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950년대. 미국의 과학자들 사이에는 공통된 두려움이 흐르고 있었다.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의 저자 새뮤얼 W. 프랭클린은 전후 심리학자들이 마주했던 고민의 흔적을 추적한다. 전쟁은 과학기술이 어떻게 반인권적 살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 처절히 보여주었고,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가 또다시 전체주의와 독재정권을 위해 쓰이지 않을지 극도로 경계했다.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했다.
당대 심리학자들은 사회의 발전 동력이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있으며,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진보를 일굴 수 있는 능력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과학자들은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특정 인종이나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전체주의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창의성 연구는 그 고뇌의 결과였다. 심리학자들은 창의성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누구나 계발할 수 있다고 찬양했다. 창의성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에 의한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미국적인 개념이자 국가적 방어 기제였다.
창의성에 대한 예찬은 산업계로까지 확장되었다. 혁신적인 기업은 창의적 인재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광고 업계는 영감과 신선함이 넘치는 예술적 집단으로 탈바꿈했다. 소비 행위조차 기존의 소비문화에 매몰된 ‘대중’의 선택이 아니라, 창의적 개인의 개성적 표현으로 그려졌다. 혁신은 창의적 개인에 의해 가능했다. 개인은 얽매임 없이 자유로워야 했고, 새로운 시도는 장려되었다. 이러한 서사의 정점에는 실리콘밸리가 있었다. 실리콘밸리는 엔지니어를 구속하는 모든 관습을 타파하려 했다. 근무 방식은 자율적이었고, 직원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경영 방식이 활발히 논의되었으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전 세계 인재들을 끌어당겼다.
창의성은 당대 국가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 과학자들은 개인을 강조함으로써 과학기술이 국가의 쓸모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인가. 한때 창의성을 예찬했던 미국의 과학기술 생태계에 최근 새로운 국가주의 담론이 무섭게 파고들고 있다.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인 알렉스 C. 카프와 최고 업무 책임자인 니콜라스 W. 자미스카는 저서 ‘기술공화국 선언’에서 실리콘밸리가 공동체적 가치를 잊어버렸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미국과 체제 경쟁 중인 ‘적국’들이 국가 안보를 위해 과학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미국은 고작 소비자를 위한 안락한 서비스를 만드는 데 급급하다며 한탄한다.
이들은 기술 ‘엘리트’들에게 도덕을 호소한다. 미국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과학기술이 국가의 전략적 목표에 맞게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과학기술 패권을 적국에 빼앗길 것이라는 공포와 함께 인공지능 방산 기업의 대표주자 팔란티어를 위한 ‘도덕적’ 서사가 완성된다. 팔란티어가 미국의 이란 공습에 깊숙이 관여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카프가 주장하는 도덕의 실체는 미국의 존속이며, 이는 곧 군사기술 분야에서의 압도적인 우위와 동의어다. 2020년대의 과학기술은 1950년대 과학기술이 그토록 경계했던 지점, 즉 과학기술이 국가적 목적 아래 도구화되는 지점으로 다시금 회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전후 과학자들이 품었던 두려움은 이제 국가를 위한 혁신이라는 깃발 아래 우리 눈앞에 당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