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민들은 박춘봉 사건 이후 수원역 인근과 고등동, 매교동 등의 외국인밀집우범지역을 기피하고 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하다. 2년 전 오원춘 사건이 발생했던 지동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 바 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있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자 안전도시를 꿈꿔 온 수원은 이 두 사건으로 인해 외국인 범죄의 도시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살인의 도시 수원’ ‘수원이 무서워졌다’는 인터넷 누리꾼들의 반응에 수원시민들은 상처 받고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수원시민이 일으킨 사건도 아닌데 말이다. 실제로 두 사건의 범인은 모두 중국 국적의 외국인들이다. 박춘봉 사건의 피해자 역시 중국인이다. 그런데 죄 없는 수원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들을 보는 수원시민들의 눈초리가 고울 리 없다. 특히 불법체류자들은 강력히 단속해서 모두 내보내야 한다는 여론이 터질 듯이 팽배하다. 이런 상항에서 경기지방경찰청이 관련범죄가 많은 외국인밀집 지역을 ‘외사 치안안전구역’으로 선정, 특별 관리에 나섰다. 경기청은 경찰관기동대와 외사요원을 이 지역의 특별방범 활동에 집중 투입, 치안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피해 당사자인 수원시
보통 사람들은 ‘무예’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 떠올리면 신체를 통해 뿜어 나오는 강력한 힘과 빠른 속도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무예의 본질에는 힘과 속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섬세함이다. 만약 무예에서 섬세함을 뒤로하고 오로지 힘이나 속도에 의존하게 되면 말 그대로 힘자랑하는 싸움꾼의 기술로 전락하고 만다. 처음 무예를 수련할 때에는 멈춰있는 물체를 손이나 발을 이용하여 타격하거나 칼이나 봉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기법을 수련한다. 초보 수련생의 경우는 어깨나 허리에 힘을 잔뜩 줘서 세고 빠르게 물체를 공격하려 하기에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제대로 된 공격지점을 맞추기가 어렵다. 수련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깨와 허리의 힘이 빠지면서 섬세하고 정확한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멈춰있는 무생물의 물체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한 타격을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실전에 활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와 대적하는 상대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쉼없이 움직이며 나의 동작에 따라 반응하기에 더욱 신중하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보통 갓초보를 벗어난 수련자들이 실제 상대와 맨손 겨루기나 격검을 시작하게 되면 긴장감으로 인해 쓸데없이 어깨에
1891년 겨울 1천여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선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해안에 좌초됐다. 그리고 곧바로 난민이 발생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난민들을 위해 구세군 여사관 조지프 맥피(Joseph McFee)가 나섰다. 오클랜드 부둣가에 큰 쇠솥을 걸어놓고 모금 활동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쇠솥에 이런 구호를 써 붙였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그러자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돈을 넣기 시작했다. 자선냄비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후 전세계로 퍼져, 붉은 세 다리 냄비걸이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 제복을 입은 구세군 사관의 딸랑 종소리로 상징되는 ‘자선냄비’ 는 매년 연말이면 이웃사랑을 위한 모금 운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현재 세계 100여개국에서 성탄을 전후해 빨간 냄비와 딸랑거리는 종소리로 이웃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연말 자선남비를 운영하는 구세군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된 기독교의 한 교파다.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가 기독선교회를 만든 뒤 1878년 조직을 군대식으로 바꾸었다. 세계 118개국에 교회 1만5000여곳, 교인 150여만명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선냄비가 처음 등장한 건 1928년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흉년과 수해가 겹
인천지역의 청소년수련시설 위탁이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인천시 관내에 있는 청소년수련시설 전체 14곳 중 64.3%인 9곳이 부적합단체에 위탁해 청소년지도육성 역할과 기능수행이 어렵게 되었다. 청소년수련시설은 청소년수련활동, 청소년교류활동, 청소년문화활동 등 청소년활동에 제공되는 시설이다. 청소년지도자와 함께 청소년수련거리에 참여하며 배움을 실천하는 체험활동을 통해 건전한 청소년을 육성해 가야한다. 청소년활동진흥법에 따라서 효율적으로 올바르게 운영할 수 있도록 잘못된 조례규정 개정에 나서야 할 때다. 인천시 조례는 청소년수련시설은 청소년 단체가 아닌 단체에도 위탁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는 상위법인 청소년활동진흥법에 위반되므로 개정되어야한다. 또한 조례에 위탁기간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특정단체에 장기 위탁하는 등 위탁시설 사유화 현상이 불가피하게 발생된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청소년수련시설 관련 법령에 대한 부패영향평가 결과 지방자치단체가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는 342개 청소년수련시설 중 89개가 부적합한 단체에 위탁해 관련 법령을 위반했다. 특히 89개의 시설은 청소년육성 활동과는 거리가 먼 시설관리공단, 종교단체, 지역 마을회 등에서
지역마다 소위 ‘동네조폭’이란 사람들이 있다. 동네에서 못된 짓을 하고 다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는 부류들이다. 술을 마시고 식당 등 점포에서 난동을 부려 영업을 방해하고 주민들에게 행패를 부려 피해를 입히는 자들이다. 경찰에서는 지역 주민(지역상인, 시민 등 일반인)을 상대로 폭행·협박·상해·갈취·업무방해·강요·주거침입·재물손괴 등의 범죄를 상습적으로 일삼는 자들을 ‘동네조폭’이라고 부른다. 동네조폭은 남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남 창원에서는 72살이나 먹은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가 식당이나 주유소 등에서 악담을 퍼부어대며 영업을 방해하는 바람에 지난 4년간 문 닫은 식당만 3곳이나 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들의 패악질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는 물론 가족의 생계를 위한 생업까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본보 보도(18일자 19면)에 의하면 문신을 과시하며 조직폭력배인 양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피해 상인들의 불법영업을 약점으로 잡아 영업을 방해하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초·중학생들을 위협해 집에 있는 금품이나 물건을 가지고 오도록 한 동네조폭도 있었다. 이들이 동네를 활보 할 수 있는 것은 뒷날 보복이 두려워 피해를 당하고도
재벌은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기업가의 무리’라는 사전적 의미 외에도 국민들에게 여러가지 감정을 가지게 한다. 그것은 재벌은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시기·질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창업주 재벌 1세는 한국동란 이후 폐허 속에서 기업을 일궈냈고, 재벌 2세는 그 기업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소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2, 3세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한 마디로 싸늘하기만 하다.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이 술집 종업원에게 맞았다는 이유로 김승연 회장이 경호원을 동행한 채 청계산에서 보복 폭행을 한 적이 있다. 2010년에는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이 맷값이라고 2천만원을 건낸 사건이 일어났었다. ‘땅콩회항’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남동생 조원태 부사장도 2005년 70대 할머니에게 폭언과 폭행을 해 경찰에 입건된 적이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도 작년 소위 ‘하와이 원정출산’으로 이를 비난한 네티즌 3명을 고소했었다. 온라인상에서 조현아…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학생들과 같이 공연장을 방문하는 행사다. 과정의 특성상 대학원생들과는 비교적 자주 현장 수업을 한다. 함께 관람한 공연이나 축제, 행사 등에 대해 이론과 비추어 현실적인 문제나 해결방안, 작품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견을 깊이 있게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수강하는 인원이 60명이 넘는 학부 수업은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공연예술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체험은 강의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값진 것이어서, 학부 수업도 과목별로 꼭 한 번씩은 공연장을 함께 방문하는 행사를 마련한다. 다행스럽게도 학교에서 실습 지원을 해 주어서 학생들도 비용 부담 없이 주말을 이용한 공연장 나들이를 하곤 한다. 이번 학기에는 국립극장에서 현장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극장 측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가능한 프로그램을 결정하게 되는데, 국립극장은 우리나라 현대 공연예술의 역사를 대변한다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도 공연예술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어서 매우 의미 있고 실제적인 자료들을 둘러볼 수 있다. 또, 극장 내부공간과 무대 구석구석까지 견학을 할 수 있어서 학생들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낙과(落果)들 /이정원 연보도 없이 한 생이 저문다 그러쥐었던 손목이 악력을 놓을 때 하필 지구 한 모퉁이에 와서 연소시킬 아무것도 없다는 듯 차츰 쪼그라지는 백색왜성들 -2014년 시집<꽃의 복화술>천년의 시작 푸른 모과 하나 내 앞에 떨어졌다, 모든 생명은 별의 성분을 지니고 있다, 별 하나를 집었다, 높은 가지 끝에 달려있던 열매로서, 햇빛과 달빛을 먹으며 빛나던 별, 제 궤도를 벗어나 지구에 떨어진 별을 창틀에 놓아두고 노랗게 익어가는 과정을 본다, 자신의 핵원료를 다 소비한 백색왜성, 항성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백색왜성이 검게 변하며 쪼그라든다. 내가 영원을 빌던 별들, 알고 보니 유한한 목숨이었다, 별과 모과와 나는 수명을 가진 생명체, 활동을 멈추고 검게 썩은 모과의 잔해를 나는 흑색왜성이라 부른다. /신명옥 시인
고려시절 유민생활을 하던 사람들을 호적에 입적시면서 용모가 고운 여자를 뽑아 춤과 노래를 가르쳐 양성했다는 기록을 보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10년에는 기생학교를 개설하여 교양과 예절 교육을 통하여 품위를 유지하도록 제도적으로 육성했다. 당시 기생 지망에 있어 누구나 신청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했고 집안 살림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입문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문학, 예술에 조예가 깊은 여성을 뽑았기 때문에 노래와 춤, 한시, 거문고는 기본이어서 기생은 전통 가무의 보존자이고 전승자로 뛰어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젊음과 아름다움이 으뜸이라 기생 환갑은 서른이라 하는 등 애틋한 사연도 많이 전해온다. 그때의 기생은 화려한 삶때문에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신분적 제약으로 이별과 배신이 반복되어 쓸쓸함도 있었다. 위안을 삼는다면 비단옷에 고가품의 노리개 그리고 지체 높은 사대부 자제와 연예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포 애기봉 전설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기생 애기와 평양감사는 오랑캐의 침략으로 후일을 기약하며 남쪽의 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애기는 연약한 몸으로 수천리를 걸어 먼저 도착했지만 감사는 포로가 되여 북쪽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