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기에 접어들었다. 정말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오늘날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은퇴’를 끝으로 여기는 삶의 문법에 익숙하다. 오랜 세월 직업과 역할 중심으로 달려온 우리에게 퇴직은 마침표로 느껴지기 쉽다. 그런데 그 마침표 이후의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준비되지 않은 긴 시간은 축복이 아니라 지루한 외로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은퇴 후의 ‘버킷리스트’가 단순한 소망을 나열한 유행어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정의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할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자존감이 흔들리고 무력감이 찾아온다. 버킷리스트는 바로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적극적 선언이며, 미래를 향한 능동적 설계도다. 버킷리스트의 첫째 기능은 삶의 방향성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직업 중심의 정체성이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자기 효능감과 삶의 의미를 회복시키며 자신을 다시 삶의 주체로 서게 한다. 여행지 몇 곳을 적는 단순한 목록을 넘어, 배우고 싶었던 악기, 다시 시작하고 싶은 공부,
학교급식 ‘잔식’은 배식하지 않고 남은 음식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음식이 모자라지 않도록 넉넉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항상 밥과 국, 반찬 등은 남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잔식들은 음식물 쓰레기 통으로 들어간다. ‘학교급식지침’에 의해 폐기처리 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급식 인원이 급격히 변동하면서 잔식이 그대로 버려지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푸드뱅크·사회복지시설 등에 기부해 나눔을 확산하고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을 줄이는 지방정부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서울·세종·충남 등의 지역에서는 잔식 기부를 지원·장려하는 조례를 제정·공포했다. 학교 역시 운영위원회 심의 및 협약 체결을 통해 기부를 진행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잔식 기부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지역 가운데 한곳은 수원특례시다. 시는 학교 측과 협의해 남은 학교급식을 지역 내 취약계층에게 지원하고 있다. 지난 해 8월 시는 수원교육지원청,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 수원시자원봉사센터, 8개 초중고등학교, 광교종합사회복지관·우만종합사회복지관과 ‘수원시 학교급식 잔식 기부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이어 학교급식 잔식 기부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급
[ 경기신문 = 박재동 화백 ]
지난 주말 대전 대덕구 문평동 한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에서 무려 74명이나 숨지고 다치는 인명피해를 내는 대형화재 참사가 발생해 국민의 가슴을 에게 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의정부 섬유공장과 안성 원곡면 창고 등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는 등 봄철 건조기 화재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초대형 화재가 아니었긴 해도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한 기록이 있는 지역도 경기도다. 화재 발생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대책들이 적극적으로 강구돼야 할 시점이다. 지난 20일 오후 대전 대덕구 문평동 한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사망 14명, 중상 25명, 경상 35명 등 부상자 60명을 포함해 모두 74명이 죽고 다치는 끔찍한 비극으로 귀결됐다. 화재는 공장 내부 절삭유와 기름때, 임의로 마련한 ‘2층 복층’ 구조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해 급속히 확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밀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한 전말이 밝혀지겠지만 또다시 조금만 잘했으면 방지할 수 있었던 비극으로 판명될 개연성이 높다. 같은 날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용현산업단지 내 한 섬유공장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건물 2층에서 시작돼 건물 상당 부분을 태웠고, 인근 공장으로까지 불길이 번지기도
인류가 겪는 대재난은 어떻게 나에게 전달되고 수용되는가. 매체의 발달로 자연 재앙이든 인위적 재난이든 우리는 그 현상 현실을 빠르고 여실하게 전달받는다. 재난을 어떤 언어(매체)를 통해서 전달·수용 받고 의미화하는지에 따라, 재난을 이성적·감성적으로 처리하고 소비하는 양태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러·우 전쟁이나, 미국·이란 전쟁의 내용을 다루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이야말로 인위적 재난의 앞순위에 놓이지 않는가. 2001년 9월 11일 아침, 알카에다 테러범들이 납치한 여객기를 빌딩에 충돌시키는 자살 공격으로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폭발했다. 사망 2996명, 부상 2만 5000명의 피해 장면을 영상으로 보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 영상 장면으로 수없이 빠져들어 갔다. 그것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공유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놀라움[驚異]에 대한 목격 욕구도 작동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일본 동북해안에서 대 쓰나미 재앙을 겪을 때도 나타난다. 40m 높이의 쓰나미가 밀려닥치고 2만 명의 사망·실종자를 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나미에 파묻히는 영상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이…
얼마 전 ‘지방소멸 전문가’랍시고 ‘경북연구원 생활인구센터’ 현판식에 초대받았다. 행사는 오후 4시로 잡혀 있었기에 아침 일찍 출발해 예천 회룡포 마을을 둘러보았다. 육지의 작은 섬으로 참 아름다웠다. 은빛 백사장, 강물 위 뽕뽕 뚫린 뿅뿅다리. 산을 배경으로 한 작은 호수들. 마을 여인이 모는 빨간 스포츠카. 밭 가는 농부들의 목소리. 이색적인 정취에 젖어 이곳저곳을 거니는 데 한 여행객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정자만 가득해. 여기도 정자, 저기도 정자. 어디를 가도 정자 투성이야!” 그 말을 듣고 보니 역시 그러했다. 여느 지자체처럼 회룡포 마을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인구감소시대, 지자체들은 마을 살리기에 고군분투라지만 정부 보조금으로 덕지덕지 건물만 세운다. 회룡포의 정자들 역시 닮은꼴이다. 영혼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디어를 짜내기보다 카피만 하니 전국의 봄 축제, 가을 축제가 거의 똑같다. 여기도 핑크뮬러, 저기도 핑크뮬러.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이는 뼈를 깎는 품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개발을 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인구 유인은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핀란드의 피스카스(Fiskars)는 우리에게 상당한…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얼음 베개를 베고 자려느냐 완전 벗은 몸으로 거리에 서서 겨울을 입고 밤 지새는 겨울나무가 되려 하느냐 사납게 휘두르며 달겨드는 혹한에 맨살을 맡겨 마구 쳐라 해라 내 남루한 의지를 기꺼이 던져 놓으리니 허공을 헤치듯 갈겨 오는 저 하늘의 회초리 그래 나 여기 있느니 빗나가지 마라 - ‘다시 겨울이다’ 부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신달자 선생의 시 ‘다시 겨울이다’의 두 연 중 첫째 연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을 통해 삶의 순환과 노년의 시간, 그리고 엄혹한 순간을 견디는 의지와 그에 대한 성찰의 깊이를 담은 시다. 이 한 부분만으로도 선생의 시가 가진 섬세하고 치열한 감성, 그 곤고한 심정적 곡절들을 균형성 있게 감당하는 내면 세계를 유추할 수 있다. 시와 에세이, 그리고 소설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문학은 여성적 감수성과 자아 성찰, 삶의 고난과 죽음의 절대성에 대한 사유(思惟), 이를 표현하는 맑고 선명하고 절제된 언어로 충일하다. 문필가로서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사랑과 인생에 대한 수발(秀拔)한 통찰을 담고 있어, 사뭇 친숙하게 독자들과 만난다. 지난해 연말, 12월 4일의 일이다. 경남 거창군 남하면에서, 이 고장 출신의 문인 신달자 선생의 문학을 기리고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950년대. 미국의 과학자들 사이에는 공통된 두려움이 흐르고 있었다.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의 저자 새뮤얼 W. 프랭클린은 전후 심리학자들이 마주했던 고민의 흔적을 추적한다. 전쟁은 과학기술이 어떻게 반인권적 살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 처절히 보여주었고,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가 또다시 전체주의와 독재정권을 위해 쓰이지 않을지 극도로 경계했다.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했다. 당대 심리학자들은 사회의 발전 동력이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있으며,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진보를 일굴 수 있는 능력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과학자들은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특정 인종이나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전체주의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창의성 연구는 그 고뇌의 결과였다. 심리학자들은 창의성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누구나 계발할 수 있다고 찬양했다. 창의성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에 의한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미국적인 개념이자 국가적 방어 기제였다. 창의성에 대한 예찬은 산업계로까지 확장되었다. 혁신적인 기업은 창의적 인재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광고 업계는 영감과 신선함이 넘치는 예술적 집단으로 탈바꿈했다. 소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6·3 지방선거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 등을 4월 16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하겠다고 21일 밝혔다. 송기헌 정개특위 위원장은 “시일이 촉박한 만큼 심사에 속도를 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정개특위는 1월 13일 첫 회의를 열었지만, 그동안 공전을 이어갔다. 이날 정개특위는 진보 4당이 요구하는 3~5인 중대선거구제 확대, 비례대표 정수 확대, 통합특별시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과 관련한 법안도 함께 상정했다. 국회의 ‘직무 유기’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제9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일인 6·3지방선거가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구획정안을 내놓지 않아 소수당 및 예비후보들은 냉가슴만 앓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구 획정은 선거일로부터 180일 전인 작년 12월 5일까지 이뤄져야 했다. 정개특위는 여야 간 이견차로 실질적 논의를 못했다. 통상 선거구 획정은 국회에서 광역의원 선거구에 대한 안이 정해지면, 이를 기반으로 지역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가동돼 기초의원 선거구를 정하게 된다. 그러나 제때 이뤄지지 않이 폐해가 일파만파다. 경기도의 경우 정당별로 수백 명에 달하는 광역·기초의원 후보들을 검증해야 하지만, 선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