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장내시경을 받기 위해 수면유도제를 맞고 잠든 여성 환자 3명을 유사 강간한 의사 양 모 씨가 있었다. 의사라는 직위를 이용해 저항이 불가능한 환자를 능욕한 파렴치범이었다. 3년 6월의 징역형, 하지만 그의 의사면허는 자격정지 1개월 후 건재했다. 마왕 신해철을 의료과실로 숨지게 한 의사는 수차례의 동종 사망사고 때문에 두 번이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의사면허를 박탈당하지 않고 의료행위를 계속하다 또 다른 사망사고 때문에 지금도 재판 중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의사면허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불사의 자격증이다. 대한민국 검찰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한 채 세계 제일의 막강 파워를 누린다면, 대한민국 의사는 가장 생명력이 질긴 절대 면허를 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의사면허가 학창 시절 표창장 하나에 날아갔다. 부산대의전원 입학을 취소당하고 곧 의사면허까지 빼앗길게 뻔한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양 이야기다. 의사면허가 봄날 목련꽃잎처럼 이렇게 쉬이 떨어지는 것인 줄 처음 알았다. 부산대에 이어 때를 놓칠까 고려대도 나섰다. 한 젊은이의 삶이 통째로 말소당했다. 잔인하고 추악하다. 싸움을 하더라도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건달들의 불문율이라더니
언론이 참 태평해 보였다. 프로야구 기사를 읽으면서 와닿은 느낌이다. 특히, 신문이 그렇다. 2022프로야구가 지난 4월 2일 토요일 오후 2시 잠실야구장을 비롯해 전국 5개 야구장에서 성대하게 개막됐다. 최근 일부 선수들의 일탈행동으로 팬들의 외면을 받아온 프로야구였다. 하지만 금년은 팬들의 관심을 끌 흥행 요소가 넘쳐난다. 무엇보다 ‘경기의 품질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크다. SSG 김광현과 기아 양현종이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왔다. 류현진의 LA다저스 시절 동료로 야구팬들 사이에 친숙한 야시엘 푸이그가 키움에서 활약한다. 제2의 이종범이라는 찬사를 받는 신인도 있다. 김도영이다. 그는 4할이 넘는 타격으로 시범경기 수위 타자를 차지했다. 그에 필적할만한 다른 신인들이 1군엔트리에 많이 포함됐다. 지난 두 시즌은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 경기로 치뤄졌거나 소수의 관중만 입장이 허용됐다. 음식물 섭취는 물론 응원도 불가능 했다. 이젠 함성을 지르는 응원을 뺀 모든 제약이 다 사라졌다. 야구장은 일상회복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다.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하다. 시즌 시작 직전엔 야구인 출신 허구연씨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 취임 했다. 취임
사람들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는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정작 중요한 일 곧 모든 일의 근본이 되는 일만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자신의 영혼을 개선하고, 영혼의 신적 본원을 일깨우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일이 모든 사람들의 근본 사명인 것은 이를 달성하는 데 아무런 장애도 없는 유일한 목표라는 사실에 비추어 봐도 명백하다. 젊었을 때, 우리는 인간의 사명은 끊임없는 자기완성이며, 심지어 모든 인류의 죄악과 불행을 제거하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공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공상 속에 세속의 때가 묻어 오랫동안 인간 본연의 삶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노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며 그저 주어진 그대로 살라고 충고하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은 진리가 들어있다. 젊었을 때의 공상이 잘못된 것은 자기완성과 자기 영혼의 완성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과 장차 일어날 일을 지금 당장 눈앞에서 보고 싶어 한다는 것뿐이다. 나날이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삶보다 좋은 삶은 없으며, 실제로 자신이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큰 기쁨은 없다. 이것이 내가 오늘까지 끊임없이 경험해온
목련이 바람을 끌어와 제 목을 치고 있다 골목마다 절명시가 낭자하다 봄날이 목숨 같다
드레퓌스 사건과 프랑스 혁명 “19세기는 혁명으로 시작해서 괄목(刮目)할 만 했는데 드레퓌스(Dreyfus) 사건으로 종료된 세기가 아닌가. 이건 아마도 장래에 쓰레기같은 세기라고 불리워질지도 모르겠다.” 혁명의 시대에 대한 희망을 뒤엎는 사건으로 마무리된 시대에 대한 통탄이 담긴 이 문장은 『티보가(家) 사람들(Les Thibault)』의 저자 로제르 마르땡 뒤 가르(Roger Martin Du Gard)가 기록한 것이다. 그는 1937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사회주의 지도자 장 조레스를 따르기도 했던 그의 세계관은 명백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과 반격이 지니는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그리고 미국에까지 온통 충격을 준 드레퓌스 사건은 바로 그 인간 존엄의 원칙을 망가뜨린 사태였고 결국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모독한 중대사례였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첫 장은 ‘반(反) 유대주의(Antisemitism)’ 분석이다. 그 글이 시작되는 앞머리에 인용된 문장이 바로 로제르 마르땡 뒤 가르의 ‘19세기’에 직격탄을 던진 글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허위와 진실의 싸움을 넘어서 혁명의 시대 전체에
대부분의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창궐로 피해를 당해 힘들어하고 있다. 이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소상공인·자영업자 재난지원금 확대와 손실보상 기준 강화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인수위는 재난지원금과 손실보상 확대, 채무 재조정, 세액공제 등 지원방안 구체화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통을 받고 있는 업종이 어디 이들뿐이랴. 농촌도 마찬가지다. 농업부문에 종사하는 이들은 더욱 악화된 인력부족 현상에 울상을 짓고 있다. 사실 농촌의 인력부족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마다 감소하는 농촌인구, 초고령화된 농촌은 인력이 부족했다. 이런 고민을 크게 해소해 준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정식 노동자건 불법체류자건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거든 것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정부에서도 대체로 묵인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나마도 코로나19 세계적 유행으로 어렵게 됐다.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노동자들의 재입국이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인건비도 크게 올라 어려움은 가중됐다. 농사를 포기한 경우도 있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외국인을 비롯한 농촌 노동력 확보가 더 어려워지자 정부는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농·어촌을 위해, 4월 13일부
“거긴 가지 말아요! 그 나쁜 놈들은 빵을 만드는데 악마가 발명한 수증기를 사용한단 말이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숨결인 북풍과 동풍을 이용해 일을 하고 있소.”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풍차방앗간의 편지(Les Lettres de mon moulin)』다. 어두운 파리와 빛나는 프로방스를 대비시킨 이 단편은 도데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 소설의 무대는 프랑스 남쪽 끝 퐁비에이유(Fontvieille).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무대인 아를(Arles)과 길쌈의 마을 파라도(Paradou) 사이에 있다. 옛날에 이곳엔 풍차방앗간이 많았다. 프로방스 사람들이 밀방아를 찧어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파리에서 온 사람들이 기계방앗간을 세우면서 풍차방앗간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웬일인가. 언덕 위의 코르니유(Cornille) 영감님 풍차방앗간은 돌아갔다. 이 영감님은 빈 방아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밀을 안 마을사람들은 모든 밀을 코르니유 영감님께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영감님은 절대로 일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골사람들의 인정과 의리가 산업화와 기계문명의 거대한 회오리를 막아낸 감동의 대서사시다. 프랑스…
정신적인 세계에는 육체적인 세계보다 모든 것이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모든 기만은 반드시 또 다른 기만을 부르고, 모든 잔학행위 또한 또 다른 잔학행위를 부른다. 사람들은 흔히 단순한 건망증으로 자신의 양심이 결백함을 자랑한다. (조니자드 라페스키) 작은 악에 대해 이 정도쯤이야 하고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물방울이 모여 항아리 하나를 채운다. 어리석은 자는 조금씩 악을 저지르다가 마침내 온몸이 악으로 가득 차 버린다. 선에 대해서도 어차피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그릇을 가득 채우듯, 선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 또한 온몸이 선으로 가득 차게 된다. (부처) 나무 기둥을 쓰러뜨리면 그 가지도 함께 쓰러지듯, 죄악의 뿌리를 제거하면 다른 죄악도 같이 제거된다. (파스칼) 사람은 미덕을 많이 갖추었다 하더라도 일단 허영심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흔들리고 만다. 허영과 진실은 결코 부부가 될 수 없다. (라 로슈푸코) 악의 싹을 감시하라. 악이 싹트는 것을 알리는 영혼의 목소리가 있어, 그것이 싹트자마자 우리는 왠지 모르게 초조하고 부끄러워질 것이다. 그 목소리를 믿어라.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