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서 회식이 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딸은 야간근무를 하는 날입니다. 냉장고를 뒤적이다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무얼 살까, 한 끼니를 해결하는 데도 선택이 필요합니다. 재래시장 반찬가게에서 고사리와 도라지와 숙주나물을 샀습니다. 까만 비닐봉지에 세 가지 나물을 담고 9000원을 계산하는 순간에도 저녁메뉴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고추장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마트에 들렀습니다. 태양초 고추장(1.8kg)과 다담 된장찌개양념(530g), 마파두부 양념소스(130g)와 꽁치통조림을 계산대에 올리고 2만 6660원을 지불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막혔습니다. 빨갛고 파란 신호등 색깔에 따라 차와 사람이 사거리를 가로지릅니다. 내가 선 횡단보도 신호등 색깔은 멈춤입니다. 맞은편 신호등에 걸린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나부낄 때마다 얼굴 앞에 새겨진 숫자가 비상등처럼 가쁘게 펄럭입니다. 신호등이 바뀌고 보행자 신호등 밑에 숫자가 깜빡거립니다. 한 번 깜빡거릴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듭니다.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 때문일까요. 줄어드는 숫자가 마치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의 카운트다운 같습니다. D-15, D-14
청년 인구 비율(24.09%)이 경기도내 31개 시·군 가운데 가장 높은 수원시가 지난 22일 ‘수원 청년정책 발전 방향 정책연구 학술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날 발표된 연구결과가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수원시 거주 만 19~39세 청년 622명(남성 248명·여성 374명, 기혼 195명·미혼 427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수원 청년 10명 중 9명이 “사회적 어려움 정도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이 겪는 사회적 어려움 정도’를 묻자 응답자의 87%가 ‘심각하다’(‘매우 심각’ 45.5%, ‘약간 심각’ 41.5%)고 답했다. “청년정책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비슷하게 나왔다. 일자리분야에서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을 물었더니 ‘고용환경 개선’(31.5%), ‘기업 취업연계 프로그램 제공’(30.5%), ‘취업 준비 비용 지원’(23.6%) 순이었다. 주거 분야는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를 위한 일반주택 공급’(39.7%)·‘주택 비용 지원’(37.3%) 응답이 많았다. 복지·생활 분야에서는 ‘금융자산 형성지원’(33.6%)이 제일 많았고, ‘생활비 지원’(32.8%), ‘출산·육아 지원’(16.1%)등의
말 많고 탈 많은 2022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91개국이 7개 종목에 출전하였다. 이는 2021년 도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던 46개 종목의 205개 국가에 비하면 반쪽짜리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의 정신은 고스란히 유효하기 때문에 세계인의 체육행사로써 인정받고 있는 것이리라. 주지하듯이, 근대올림픽은 1896년 4월 쿠베르탱 남작과 14명의 올림픽 위원회 위원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에 의해 서기 393년까지 중단되었던 올림픽은 1500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다시 시작되었다. 쿠베르탱과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은 올림픽을 통해 ‘세계평화를 실현하겠다는 이상’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공존은 올림픽의 중요한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몇 가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1936년 베를린에서 열렸던 11회 하계 올림픽을 꼽을 수 있다. 히틀러는 게르만족과 나치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한 장으로써 올림픽을 이용했다.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의 의도대로 독일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나치가
자아는 우리 내부에 깃들어 있는 신성을 가리는 덮개이다. 우리가 자아에서 벗어날수록 우리 안의 신성은 더욱더 뚜렷이 나타난다. 우리는 자아에 대해 고민하고 자아에 얽매이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욱더 나약해지고 더욱더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집착하거나,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더 강해지고 더욱더 자유로워진다. 만약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무슨 일을 도모한다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 진리는 그것이 자신의 자아를 버린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 경우에만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 (탈무드) 인간 최대의 승리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 (플라톤) 자신의 명성과 육체 속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는 자야말로 인생의 진리를 아는 사람이다. (부처) 이야기 도중에 자기를 의식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쳐버린다. 자기를 완전히 잊고 자아를 떠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의 이야기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도움을 주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순간이라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은 물론 타인의 인생을…
중국의 소설가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이 소설은 판금조치되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영화로 제작될 수 없다. 한국의 장철수 감독이 영화화한 배경에는 이런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은 서사가 굵직하고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이 극적이어서 영화문법과도 일맥상통한다. 중국 인민군 사단장 관사 취사병인 우이왕은 사단장 부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민을 위한 복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사단장이 장기 출장을 떠난 사이 그의 젊은 부인 류롄에게 유혹을 받는다. 우다왕이 거듭 뿌리치자 류롄은 "인민을 위해 어떻게 복무하겠다는 거지?" 물으며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어서 벗어." 하고 재촉한다. 그는 끝내 무너져 내리고 그녀에게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군. 잘했어. 아주 잘했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는 모택동의 유명한 연설 제목으로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언어다. 그런데 소설은 이 성(聖)스러운 언어를 성(性)스러운 언어로 끌어내린다. 변질되고 타락한 혁명을 극명한 대비를 통해 드러낸 것이 이 소설의 백미다. 인간해방을 내건 공산당 체제도 억압과 부패로 찌들어 있다는 서사적 보고
1. 박막례 할머니(80세, 가명) 오랜만에 진료실 문을 밀고 들어오시는 박막례 할머니 얼굴이 많이 부었다. 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장복했을 때 나타나는 문 페이즈, 쿠싱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 떨어진 아들네 집에 계시면서 너무 아파서 주사 몇 번 맞으셨단다. 그 주사 또 맞으면 콩팥 다 망가진다고, 침으로 살살 달래보자고 말씀드리고 치료실에 뉘어 드렸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에 도박 중독이었다. 돈 내놓으란 말에 새끼들하고 먹고 살 것도 없다고 하면 무섭게 때렸다. 얼굴 맞으면 표시나니까 죽자고 얼굴만 가렸다고 한다. 그러면 몽둥이로 등을 치고 배를 쑤시고 온몸을 깨털 듯이 두들겨 팼다며, 징하디 징한 결혼 생활을 회고했다. 생활비를 벌어올 턱이 있나. 다 팔아먹어 땅뙈기 하나 없으니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팔고, 공장에 가서 열두 시간씩 일하고, 치매기 있는 시어미를 찾으러 천지사방을 헤매고, 그런 와중에 다섯 남매를 거둬 학교를 보냈다. 본인이 못 배운 한을 풀기라도 하듯 아들도 딸도 모두 지성으로 가르쳤다. 그 덕에 오 남매는 모두 잘 자라 다들 제 몫을 하며 산다. 그런 이야기 끝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대선후보들이 한목소리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약속하면서 중소기업계의 10년 숙원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정부도 올 상반기 중 표준계약서 등을 통한 ‘납품단가연동제’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산업계의 고질적인 약육강식(弱肉强食) 구조인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 적폐를 일소함으로써 공생적 거래질서를 확립해 ‘상생 경제’ 혈맥을 뚫어야 할 것이다. 대선에 즈음한 선심성 반짝 꾐수로 끝나지 않도록 국민적 관심을 집중할 때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은 숫자로는 전체기업의 99%를 차지하고 있고, 종사자 기준으로는 75% 안팎을 넘나든다. 그러나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각각 529만 원, 259만 원으로서 임금 격차가 두 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차이가 중소기업의 경영난에 깊숙이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개별 중소기업 대신 중기중앙회가 대기업과 납품대금조정협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상생협력법이 시행되긴 했지만, 대기업과 거래를 끊을 각오가 아니면 감히 조정신청을 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이 존재하는 한 무용
'동장군'(冬將軍)이라고까지 높여 부르는 삭풍혹한도 입춘, 우수에 이어 개구리처럼 동면하던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기지개 켜는 경칩이 되면 무장해제한다. 자연의 법칙이다. 꽃들도 제각기 볼록한 가슴을 열어 자부심을 뽐낸다. 모두가 양춘가절(陽春佳節)의 주역으로 생명축제의 들판에 진출하는 것이다. 봄은 기화요초(琪花瑤草),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시간이다. 선남선녀들은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산야대지로 뛰어나가 약동하며 그 맹추위의 기나긴 억압을 떨치려 한다. 이 자유는 흡사 해방을 맞은 식민지 민초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선물과 같다. 이때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으니 그 이름은 '꽃샘추위'. 4월에도 마치 한겨울로 되돌아간 듯 맵찬 눈보라가 몰아친다. 나의 군복무 시절, 강원도 화천 대성산에는 5월에도 눈이 내렸다. 꽃샘추위는 우리의 인생에도 봄 속에 겨울이 있고, 겨울 속에 봄이 있음을 극적으로 가르친다. 그 어느 날 칼바람 불던 새벽. 보초교대하고 하산, 행정반에 신고하러 내려가는데, 조리하는 냄새가 멀리까지 진동하였다. 개구리 매운탕이었다. 와공 일당은 긴 겨울잠을 멈추고 기어 나오던 날 팽형(烹刑)을 당하여 전방병사들의 술안주가 된 것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