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 없는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세일이 없는 세상은 우선 정직한 세상일 것이다. 30%, 60% 심지어 80%라는 세일 광고를 보았을 때는 온몸에 힘이 빠진다. 재고품을 정리하느라 5%, 10% 정도 값을 싸게 해서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똑같은 물건이 50%나 값이 내려가서 먼저 물건을 산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면 그것은 엄연한 횡포다. 처음부터 정당한 가격을 책정해 놓고 그 값을 고수하는 것이 소비자에 대한 상도의이며 예의다. 물건이 너무 많아서 그 물건을 처치하기 곤란할 것 같으면 물건을 조금만 만들든지 아예 만들지 않으면 될 일이다. 넘쳐나서 쓰레기처럼 쌓인 물건들과 그 물건들을 휘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도 함께 싸구려 세일이 되어 어느 시궁창으로 둥둥 떠내려가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언짢다. 더욱 겁나는 것은 가격파괴니 노마진 세일이라는 새로운 어휘들이다. 어떻게 보면 소비자들을 더욱 현혹하고 부추기는 것 같고 이런 어휘의 범람은 속임수와 거짓의 난장판인 것 같아 현기증이 난다. 값이 싼 물건이 횡재일지 모르지만 그런 물건에 대해서는 애당초부터 어떤 소중한 마음을 간직할 수가 없다. 물건은 어디까지나
20대 대통령 선거를 뽑는 선거가 8개월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정국은 안개 속이다. 언제 후보가 결정되고, 주자들의 생각과 정체성(정당)은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상황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야권발 대선 구도는 더욱 그렇다. 기존 국민의힘 안에서 이렇다 할 후보군이 부각되지 않은 가운데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최근 입당했다. 하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야당의 경선 버스를 타지 않고 당 밖에서 독자세력화를 모색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혀가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잠재적 주자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19일 저서 출간과 함께 정치 행보에 시동을 걸었지만 대선 행로는 더 모호하다. ‘킹메이커’로 불리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최재형 전 원장을 끝으로 장외 주자의 추가 국민의힘 입당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정권재창출·정권교체보다 정치교체”라며 윤석열 전 총장에 이은 제3지대 역할론을 강하게 시사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을 거론하며 중간지대론을 제시해온 김종인 전 위원장이 최근 윤석열·김동연 두 후보군에 거침없는 평가와 함께 장외 체류를 언급한 것이 어떤 교감아래 이뤄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
지난 6월 29일 평양 노동당 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는 대선 열기가 뿜어 나오는 와중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중대사건’ ‘간부혁명’ ‘책임간부들의 직무태만 행위’ 등 과 같은 무거운 용어들은 북한의 권력층 내부에 심상찮은 변화가 있음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그 시그널은 공개된 확대회의 장면이다. 최상건 비서 겸 과학교육부장의 자리는 비워있었으며 리병철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은 거수 장면에서 손을 들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7월 8일 김일성 27주기 참배식에도 최상건은 보이지 않았고, 리병철 부위원장은 군복이 아닌 인민복을 입고 3열로 밀려났으며, 박정천 총참모장은 원수에서 차수로 강등된 것이 확인되었다. 김 씨 일가의 전통적 엘리트 통제 수법인 ‘강등과 복권’ 전술을 적용한 셈이다. 철직 당하면 할 것도 없고 대체재도 없는 북한에서 엘리트들의 ‘강등과 복권’ 전술은 매우 유요한 통제 수법이다. 리병철은 일단 코로나 방역과 관련한 내용을 자기 선에서 뭉갠 것이 원인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리병철의 생각은 김정은의 근심을 들어주고자 보고하지 않았는데, 코로나 방역 문제를 국가비상방역전으로 인식하는 김정은의 진노를 샀다는 것이
현 정부는 국정의 제1과제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으로 잡았다. 헌법에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건만 이 땅의 권력은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 권력’보다는 세습 재벌과 세습언론, 기소와 수사권을 모두 거머쥔 검찰과, 구태 관료 그리고 뿌리깊은 수구 정치세력들의 손아귀에 그대로 남아 있다. ‘더 센 살아 있는 권력’인 기득권 세력은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에도 아랑곳없이 민중의 삶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1945년 나라가 오랜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났음에도, 일제에 빌붙어 민족을 배반한 부역 관료, 일제 군인과 경찰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똑같이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에 대한 충성의 대가로 얻은 재력과 권력을 동원해 자녀들을 다시 지배층으로 키우는 데도 성공했다. 빈익빈 부익부는 해방 후 한국사회 작동의 메커니즘이었다. 비정상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것은 분단의 고착화이다. 같은 문화와 언어, 생활양식을 지닌 민족은 하나가 되는 것이 인류역사의 순리이다. 그러나 외세가 개입된 동포살육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한반도를 지구상에서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굳어지게 했다. 민족 내부가 극심한 분열로 갈라지고 찢겨져 최악의…
단고기란 북쪽에서 사용하는 언어이다. 반려견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고기가 개고기라고 하면 혐오의 눈길부터 보낼 것이다. 그러나 남쪽에서 개고기 식용이 사라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불과 몇 년 전 까지만도 보신탕이라는 간판이 걸린 식당이 있었다. 무더위에 발잔등에 떨어져도 약이 된다는 단고기는 삼복을 이길 수 있는 보양식으로 남북한 사람들이 오랜 세월 좋아하고 즐겨한 음식 중 하나이다. 남쪽에는 보신탕집이 사라졌지만 북쪽 사람들은 지금도 삼복 음식으로 단고기를 좋아한다.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도 적으니 식용을 거부하거나 혐오는 사람도 없다. 번식력이 뛰어나 한 번에 12마리씩 낳고 한 달이 좀 지나면 토실토실한 강아지를 이웃과 나누었다. 주인에게 충실한 개는 목줄을 하지 않아도 떠나지 않고 집을 지킨다. 사람을 좋아하고 죽을 때를 알면 슬며시 도망갔다가 다시 찾아온다. 이런 명물이 식용으로 쓰일 때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키기도 한다. 일만 하다가 식용이 되는 소 보다는 덜 아쉽겠지만 주인집 밥을 얻어먹고 자라 고기까지 내놓는 개를 아니 키울 수 없다. 그래서 주인에게 꼬리곱터를 열심히 젓는 충견에게 개고기가 아닌 다른 언어
지난 14일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615명이었다. 이는 국내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다 기록이었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12일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최고 수준인 4단계로 격상됐다. 비수도권의 거리두기도 2단계로 올렸다. 제주도와 경남 함안군, 거제시, 김해시, 강원도 강릉시는 3단계로 격상됐다. 이처럼 확진자가 급증한 이유는 오래도록 지속된 방역조치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낀 데다 방역 긴장이 완화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와 서울시 등 지방정부에서 각종 조치 완화를 예고하자 국민들의 긴장이 풀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거리두기 개편과 예방접종자 인센티브가 발표되면서 조금 완화된 메시지가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최근 방역조치를 강화하긴 했으나 이른바 ‘서울형 상생방역’ 발표가 방역긴장 완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4월 9일 서울시 ‘코로나19 종합대책회의’에서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기존 오후 9시, 10시 영업정지와 같은 정부 대책은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제한과는 별도로 서울시만의 방
여기서 벌어지는 비참한 일들은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없어. 사람들은 큰 막사들 안에서 하수구 안의 수많은 쥐들처럼 살고 있어. ... 지난주 어느 날 밤 포로들을 이송하는 열차가 이곳을 지나갔어. 그들의 마르고 창백한 얼굴. 그토록 피로한 모습은 본 적이 없어.... 이른 아침에 그들은 빈 화물차에 쑤셔 넣어졌고, 그다음에는 열차를 판자로 막는 동안 오래 기다려야 했어, 이제 그들은 동쪽으로 3일 동안 실려 가야 한다. 병자들에게는 바닥에 종이 매트레스를 깔아 주었어. 나머지 사람들은 밀폐된 차량 한 대당 70명가량이 가운데 양동이가 있는 맨 판자 위에서 지내야 해.. 살아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염려했다. 그리고 내 부모도 그렇게 이송될 채비를 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 옆으로 샜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거야. 여기서 벌어지는 비참한 일들은 몹시 끔찍하지만, 등 뒤의 심연으로 해가 슬그머니 물러난 늦은 밤에 나는 철조망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을 때가 많아. 그러면 자꾸만 어떤 인식이 가슴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오지. (있는 그대로의 어떤 근원적인 힘 같은 것이어서 나도 어쩔 수 없어.) 그것은 삶은 장엄하고 숭고하다는 것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노선을 두고 갈라졌던 항일단체들은 이념 면에 있어서만은 삼균주의라는 정치이데올로기로 통합되어 있었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주의 그리고 교육의 균등을 주장하는 삼균주의는 좌우의 독립운동단체들 대부분이 해방된 조국에 적용될 민족주의 정치이념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삼균주의를 만든 이는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으로 활동했던 우국지사 조소앙이었다. 그는 이미 임정의 헌법을 만들고 해방된 조국의 미래상으로 건국강령을 작성한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해방 후 백범과 함께 귀국한 조소앙은 분단정권이 아닌 통일민주정부수립에 나셨다, 반탁운동과 죄우합작운동 등 그는 시종일관 임정을 대표한 민족주의자였다. 특히 1948년 4월의 남북협상은 분단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민족운동의 몸부림이었다.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협상에는 임정세력과 함께 당시 가장 나이 어린 조만제(서울 상대 3년)가 삼균주의학생동맹 위원장으로 참석했다. 조만제는 조소앙에게 감명해 그의 삼균주의 노선을 따른 열혈 청년이었다. 남북협상팀은 나름의 성과를 가지고 귀환했지만 이미 냉전적 세계질서가 형성된 뒤라 허망한 결과를 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북협상이 강조되는 것은 아무리 엄혹한…
낳을 자유는 있어도 태어날 자유는 없다. 아이는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다. 태어나게 해달라고 조른 적도 없다.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가 된다. 그렇다고 아이가 우연의 산물이라는 건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의지가 빚은 사랑의 결정체다. 임신(姙娠)이라는 단어를 뒤집으면 신임(信任)이 되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확고한 믿음, 그것이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생명의 끈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일까.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고 마는 아이들의 비극은 왜 끊임없이 반복되는 걸까. 며칠 전 대전에 사는 아버지가 딸을 죽였다. 태어난 지 20개월 된 아이였다. 아장아장 걷기도 바쁜 어린 딸을 아버지는 잠을 자지 않고 운다는 이유로 죽였다. 우는 아이를 이불로 덮고 주먹과 발로 때리고 밟아서 죽였다. 엉덩이뼈가 바스러지고 온몸에 피멍이 든 아이는 끽소리도 못하고 죽었다. 딸의 시체는 아이스박스에 넣어 화장실에 방치했다. 딸의 시체를 유기하고도 어머니는 보름이 지나도록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죽은 딸의 시체가 썩어가는 연립주택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을 자고 숨을 쉬고 밥을 먹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한 해 동안 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