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성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과 다투지 않으며, 그 현실이 그대로 정의이고 행복이며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진보도 없고 생명도 없다. (아미엘) 개인의 경우나 집단의 경우나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완전성을 향한 추진력은 그 개인과 집단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한 관념이다. (마르티노) “하늘에 계시는 ᄒᆞᆫ님처럼 너희도 완전하라.” 신의 완전성, 즉 모든 사람의 최고선에 대한 이념이야말로 전 인류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이다.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저 언덕, 저 곶, 저 해안을 따라 헤엄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항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득한 별과 나침반뿐이다. 아무리 타락한 사람이라도 항상 자신이 지향해야 하는 완전성만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은 힘이다. 말이 아니다. 생각이 아니다. 사상이 아니다. 지식이 아니다. 이론도 아니고 학설도 아니다. 술(術)도 아니요 방편도 아니다. 신앙은 힘이다. 살리는 힘이다. 말로써 영혼을 구원하였다는 일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새 3개월에 접어들었다. 참혹한 전쟁의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경학 쟁투는 전쟁 못지않게 치열하다. 유럽은 신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개통을 유보하는 외에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입을 축소하였다. 그리고 러시아를 스위프트 국제금융결제시스템에서 축출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국가부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는 석유·가스 거래 대금 결제 방식을 루블화로 제한함으로써 루블화의 가치를 방어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유가 상승으로 경쟁력을 회복한 셰일 석유·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는 등 에너지 공급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 산 석유·가스를 싼 가격에 수입하는 이득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러시아와의 에너지 거래를 위안화 결제 방식으로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쿼드 국가 중 하나인 인도의 이런 이중 행동을 미국은 쳐다 보고만 있다. 전통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 및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과의 석유 거래 결제 통화로서 위안화 도입을 저울질하고, 중국은 숙원 사업인 페트로 위안화 시대의 조기…
삶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육체가 서서히 스러지고 정신생활이 서서히 풍요로워지는 과정 그 자체이다. 자기 자신과 투쟁하고 자기 자신에게 강제를 가하는 것은, 원래 번뇌를 갖고 태어난 우리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강제로 어머니가 떼어내듯이 선은 우리를 악에서 강제로 떼어놓는다. 이 투쟁은 고통스러운 일이긴 하나 꼭 필요한 일이다. (파스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늘이 곧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겠지 하는 어리석은 기대를 버리는 것이다. 음식을 아무렇게나 장만하면서 하늘이 그것을 맛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랄 수는 없지 않은가! 그와 마찬가지로 만약 너희가 오랫동안 어리석은 나날을 보내며, 자신의 생활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었다면, 신의 손길이 곧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기만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존 러스킨) 만일 그편이 좋다면, 신은 우리 모두를 한 백성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너희가 어디에 있든 온 힘을 기울여 선을 향해 노력하라. 그러면 언젠가 신이 너희를 모두 하나로 맺어줄 날이 올 것이다. (코란) 자기 완성의 길에서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 네가 자신의 영혼보다 외부…
요즘 3대가 같이 식사하는 걸 보기 어렵다. 어버이날 보게 되는 효도 이벤트다. 집에서 TV 볼 때 부모, 자식이 같이 보는 경우도 드물다. 취향이 달라서다. TV공시청은 이제 과거의 유산이다. 모든 미디어는 퍼스널 미디어로 변했다. 농촌공동체에서 산업화 시대, 정보사회로 진행되면서 윗 세대와 아랫 세대가 같이 할 공통분모가 급격히 줄었다. TV도 같이 안 보는데야 뭘. 특히나 급격한 디지털화는 미디어 이용의 세대 간 단절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문화적 교집합이 줄었다. 공유 영역이 적다 보니 이해와 공감의 양도 당연히 줄어든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선생님을 ‘꼰대’라 불렀다. 1960년대부터 사용되던 젊은 사람들 은어로 선생님, 아버지, 늙은이를 속칭하던 말이다. 죽어가던 단어인 꼰대가 최근 갑자기 각광을 받는 단어가 됐다. 구글 검색량이 2015년 이후 급증하면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2018년 이후에는 ‘꼰대+라테는 말이야’의 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꼰대가 사회적으로 부활했다. 급기야 2019년 9월 24일에는 BBC가 오늘의 단어로 한국의 ”kkondae(꼰대)”를 선정했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으로 설명하였다. 우리말로 이렇게 세
그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여서 헷갈린다. 말로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면서 행태는 이와 딴판이기 때문이다. 그 부정합은 국무위원 지명에서부터 드러났다. 한동훈 법무장관 지명이 대표적이다. 한 지명자는 2년전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작가 고발을 사주한 혐의를 받아 채널A 기자와 함께 조사를 받았다. 채널A의 자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두 사람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강요미수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현직 대검 감찰부장은 윤석열 총장을 비롯한 정치 검찰이 진상조사에 나선 대검의 감찰 행위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폭로했다. 한 지명자는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조차 거부함으로써 법망을 피했다. 한 지명자는 수사절차에 대한 비협조 전력만으로도 법무장관으로 자격 미달이다. 이런 사람을 정의수호와 법치의 수장에 지명한 처사부터 공정과 상식에 정면으로 반한 것이다. 딸의 논문 표절과 ‘약탈저널’ 게재에서도 그 가족의 내로남불 행태는 아주 노골적이다. 딸과 아들을 자신이 병원장 등으로 재직 중이던 대학 의과대학에 편법 입학시킨 추한 행태가 드러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자의 경우도 내로남불 행태에 있어 한 지명자와 막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가 활동하던 2013년 1월21일(월).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북 탈출 주민 서울정착 지원업무 탈북 공무원 간첩혐의 구속’이라고 보도했다. 다음날도 1면 머리기사로 ‘간첩 정체는 탈북자 행세한 화교였다’고 대서특필했다. 사설과 기획기사까지 이어졌다. 당시 이 사건을 동아일보에 이어 기사화한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22일자 사회면에 공안당국 발표를 인용, 간략하게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간첩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탈북자라고 했다. 두 신문을 빼고는 어떤 신문도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간첩 누명을 뒤집어 썼던 유우성씨는 2년 9개월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때문이었다. 2018년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진상위원회 재조사 후,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지난 5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비서관 19명을 1차로 인선 했다. 국무총리나 장관 지명자들의 인사청문절차가 진행되는 마당이라 언론의 관심을 크게 받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간첩 조작사건의 담당 검사였던 이시원 변호사가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되자 언론들은 장관급 이상의 뉴스가치를 부여했다. 아울러 9년전 간첩
자신의 영혼과 세속적인 행복을 동시에 돌볼 수는 없다. 세속적인 행복을 바라거든 영혼을 거부하라. 만약 자신의 영혼을 지키고 싶거든 세속적인 행복을 부정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분열만 되풀이하다 결국 하나도 얻지 못할 것이다. (에픽테토스) 사람은 선택에 따라 두 종류의 삶을 살 수 있다. 진실한 내면적인 삶과 허위의 외면적인 삶이다. 내면적인 삶은 사람이 단순히 외적인 자극과 겉모습만으로 살지 않고 모든 것 안에서 피안을, 즉 신을 보며,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신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실천적으로 발휘하여 그것을 흙 속에 묻힌 채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고골리) 의무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물질적 세계의 현실성을 느끼게 하고, 그 생활에 참여케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그 세계에서 떼어놓고 우리에게 그 비현실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아미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정신적인 것, 우리가 자신의 내부에서 자기 자신으로 의식하는 것, 오직 그것만이 현실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은 모두 우리의 감각기관이 만든 것이며 따라서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내 사상을 여러 사람에게 전
1991년말 쯤이었을게다. 나는 대구에서 울산으로 가는 마지막 고속버스 맨 뒤편 좌석에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통에 눈을 떴다. 눈앞에 정복경찰 두 명, “신분증 좀 봅시다” 내미는 주민증을 보더니 “주민번호가 어떻게 되요?”하고 물었다. 아뿔싸.. 당시 나는 5공화국의 3년차 수배자였다. 주민증은 우리 친형님의 것이었는데 늘 외우던 주민번호가 갑자기 가물가물했다. 자다 깨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했더니 차에서 내리란다. 경찰이 앞장서고 내가 통로를 뒤따라가는데 누가 부른다. “아저씨, 가방요~” 내 발밑에 두었던 가방을 가져가라는 소리다. 아.. 어떻하나.. 고백컨대, 가방에는 족히 수십명은 조직사건으로 엮고도 남을 만치의 비합법 노동운동조직의 문건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잡히는건 문제도 아닌.. 가방만은, 가방만은 숨겨야 했다. 내가 모른채 그냥 걸어가자 주변 사람들도 더 큰 소리로 이어받았다. “가방 가져가래요~”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몇걸음 앞장선 경찰은 무전 하느라 아직 못들은 눈치, 저 소리를 잠재워야 한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렸다. 그리곤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제발 닥치라고~ 이러다간 다 죽어”라는
사회적경제는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나 재정적 보상보다는 지역사회를 위해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경제활동을 일컫는다. 정부나 공공기관에 의해 통제되지도 않고 자율적으로 관리되고 운영되며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이견을 조율해 간다. 자본보다 사람과 사회적 목적에 우선순위를 두며 참여와 권한을 강화하여 책임을 중요 원칙으로 삼는다. 또한,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서로 힘을 합쳐 협력하여 해결해 나간다. 사회적경제의 핵심 주체인 사회적경제기업은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면서 재화 및 용역의 구매 생산 판매 소비 등의 영업활동을 하는 사업 조직으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그리고 소셜벤처 등 다섯 가지 형태가 있다. 사회적경제기업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가와 공공기관의 사회적 비용 절감과 직결되므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공공조달 시장에서의 사회적경제기업의 실적이 점증하고 있는 점은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사회적경제기업은 경제적가치 창출과 사회적가치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며 ESG(환경·사회책임·거버넌스) 경영을 지향한다. 국가는 경제 정의 실현과…
교육의 기초는 삶의 의의와 그 사명을 명백히 하는 일이 아니면 안 된다. 사람들은 법정에서의 거짓말을 범죄로 생각하고, 같은 성인들끼리 잘못된 말을 하는 것을 한심한 일로 생각하지만,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허황된 말을 지껄이고 아무리 거짓말을 하여도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필요한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인생의 의의와 사명에 대해 설명하는 종교상의 가르침은, 천년 전의 사람들에게는 만족을 주었지만 현대인들은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천년 전의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이것은 무서운 잘못이다. “어린이를 교육할 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 것은, 어린이들에게도 모르는 것으로 가르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리히텐베르크) 이 말은 흔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듯, 어린이들에게 의심스러운 미신을 제법 근거가 있는 것처럼 믿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들은 애매하고 어중간한 논거에 만족하는 버릇이 생겨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교육할 때 그들을 지나치게 힘들게 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직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