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꽃들이 흐드러진 어제 4월 6일은 백기완 선생의 새긴 돌(묘비) 세우는 날이자 49재였다. 가림천을 벗기자 ‘백기완 묻엄’이란 글이 드러났다. 뒷면에는 선생의 시, '묏비나리'의 한 구절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새겼다. 유홍준 교수의 설명대로, 선생의 삶과 민중미학에 따라 전체 묘역을 소박하면서 기품 있게, 무덤은 우리나라 뫼의 선을 따라 둥그렇게, 어머니처럼 낮게 모든 것들을 품는 형상으로 조성하였다. 불교가 아니라 우리 문화로서 49재인 민중 비나리를 지냈다. 명진 스님과 필자가 선생의 넋을 모시고 업을 씻고 왕생을 발원하고 배웅하는 비나리를 하였다. 임진택 명창의 선창으로 모두가 새로운 판을 여는 소리인 ‘불림’으로 “질라라비, 훨, 훨!”이라 외쳤다. 질라라비는 길들어져 묶였던 닭이 이를 끊고 날개 짓을 하는 것이니, 산 자든 죽은 자든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을 이룩하자는 다짐이다. 정태춘 가수가 클라리넷으로 연주하는 '봄날은 간다'의 애잔한 가락이 무덤을 훑고 지나갔다. 러시아 농민 혁명가인 '스텐카라친'의 선율을 따라 김수억 동지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백발의 젊은 불쌈꾼(혁명가)’의 유택 위로 꽃을 뿌렸다. 산화가를 부른 신라
대한민국 18세 이상의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 국민 누구나 선거권이 있다는 것이 지금은 공기와도 같이 당연한 말 같지만 과거 세계 곳곳에서는 성별과 신분 등을 이유로 투표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있었고, 치열한 산고를 거쳐 선거권의 단계적인 확대가 있어 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때부터 일정 연령 이상의 국민에게 동등한 선거권이 주어졌다. 우리는 과연 이 소중한 권리를 얼마나 잘 향유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주변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많다. 그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은 정말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가? 사전에서 정치는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과연 정치에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정치라고 한다면, 아마도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세계 시민단체 옥스팜(Oxfam)에 따르면, 영국인 150만 명이 작년 3월 유니버설 크레디트(Universal Credit, 공적원조)를 요청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6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유니버설 크레디트는 2013년 캐머런 (David Cameron) 총리가 신설한 영국의 유일한 복지수당으로, 소득에 따라 혜택이 제공된다. 따라서 이 수당을 청구할 자격이 없는 사람도 매우 많다. 사정이 이러하니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푸드 뱅크를 이용하는 영국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인버클라이드(Inverclyde)주 SNP(Scottish National Party, pro-indépendance) 의원 코완(Ronnie Cowan)은 “지금처럼 심각한 사태를 본 적이 없다며 고통스러워하는 메일을 매일 수 천 통씩 받는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지었다. 초유의 사태 앞에 영국도 결국 기본소득 시계를 빨리 돌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지난해 4월 22일 하원의원 100여명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본소득 실시를 위한 공개편지를 냈다. 그들이 추진하는 기본소득은 모든 영국인이 매월, 조건 없이 생필품비(주거비와 식비 등)를 지급받게 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정부는 영국정부보다
이 세상의 삶은 결코 눈물의 골짜기도 아니고, 시련의 장소도 아니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것이다. 삶의 기쁨은 순간순간 하늘의 뜻을 알아채면서 살아간다면 계속 증가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까지의 만족과 기쁨을 잃어버리며 탄식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기쁠 때는 순수하게 기뻐하되, 기쁨의 원인이 사라질 때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파스칼) 늘 쾌활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운명이 가져다 주는 사소한 기쁨에 감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스마일스) 만족을 찾아 헤매지 말라. 그보다는 항상 모든 것 속에서 만족을 발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너의 일이 바쁘더라도 마음이 자유롭다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너에게 만족을 줄 것이고, 네가 듣는 모든 이야기 속에서 흥미롭고 즐거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인생의 목적을 만족에 둔다면, 아무리 재미있는 순간을 만나도 결코 진심으로 웃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존 러스킨) 진정한 현자는 언제나 쾌활하다. 기쁘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은 기쁨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만약 기쁨이 끝났다면 자기가 어디가 잘못
일곱 번 본 영화가 있다. ‘인생은 짧고 볼 영화는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내겐 이례적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개봉된 1962년 미국의 줄스 다신 감독이 만든 흑백영화 페드라(Phaedra)다. 라디오 심야방송을 즐기던 청소년 시절, 배경음악으로 처음 만났던 페드라는 강렬했다. DJ는 ‘남주인공이 사랑이 추락하자 인생도 추락하는 장면의 음악’이라고 소개했는데 바하의 파이프 오르간 음악 ‘토카타와 푸가’가 흐르는 가운데 절규에 가까운 독백이 나온다. (너무 많이 들어서 외워버렸다. 물론 영어다) ‘가자, 달리자! 바하의 음악을 들으며 추방되는 것도 영광이지 오, 세바스챤 바흐! 라라라~~ 굿 바이, 페드라, 그녀는 날 사랑했어. 죽고 싶어. 이제 스물 네 살, 라라라~’ 대학을 졸업하고 몇 해 뒤 종로의 한 영화관에서 재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첫날 첫회를 예매해 보았다. 엔딩 자막이 뜨고 관객 모두가 나간 뒤에도 혼자 감전돼 앉아있던 기억이 마치 유체이탈해 내려다본 듯 생생하다. 그리스 신화인 파이드라와 히폴리투스 비극에서 따온 계모와 의붓아들간 금기의 사랑 이야기도 강렬했지만 이를 맡은 여주인공 페드라(멜리나 메르쿠리 扮)의 이 세상 여자 같지 않은 아름다움
지난달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도덕성 뇌관이 터진 이후 우리 사회는 경쟁이라도 하듯 곳곳에서 치부들이 드러나고 있다. 전임자의 전세금 파문으로 자리를 이어받은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언론과의 첫 만남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실패를 인정한 부동산 정책이지만,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 성공이다, 실패다 말하기엔 매우 복합적”이라고 말했다. 불과 2년여전 여권의 꽃가마에 올라탔던 전직 검찰총장이 현재는 차기 대선구도에 그것도 반대 진영의 중심에 서 있다.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그가 떠난 곳에는 공수처와 기소권을 놓고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공수처장 관용차가 피의자인 검찰 고위 인사를 태우는 ‘황제조사’ 논란이 발생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현기증이 날 정도다.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성난 민심을 앞다퉈 거론하고, 정책과 후보들의 부동산 문제를 놓고는 서로 으르렁 소리를 내는 여야지만 정작 자신들에게 민감한 ‘이해충돌방지법’ 처리에는 찰떡궁합으로 뒷걸음치는 모양새다. 경제도 신음하고 있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 ‘포천’이 발표하는 ‘글로벌기업 500’을 바탕으로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00대 기업안에 한국 기업이 1
세상이 망하는 조짐은 극장가에서 나타난다. 두 가지 중의 하나다. 그다지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거나 좋은 영화가 나와도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중국과 일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는 열린 사회에서 흥한다. 닫힌 사회에서는 절대로 영화가 잘될 수가 없다. 4세대 후이 안 감독부터 5세대의 장이모우와 첸카이거, 6세대의 로우예 등등까지, 그리고 지하전영의 지아장커가 있던 나라. 홍콩의 왕자웨이까지. 예술과 정치, 인생을 담아냈던 중국-홍콩 영화는 이제 온데 간데가 없다. 시진핑식의 변질된 사회주의 독재는 영화를 더 이상 영화가 되지 못하게 한다. 홍콩 시위에서 사복경찰(우리 식으로는 백골단)의 곤봉질을 당하고 목격한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가수 정태춘이 종로에서 기자들을 기다리지 않는 것과 같다.(’92년 장마, 종로에서’)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베와 같은 극우 보수 정권이 50년 가까이 가는 나라(2010년 잠깐 민주당 간 나오토가 1년간 총리를 한 것을 제외하고)에서는 애니메이션 외의 영화는 거의 절멸 수준이다. 극장가가 팬더믹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언제부턴가 다이나믹한 동력을 잃었다. 한국에서는 요즘 극장 영
40대 남성 K씨는 술과 흡연을 즐기며 살았다. 어느 날부터 양반다리가 잘 안됐다. 바닥에 앉기 힘들고 골반과 사타구니 쪽에 통증이 나타났다. 곧 괜찮아지겠지란 생각으로 일을 계속했지만, 갑자기 발을 디딜 때마다 골반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쩔뚝거리며 걷게 됐다. 혈액순환 장애로 뼈가 썩는 질환인 고관절 무혈성괴사의 증상이다. 무혈성괴사의 원인은 지나친 음주와 흡연, 스테로이드제의 과도한 사용, 대퇴골 경부 골절, 탈구, 통풍 등 다양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괴사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의하면 골괴사(무혈성괴사) 환자는 2019년 3만 4745명으로 2015년(2만 7861명)에 비해 24.7% 증가했다. 남성이 2만 1201명으로 여성(1만 3544명)에 비해 22% 많았다. 고관절 무혈성괴사는 비교적 젊은 층인 30대~50대에 주로 발생하며,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골반의 통증 뿐만 아니라 괴사 부의의 함몰로 다리 길이가 짧아지고, 관절의 파괴를 일으키는 심각한 질환이다. 골반에 통증이 있을 때는 이미 괴사가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괴사가 있더라도 범위가 적은 초기에는 비수술치료가…
연꽃은 나흘만 핀다. 피는데 하루, 지는데 하루, 활짝 핀 연꽃이 세상과 만나는 시간은 이틀뿐이다. 개중에는 하루만 피는 연꽃도 있다. 새벽처럼 꽃잎을 열어서, 아침이면 활짝 피었다가, 해가 기울기도 전에 꽃잎을 닫는다. 노랑어리연꽃이 그렇다. 그래서일까. 연꽃은 사는 곳을 가리지 않는다. 진창이든 흙탕이든 기꺼이 뿌리를 내린다. 뿌리 내린 연꽃은 혼탁함에 물들지 않고 주변을 정화한다. 어둠을 밀어내고 빛으로 피어나는 꽃 그것이 연꽃이다. 여기, 연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별을 보며 하루를 열었다가 달을 등지고 하루를 닫는 사람들이 있다. 병원이든 대학이든 지하철이든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당연히 피는 꽃이 있다. 백화점이든 지하상가든 공공기관이든 어디든, 사람이 꼬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이 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버려지는 아수라장에서 멸시와 천대를 쓸어 담아 세상을 정화하는 연꽃들이 있다. 우리는 그 연꽃을 ‘청소노동자’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참 우습다. 흙탕물에 핀 연꽃은 거룩하다고 하면서, 세상을 정화하는 연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흙탕물에 핀 연꽃은 차로 우려 마시면서, 수술실에서 나온 피와 고름을 치우는 사람들은 더럽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