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직전이라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으나 영화 ‘헌트’는 올여름 최고의 역작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평론 입장에서 올여름엔 딱 두 편의 영화만을 ‘건졌다’ 할 수 있는데 ‘헤어질 결심’과 ‘헌트’가 그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헤어질 결심’의 미국 영국 배급은 무비(mubi)가 ‘헌트’의 미국 내 배급 역시 유명 배급사가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헤어질 결심’은 확실하게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 영화상)과 영국 아카데미 상을 노린다는 것이고, '헌트' 역시 해외시장을 크게 넘보고 있다는 얘기다. ‘헌트’가 개봉되면 작품 자체 얘기도 얘기지만 아무래도 감독 이정재에 대한 얘기로 넘쳐날 것이다. 이미 영화의 공개 시사회 이후 이정재에 쏠리는 기자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영화를 너무 잘 만들었는데 이게 진짜 이정재의 연출 솜씨냐는 것이고 이정재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느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것은 진짜 이정재가 올곧이 자신만의 실력으로 이번 작품의 연출을 해낸 것이 분명하며 얘기를 해 본 결과 영화를 훌륭하게 만들어 낼 만큼 인문학적 지식과 영화적 소양이 혀를 내두를 수준이라는 것이다. 모두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최근에 가장 몰입해서 보는 드라마다. 드라마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9화 ‘피리 부는 사나이’다. 강남에서 자라서 어머니 표 교육으로 서울대에 들어간 방구뽕이 이번 회차의 핵심 인물이다. 방구뽕은 자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학원의 어린이들을 납치해서 아이들을 산에 데려가서 놀게 하고 미성년자 유인 약취 및 버스 탈취 혐의로 신고당한다. 어린이들을 웃기기 위해 이름을 방구뽕으로 개명하고, 스스로를 어린이 해방군 총 사령관이라 지칭하는 모습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낯설고 정신이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또, 9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데려다가 산에서 놀게 한 다음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설정이다. 드라마 후반부에 아이들이 학원에서 매일 10시까지 저녁도 못 먹고 공부한다는 내용이 나오고 나서야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시했다. 학원을 전전하다가 밤늦게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흔한 풍경이 되어버려서 자주 접할 수 있고,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테니 공감도 어렵지 않았을 거다. 우리 반에도 학원과 학원 숙제 때문
오는 28일 뽑는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 대표 순회경선이 진행중이다.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뒤 치러지는 이번 전당대회는 당의 활로를 모색하며 차기 대선승리의 초석을 다져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회이자 도전이다. 그런만큼 당 쇄신을 포함한 비전제시와 인물 대결로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순회 경선 시작 단계부터 불거진 ‘기소 시 직무정지’ 당헌 개정 논란은 우려를 낳고 있다. 민주당 당원 청원 게시판에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당헌(80조)을 고쳐달라는 청원이 공식 답변이 필요한 5만건을 넘어 당 차원에서 공식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놓고 당 안팎에서 ‘이재명 의원의 방탄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당내에서는 ‘정치보복성 수사’의 칼날이 이 의원을 비롯해 야당 인사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향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특히 대선과정부터 대장동 개발 특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을 받으며 수사 선상에 오른 이 의원의 지지층 입장에서는 그런 걱정에 이해가 가지
기역자 모양이다. 기역 니은 하고 부르는 그 기역(ㄱ) 말이다. 기역자를 따라 방들이 늘어서있는데, 방문 앞으로 길게 누운 마루가 방과 방을 이어주는 길 같다. 방이 아니라 섬이었다면 섬과 섬을 이어주는 물길 같았을까. 그러든 말든 마루는 개의치 않는다. 지붕에 앉힌 기와가 그러하듯 마루 또한 기역자 모양 따라 반듯하다. 도시의 기와집은 어떠할까. 산 아래 터를 잡은 시골집의 하루는 기와 끝에서 떠올랐다가 마루 끝에서 저문다. 처마 밑에서 일어났다가 툇돌 아래 눕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바다남쪽의 기와집은, 처마 끄트머리의 기울기만큼 허락하고, 마루 끄트머리의 넓이만큼 보듬는다. 거절하고 밀어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햇살은 툇돌 보다 높은 곳을 탐내지 않고, 그늘은 마루보다 낮은 곳을 욕심내지 않는다. 빗방울도 낙엽도 그윽한 달빛조차도 예외일 수 없다. 떨어지는 것들은 어김없이 처마와 마루 사이에 몸을 던지며 삶을 마감한다.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 게 있을까. 아무리 발돋움을 하고 서도 처마 밑이다. 바닥을 기어도 툇돌 아래 누울 순 없다. 억지로 해보려 해도 안 되는 것이 삶이다. ‘만류의 영장’이라는 계급장은 얼마나 부끄러운가. 밤에 싸인 지구별에서 인간과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행정학자 출신으로 교육 정책 경험이 전무하고, 정상윤 차관은 국무조정실 출신, 이상원 차관보는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이처럼 장관·차관·차관보가 모두 교육행정 무경험자로 이뤄진 경우는 과거 정부에선 거의 없었던 일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8월 4일자 A12면에 실은 기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교육 정책은 이해관계자가 많아 하나하나가 민감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데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교육계의 비판 목소리도 같이 전했다. 윤 정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조선일보 보도로는 이례적이었다. 박 장관을 꼬집어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출신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전문가로 통한다”고 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방만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는 취지로 2007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부터 시행됐다. 경영평가단은 실적 부진 기관장 해임건의까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부여 된다. 박 장관은 2017년 경영평가 단장(문재인 정부 시절)으로 2016년(박근혜 정부 시절)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를 총괄했다. 이전에도 부단장 3년 등 10여년 동안 공공기관 평가를 맡았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들이 투자유치를 통해 사업화를 본격화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내원하는 환자와 앱으로 연결하여 원격진료를 한 후 처방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주기적으로 파악하며 일상 속에서 건강관리를 자문해주는 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여 체성분, 수면 등 개인의 일상기록자료를 기록하고 건강 미션을 제공하는 등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전국민의 병원 데이터를 표준화해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비대면 진료와 연계된 고령 친화적 만성질환 관리 솔루션이 개발되고 있으며 운동·수면·혈당 관리 등의 서비스를 개인 맞춤형으로 관리해 사용자에게 제공될 예정이다.현재는 법률상 전문 의료진만 의료행위가 포함된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의료행위가 한시적으로 허용되어 의료행위를 포함하는 비대면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에 제약이 따르지만 스타트업 기업들이 전문 의료진이 개입하는 건강관리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하기에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그동안 건강관리서비스는 비의료 행위에 대해서만 사업화가 가능했으며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는 그 수준이 높지 않아 동종 업체에서…
- 과학의 고독 지구 전체가 하나의 자율적 조직으로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한 ‘가이아’의 개념은 애초에는 허무맹랑한 주장처럼 여겨졌다. 환경이 생명체를 지배하는 것이지 생명체가 환경을 바꾸어내기도 한다는 논리는 가당치도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이아’라는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이름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주기에 적당하기 조차했다. 사실 이 명칭은 제임스 러브록과 이웃해 살고 있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의 작가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이 지어준 것이었다. 골딩은 훗날 (198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과학과 인문적 사유가 만나 ‘가이아’라는 이름이 생겨난 셈이었다. 제임스 러브록이 80세(2000년)를 막 넘기면서 출간한 자서전 『가이아에게 경의를 (Homage to Gaia)』에는 양자역학의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1936년에 했던 말을 인용해놓았다. 자신의 이론이 처음에는 거부되었다가 40년이 지나 책이 나온 당시에는 지구과학의 한 중심이론으로 수용된 것을 기뻐하면서 과학자가 겪어야 하는 고독에 대한 심정을 인용으로 대신 풀어놓은 것이었다. “새로운 과학적 사유는 아무리 조직이 잘 되
여름 휴가로 찾은 강원도 양양의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서핑족들의 성지라는 정도는 알고 갔지만 그들이 문화를 바꿔놓은 줄은 몰랐다. 횟집이 즐비할 거리의 서핑숍과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도 낮설었느데, 밤이 되자 바닷가를 조명과 음악, 춤으로 밝힌 비치클럽 청춘들의 모습은 흡사 외국 휴양지 느낌이다. 웃통 벗은 사내들의 문신, 칵테일 잔 들고 춤추는 비키니 차림 여성들의 분방한 모습이 나의 ‘촌스러운’ 20대 기억을 소환했다. 20세기에 청춘을 보낸 내게 ‘바닷가 청춘’을 상징하는 것은 기타와 모닥불, 새우깡 안주, 그리고 단골 레퍼토리 0순위였던 연가(戀歌).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저 바다 넘어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빛도 아름답지만/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후략)’ 새우깡을 건네며 스치는 손 끝에 가슴 떨려하면서도 쓴 소주에 사랑고백을 삼켰던 것이 내 청춘의 연가였다. 그 노래가 내 나라 노래가 아닌, 뉴질랜드 전통 민요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람은 양양의 밤 문화 이상이었다. 그 노래로 인해 그저 북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복지천국, 낙농업 친환경 국가 정도로 알고 있던 뉴질랜드 역사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