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가몬 신전의 부조 독일출신 작가 패터 바이스(Peter Weiss/1916~1982)의 소설 『저항의 미학』은 1937년부터 1945년 반(反)파시즘 저항운동을 그려낸 작품이다. 시기적으로는 작가의 20대를 옮긴 셈이기도 한 이 소설의 첫 대목은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의 부조(浮彫)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이 박물관은 기원전 고대 그리스 제국의 한 국가인 페르가몬에 있던 신전(神殿)이 흙속의 파편으로 발굴되면서 그걸 다시 조합해 아예 독일로 옮겨 만들어진 전시공간이다. 고대 도시의 정신세계를 새겨놓은 이 부조 작품은 제우스가 이끄는 신들과 거인족 사이의 전투를 담아낸 신화를 펼쳐 놓았다. 패터 바이스가 소설의 첫 장에 기록한 문단을 압축해 보자면 이렇다. “사방을 에워싼 석벽에서 몸뚱이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언제나 싸우는 몸짓이다. 피하고 쨉싸게 몸을 빼고, 공격하고, 몸을 막고, 몸을 쭉 뻗어 일으키고, 잔뜩 웅크리고. 비록 여기저기 지워졌지만, 불끈 버티고 있는 왼발, 휙 젖힌 등짝, 윤곽만 남은 장딴지 하나로 그것들은 하나의 공동의 움직임으로 맞물리며 어우러졌다. 하나의 거대한 투쟁이었다.” 신화는 제우스의 편에 섰지만 소설의 주인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이 확실한 1군(group 1) 발암물질들을 분류해 발표한바 있다. 석면, 카드뮴, 비소, 청산가스, 미세먼지 등이다. 공기 중의 석면물질이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유입되면 폐암이나 석면폐증, 중피종 등의 심각한 질환을 유발시킨다. ‘조용한 살인자’로 불리기도 한다. 체내로 들어 온 석면은 10년에서 40년까지 잠복기를 거쳐 악성 폐질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위험성을 모르고 집 지붕에 석면 슬레이트를 올리고 관공서 사무실이나 학교 교실 천정 마감재로 사용했다. 석면이 단열, 보온, 소음차단 등의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석면 슬레이트에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참으로 아찔한 일이다. 그러다 석면의 위험성이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2007년 건축용 석면시멘트 제조, 수입 사용을 금지했고, 2009년 석면함유제품의 제조‧수입‧양도‧제공을 전면 금지했다. 그리고 정부는 2016년부터 2027년까지 전국 1만3000여 학교의 석면을 완전히 해체·제거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석면 해체·제거 공사 중인 초등학교 건물에서 돌봄교실, 방과후…
1. 대통령이 현 정부를 “적폐 청산 수사 대상”으로 공격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비판했다. 사과를 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거기에 대해 답변하고 사과하면 깨끗하게 끝날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발단이 무엇이든 간에) 윤석열의 공격은 뚜렷한 프레임 전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도 안 남은 대선국면 막바지에서 스스로를 문재인 정부를 대적하고 대체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포지셔닝시키려 하고 있다는 뜻이다. 명실공히 여권 수장인 대통령과 충돌이 격화되면 될수록 대중의 인식 속에서 차지하는 야권 후보 윤석열의 덩치가 압도적으로 커진다. 충돌 사건의 드라마틱한 흥미효과로 인해 '윤석열' 이름 석 자가 언론과 sns에 맹렬한 기세로 노출되고 각인된다. 대중적 관심의 독점 효과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언론지형에서 미디어들이 신나게 해당 사안을 퍼 나르고 더욱 증폭시킬 거란 점이다. 이런 순환이 두어 바퀴 돌고나면 어떻게 되나. 윤석열은 문재인을 대체하는 차세대 권력으로서 상징적 이미지를 보다 공고히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윤석열이 해당
마이클 돕스가 쓰고 출판사 모던 아카이브의 박수민 대표가 번역한 다소 장황하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그래서 이른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미국 작가 조너던 사프런 포어의 소설 제목이자 영국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톰 행크스와 산드라 블록이 주연을 맡았다.)’ 느낌을 주는 책 『1962–세기의 핵 담판과 쿠바 미사일 위기의 13일』은 논픽션 르포르타쥬이다. 그런데 실로 내용이 너무나 다이나믹하고 풍부해서 한편의 밀리터리 첩보액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은 다큐를 이런 식으로 쓴다. 한 권의 대하소설처럼 쓴다. 그래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 『1962』는 그런 면에서도 귀감이 된다. 제대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나 역사학자가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등급 차이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1962』는 1962년의 급박했던 미국-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를 다룬다. 당시 소련의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비엔나에서의 미-소 정상회담 때 했던 약속을 뒤집고 쿠바에 핵 미사일 기지를 비밀리에 조성한다. 그리고 핵 탄두를 반입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이를 안 존 F. 케네디 정부
자기완성은 내면적인 일이기도 하고 외면적인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이는, 또 그들과 서로 주고받는 영향이 없이는 진정한 자기완성을 이룰 수 없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완전하듯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성서(마태 5장 48절)에 씌어있다. 이것은 예수가 하느님과 똑같이 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완전성에 조금이라도 다가서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완전하라’는 본문 그리스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원뜻에는 ‘본래됨’ 혹은 ‘있는 그대로’의 의미도 있고, 영어성경 NIV는 이를 mericiful(자비함)으로 번역했다. 옮긴이) 불순물이 전혀 없는 완전성, 그것이 곧 신이며, 신에게 다가가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이다. 자기완성을 향해 줄곧 정진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총명한 사람이며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선이 선인 줄 알고 악이 악인 줄 알 때, 그 사람은 굳게 선을 지키고 악에서 멀어질 것이다. (공자) 나는 아무리 배움이 적을지라도 이성의 길을 더듬어 나아갈 수 있다. 내가 두려워해 할 것은 오직, 그렇지도 않은데 깨달은 척하는 것이다. 최고의 지혜는 지극히 단순하다. 그러나
한 달도 남지 않은 20대 대선이 후보단일화 문제로 요동치고 있다. 오는 13~14일 이틀간 후보등록 이후 15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어느 후보도 홀로서기 승리를 자신하지 못하면서 막판 후보 간 연대가 다시 대선 정국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이재명 후보의 더불어민주당과 윤석열 후보의 국민의힘은 연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향한 구애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후보단일화가 결국 대선판을 좌우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대선의 길목에서 단골메뉴가 된 단일화를 지켜보는 유권자들은 착잡하다. 무엇보다 정책과 자질론은 후순위로 밀리고 정치공학의 산술적 덧셈이 선택을 강요하는 참담함이다. 둘째 그 과정에서 나눠먹기 논란, 셋째 그렇게 해서 집권한 역대 정부의 초라한 성적표를 목도한 경험 때문이다. 국민의힘 윤 후보는 국민의당 안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서로 신뢰하고 정권교체라는 방향이 맞으면 단 10분 안에도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도 이재명 후보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공동정부 구성과 개헌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안 후보를 견인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안 후보 측 관계자도 언급했지만 과
'제폭구민'(除暴救民)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궁극적 목표였다. 민비와 그 척족이 권력을 쥐고 농단하는 동안, 나라는 늘 풍전등화였고,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싸우던 외세(청나라와 일본)는 그 존재자체가 생존의 위협이었다. 전봉준은 그 일체의 학정과 위협을 사즉생과 임전무퇴의 정신으로써 대항해야 할 폭력으로 인식했다. 그것이 동학농민혁명의 동기다. 그 폭력을 제거해야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백성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것이 나라를 돕는 일이며, 그 때 비로소 씨알들의 삶이 편안해진다는 것이 동학군의 신념이었다. 전봉준과 농민군은 고부에서 시작하여 전주까지 파죽지세로 달려갔다. 관군에게 압승을 거둔 농민군은 혁명전사로 변했다. 그 마음으로 우금치까지 폭풍 진격했다.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겨우 200명의 일본군과 3000명의 관군이 연합하여 2만명의 동학군을 전멸한 것이다. 대포와 최신형 기관총으로 공격하는 일본군에게 화승총과 죽창으로 대항한 '아군'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다. 130년 전, 그 조상들이 당했던 폭력은 치명적이었다. 안팎으로, 무능하고 악마적인 왕조와 외세(청나라와 일본)는 잔인무도한 폭력집단이었다.…
폐소공포증 없으시죠? 침 삼키시면 안 돼요. 주무시면 안 돼요. 미처 대답할 틈도 없이 전신이 둥근 통 안으로 들이밀린다. 없었던 폐소공포증이 고개를 들고 숨이 가빠진다. 안 된다는 말 때문일까, 침이 차오르고 입술이 바싹 마른다. 디스크가 의심되어 시행한 경추 MRI 촬영. 목 옆으로 끼워 넣은 쿠션 때문에 한 치도 움직일 수 없고 어깨와 목은 점점 더 뻣뻣해진다. 온통 하얀 공간에서 귀마개 밖으로 들리는 드릴 소리와 망치 소리에 스멀스멀 공포감이 차오른다. 괜찮다. 다 지나간다. 조금만 참으면 돼. 오롯이 홀로인 공간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여행을 시작한다. 오로지 나를 위한 상상여행을. 코로나 시대 2년 차, 비일상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여행은 새로운 옷을 입었다. 하얀 막 안에서 자신이 내뱉은 숨을 들이마시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벽 안에 가두고 타인을 걸어 다니는 병균으로 여기며 점차 예민해졌다. 꼼짝할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코로나블루가 심각해졌고 온라인으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추억여행과 랜선여행으로 자신을 달래던 사람들은 전 세계를 장악한 바이러스의 기세가 약해질 때마다 소도시로, 소수의 사람들과, 소확행 여행을 떠났다. 어떤 여행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