 그리움이 들꽃처럼 피어나면 다가서는 저녁 그림자 그대인양 하여 가승에 들키지 않는 이야기 하나 안고 그대 오는 길목에 물방초로 피고 싶음이야 기다리는 일처럼 속 아리는 일 없다지만 지난 세월 못 잊는 인연의 깊이에 깊은 겨울 애달픈 수액으로 감아올린 그리움 서럽도록 시린 내 순수함이여! 겨울은 봄을 안고 있기에 기다리고 삭풍에 떨면서도 꽃은 피듯이 북새에 제 몸 내주고 흔들리는 풀잎되어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의 주위에 기다리면서 싹을 틔우는 여린 사랑 하나 그리움마저 희미해질 때까지 천 년 만 년 우뚝 선 기다림 뒤에는 참사랑 오려나! 그때 홀연히 통일이 오려나! 바람의 남부에도 귀를 기울린다 귀띔이라도 해주렴..... 시인 소개: 1951년 전북 정읍 태생. 2000년 통일을 열망하는 목적 시 ‘통일이 오는 길목에서’ 출간. 2007년 조국 통일을 염원한 ‘삶의 한 모퉁이를 돌다’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