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어지고, 소화가 잘 안 되거나, 배가 자주 아프면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무덥고 습한 날씨 탓인지 이 시기가 되면,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살짝 맛이 가기 시작한다. 수업이 진행되기 어려울 정도로 교실이 시끄러워지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터진다. 덩달아 한 학기 동안 교실을 운영하며 쌓인 스트레스가 몸으로 표출되고, 나 역시 화가 많아진다. 부디 무사히 남은 날들을 보내고 방학하게 해주세요-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교실에 앉아 있는 게 힘들어서 하루하루 방학만 손꼽는 상황이지만, 가끔 열세 살의 푸릇푸릇한 여름들이 귀엽고 싱그럽다. 우리 반 아이들의 귀여운 모먼트를 떠올리며 남은 몇 주를 잘 버텨보려 한다. 아직 청소년이 아니고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청린이들의 풋풋한 순간들. 매순간이 이렇게 귀엽기만 하면 좋을 텐데 현실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1. 반 친구 중에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이 있으면 적어 보자고 했다. 열광적인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모두 부끄러워해서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아직 반에서 커플이 생기지 않았고,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횡단보도에서 충분히 건널 수 있다는 착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몇몇 보행자들은 횡단보도 신호가 끝날 무렵 건널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무리하게 뛰어드는 행동으로 인해 결국 사고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생활 36년차 어느덧 50대 후반의 나이가 되면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자 등에 표시된 숫자를 보며 여유있게 걷다가 횡단보도 신호가 끝날 무렵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한 경우가 있다. 그리고 20대 아들, 딸과 같이 걷다 보면 먼저 걸어가는 아이들이 뒤에서 걸어 오는 나를 뒤돌아 보면서 서로 눈빛 교환하는 일도 가끔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빠른 것이지 내가 느린 것은 아니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광명에서 90대 할머니와 70대 할아버지의 사망사고 사례를 보면 두분 모두 분명히 좌우를 살폈고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두분은 신체 나이와 운동신경이 젊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것이라는 착각을 했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빛의 속도로 차량을 피하는 일은 영화일 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않다. 고령자들의 경우 신체 능력이 저하되어 차량을 발견하더라도 피하기 쉽지않고 경미
스페인에서 있었던 나토(NATO) 정상회의에 대해서 타임지는 지난 10년간의 국제회의 중 가장 중요한 회의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북대서양의 유럽국가들 군사 동맹체인 나토가 이렇게 주목받게 된 것은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무대에 데뷔했다거나, 쏟아지는 뒷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나토가 군사방어의 영역을 태평양으로까지 확대하고 그 방어의 대상도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명백하게 한 회의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새로운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을 재현한 신냉전 시대(new-cold war)의 개막을 알린 회의였다는 것이다. 1945년 2차대전이 종결되면서 세계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을 예상했지만 뜻밖의 이념대립이라는 냉전이 시작되었다. 냉전의 주역인 미국과 소련은 직접 전쟁하지는 않았지만 두 국가의 대리전쟁은 지구상 곳곳에서 치러졌다. 하나같이 자신들의 체제 우월을 주장하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들이었다. 우리의 6.25 참변이 대표적인 전쟁이었다. 그러나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이 기적처럼 무너지면서 냉전은 종식되었고 강대국 소련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이후 미국 유일의 슈퍼 파워로서 절대적 패권이 인정되는 국제질서가 지속되는 듯했지만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한 중국이…
자신의 허물을 알고 있는 자만이 남의 허물에 너그럽다. 아들딸들아! 만약 누군가가 너희를 모욕하는 말을 하거든, 아랑곳도 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마라. 그러나 만약 너희가 남을 모욕하는 말을 하였다면 “우리가 못할 말이라도 했단 말이냐? 아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속여서는 안 된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며, 너희들 자신의 기도나 친구의 중재에 의해 너희가 모욕한 자와 완전한 화해를 이룰 때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탈무드) 깊은 강은 돌을 던져도 조용하다. 모욕을 당했을 때 몹시 흥분하는 사람의 마음은 강이 아닌 웅덩이다. 우리는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며 겸허하게 살자. 살이 타서 재가 되기 전에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참회하자. (사디) 어리석은 사람의 말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침묵이다. 우리가 대답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반드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모욕으로 모욕을 갚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장작을 던지는 것과 같다. 자신을 모욕한 자에게 평온한 얼굴로 대하는 자는, 그것으로 이미 상대방을 극복한 것이다. 마호메트와 알리는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났는
불멸의 작가 기 드 모파쌍(Guy de Maupassant). 그 역시 천재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신의 부르심은 너무도 빨랐다. 그가 생을 마감한 건 서른일곱 살 청춘. 하지만 100년을 살다 간 사람을 무색게 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첫 성공작 ‘비곗덩어리’부터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여자의 일생’, 그리고 파리의 불쌍하고 추잡함을 고발하는 ‘롱돌 자매’ 등 주옥같은 소설을 300편 넘게 썼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의 대화, 시선을 섬세하고 애잔하게 표현했다. 이런 모파쌍의 탄생지는 특이하다. 그는 미로메닐 성(Château de Miromesnil)에서 태어났다. 노르망디 페깡(Fécamp)에 있는 이 성은 18세기 프랑스 법무재상이었던 미로메닐 공작의 소유였다. 백성을 사랑한 미로메닐 공작은 죽으면서 이 성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모파쌍의 부모는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페깡시장과 주임신부에게 부탁해 이 성을 빌렸고 거기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어린 모파쌍은 지극히 평범했다. 말이 없고 페깡의 바다와 항구, 선원들을 무척 좋아했다. 스포츠광에 자유를 만끽한 행복한 아이였다. 그가 페깡을 떠난 건 스무 살 때
이즈음 강남 좌파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계층을 일컫는 이 말은 전통적 계급이론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생산수단을 둘러싼 제 관계인 계급이론에 따르면 강남 좌파는 그저 소(쁘띠)부르조아일 뿐이다. 강남 좌파는 형용 모순의 조어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강남 좌파란 말이 언론이나 담론 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강남 좌파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서 일까? 아니면 그보다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이 필요해서 일까? 말이 새롭게 태어나고 사멸하는 것은 역동적 인간 삶에 있어 자연스런 일일 터이다. 하지만 강남 좌파의 사멸을 인과 관계적으로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담론 장에서 등장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브라만 좌파란 말이 주목을 끈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유래한 브라만은 중세 유럽의 3신분(전사·사제·평민) 사회에서 제2 신분인 사제를 뜻한다. 이런 브라만은 현대 사회에 있어 종교지도자뿐만 아니라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교수 등 지식인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브라만 좌파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말 그대로 브라만에 속하면서도 우파가 아
경기도가 사회적 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관광소외계층을 위해 ‘노동자 휴가비 지원사업’이란 것을 펼치고 있다. 도가 대상으로 삼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대리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기간제, 파견‧용역 등으로 연 총소득 3600만원(월 300만원) 이하, 만 19세 이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15만원을 적립하면 도가 25만원을 추가 지원해 총 40만원 적립금을 휴가‧여가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선정된 노동자는 이 적립금으로 전용 온라인몰’(www.ggvacation.ezwel.com)을 통해 여행, 문화, 교육, 여가 등을 즐길 수 있다. 숙박권·입장권 등 국내 여행 관련 각종 상품은 물론, 캠핑, 문화예술시설, 베이킹·가죽공예 등의 취미·여가 용품까지 구매가 가능하다고 하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도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제한되었던 노동자들의 야외 여가 활동 욕구를 감안, 도내 여행사와 함께 월별 테마 상품을 출시하는 등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공할 예정”이란다. 친환경 및 전통시장 상품을 추가하는 등 선택의 폭도 넓힐 방침이라고 한다. ‘노동자 휴
"고난의 역사! 한국역사 밑에 숨어흐르는 바닥 가락은 고난이다. 이 땅도 이 사람도, 큰 일도 작은 일도, 정치도 종교도 예술도 사랑도, 그 무엇도 다 고난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말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끄럽고 쓰라린 사실임은 어찌할 수 없다."ㅡ함석헌(1901~1989)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에서. 8.15 광복과 다름 없던 '80년 서울의 봄'은 그 해 5월, 전두환 일당이 광주를 피로 물들이면서 겨울공화국으로 되돌아갔다. 신군부의 12년 만행은 짙은 살의의 시간이었다. 그후 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문민정치의 싸구려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까지 거창하고 유혹적인 구호로 시작했지만, 아는 바대로 예외없이 끝은 좋지 않았다. 씨알들이 끝도 없는 고난의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요즘은 윤석열 정치에 대한 불편함과 우려가 뒤섞인채 연관된 기억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나날이다. 내 주변의 착한 시민들 다수가 비슷한 입장이다. 신명을 잃은채 집단적으로 무기력 증세를 보인다. 그 그룹의 폭주 때문만도 아니다. 내 경우는 문재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반이다.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