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부터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1969년에 국민학교 5학년, 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져간 도시락을 먹을 때 모든 학생들이 뚜껑을 열자마자 반찬을 가렸다. 시 시골에서는 그릇이 풍족하지 않았고 도시락도 요즘처럼 플라스틱이 보급되지 않아서 스테인레스 도시락이 나오기 이전까지 ‘누렁이 도시락’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엄마나 가족이 도시락을 준비해 줬지만, 더러는 초등학생이 반찬을 담아왔다. 그래서 기대감은 없었다. 오늘 반찬이 무엇인지 잘 안다. 이같은 모습은 요즘 아이들이 아파트 키 번호를 열 때 손으로 가리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CCTV에 번호가 보인다 해서 가리고 누군가가 숨어서 비밀번호를 볼까봐서 그리 한단다. 세월이 흘러 학생들의 도시락에 소시지와 햄과 계란이 등장했다. 계란물에 담가서 익힌 소시지는 최고의 반찬이고 도시락밥 한가운데를 채운 계란도 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인가 이쯤에서부터 아이들은 도시락 반찬을 가리지 않았다. 부잣집 아들딸들은 자랑이라도 하듯 오픈으로 도시락을 먹었다. 학교급식이 실시되면서 부모님들의 도시락 걱정을 덜었다. 하지만 저녁은 달랐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저녁을 급식하는 경우에 집 근
수원시의 전 농촌진흥청부지에 국립농업박물관이 건설 중이다. 건물과 접한 작은 산에는 산림자원과 철새의 산란지를 보호하기 위해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물쇠가 잠겨있어서 관계자 외에는 들어갈 수 없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 큰 공헌을 한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묘가 숲속에 외롭게 있다. 현재 우리나라 곡류 자족률은 40%도 안 되어 수입으로 대처한다. 최근 농촌진흥청과 농림 식품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양파는 80%가 일본산 종자로 이중 만생종 양파는 90%가 일본 종자라 했다. 마늘은 80%가 중국과 스페인산 종자다. 고구마는 연간 국내에서 생산되는 40t 중 95%가 일본산 종자다. 파프리카와 단호박도 네덜란드와 일본에서 종자를 들여온다. 모두 권리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장춘 박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장춘은 우범선과 일본인 사카이 사이에서 1898년 4월 9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성장하여 동경제국대 농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근무했다. 일본 여인 고하루와 결혼하여 2남 4녀를 두었다. 꾸준한 연구로 유채와 배추과 작물의 게놈(Genome)을 분석하고, 세계 최초로 자연종을 합성하여 새로운 종을 만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 행위에 있어서 순서는 특히 중요하다. 지금 정치권, 특히 여권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문제는, 코로나19의 극복, 코로나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경제 문제, 그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새 여당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보다는 다른 이슈를 꺼내 들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 제헌절에 박병석 국회의장은 “코로나 위기를 한고비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면서 개헌 문제를 꺼냈다. 또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길거리 국장, 카톡 과장을 줄이려면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 아울러, 더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이후 여당의 당권 주자와 대권 주자들은 일제히 “행정수도 완성”을 외치고 있다. 물론 국토 균형 발전은 중요하고, 과도하게 밀집된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 분산의 필요성 역시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부동산 문제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1987년 체제 역시 이제는 손 볼 부분이 분명
“안녕하세요? 김윤희 학생 맞으시죠?” 다세대주택 골목 입구 계단에 앉아 있던 30대 초반 가량으로 보이는 남자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백육십 센티미터를 겨우 넘길까 말까 한 작은 키의 남자는 흰색 와이셔츠, 노타이에 짙은 잿빛 양복 차림이었다. 남자의 어깨엔 커다란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윤희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검은 뿔테 안경……. 순간적으로 아프리카 박천수 사장이 떠올랐다. 윤희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뒤로 물러섰다. “네.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동천신문 백종원 기자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러 왔습니다. 곧바로 물어볼게요. 카페 아프리카에서 알바 일을 하셨지요?” “…예?” 이를 어째야 하나, 판단이 곧바로 서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몸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박천수 사장에게 당하신 것 맞나요?”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지고 있었다. 백종원 기자라는 사람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갑자기 커다란 코뿔소로 변했다. 그의 코에 걸린 커다란 검은 뿔테 안경이 무지막지한…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 와중에 느닷없이 떠오른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던진 이 이슈는 여권 대선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성하는 등 모종의 작전처럼 펼쳐지고 있다. ‘지역균형발전’ 유인책의 일환으로서 ‘행정수도 이전’은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수도권 인구분산이나 부동산 혼란의 해법이라는 핑계는 타당하지 않다. 집권당의 일사불란한 ‘행정수도 이전’ 합창은 일단 워낙 사나워지고 있는 민심의 물꼬를 돌리려는 국면전환용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원대한 포석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과거 ‘신행정수도 건설’ 카드로 선거에서 재미 좀 봤다는 말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솔직한 고백이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연설 다음 날인 지난 21일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전 찬성’이 53.9%로 조사됐다. ‘이전 반대’는 34.3%, ‘잘 모름’은 11.8%였다. 조사결과에서 제대로 읽어야 할 대목은 전국에서 고루 찬성 비율이 높은 가운데, 수도권에서도 찬성하는 비율(경기·인천 53.0%, 서울 4
황산성 환경부장관 때 쓰레기수거 일원화, 분리수거, 종량제 등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의 기초가 시작됐다. 그리고 1995년1월부터 종량제가 시행됐다. 풀네임은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다. 초기나 지금이나 분리배출이 공무원시험보다 어렵다고 한다. 집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아파트 마당까지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도리를 다한 듯 느끼는 국민들에게 플라스틱, 패트병, 비닐 등을 분류하고 다시 색상별로 용기에 담으라하니 어지럽다. 그래서 분리수거 날에는 오히려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논산훈련소 교관이 된다. 아빠들이 눈치를 보는 분리수거의 날이다. 종량제 효과는 크다. 시행 당시 통계로도 1일 1인당 1.33에서 1.03kg으로 300g이 줄었다. 사실 종량제 이전까지는 아파트의 편리함을 마음껏 누렸다. 아파트 15층 하나의 배출구에 종이, 신문, 박스, 비닐 등을 버린 후에 젖은 음식물 쓰레기를 투기했다. 처리 비용도 더 들고 재활용 품질은 떨어졌을 것이다. 시행 25년을 맞이한 2020년의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떤가. 매주 정해진 날에 종이박스와 플라스틱, 비닐 봉투를 들고 관리소에서 정한 저녁 5시에 맞춰 눈치 보며 나간다. 입주민도 개인 일정이 다양할 것이니 분리수거
돌팔매 한경옥 능수버들 가지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던 달 소금쟁이 뒷발질에 채여 허우적거리던 중 물수제비뜨며 날아온 돌에 맞아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1956년 충남 공주 출생, 2015년 시 전문 월간지 《유심》 등단. 한국시인협회 회원
주말에 ‘콘택트(1997)’라는 영화를 보았다. 천문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를 영화화 한 외계인과의 접촉을 다룬 영화이다. 여주인공 엘리(조디 포스터)는 외계에서 보내온 신호음을 분석하여 소수임을 알아낸다. 신호음은 파동으로 2부터 101까지의 소수를 나타내는 데, 외계에 소수를 생각할 만큼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함을 알게 된다. 칼 세이건은 과학교양서 ‘코스모스’를 통해 유명하며 다큐멘터리로 제작, 60개국 5억 명이 시청하기도 했다. “이 넓은 우주에는 약 4천억 개의 크고 작은 별들이 있는데, 그 중에 우리 만 있는 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는 엘리의 말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했다. 우주 안에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우주적 연대감을 갖는다. 이 조그마한 별, 푸르고 창백한 작은 점 위에서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넓은 우주를 올려다보고 심호흡을 한번 하며, 단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가 우리들임을 알고, 각자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면 한다. 콘택트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되었다. 언택트(untact)는 신조어로 접촉의 ‘콘택트(contac
코로나 이후 플랫폼은 넷플릭스가, 콘텐츠는 트로트가 대세다. 트로트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설움부터 한국전쟁의 고난, 산업개발 시대의 애환을 달래주며 현대사의 발전을 국민과 같이한 노래다. 처음 등장한 1930년대는 근대 도시의 세련된 노래였으나 지금은 구시대와 나이든 세대의 정서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트로트란 말도 60년대 말에 사용되었지 그 이전엔 그냥 유행가였다. 트로트 열풍의 촉매제가 된 ‘미스터트롯’의 결승무대는 33.8%의 시청률, 56.5%의 점유율을 보였다. TV를 튼 사람 중 56.5%가 지상파,종편을 비롯한 200여 개의 채널 중 미스터트롯을 시청한 것이다. 사랑의콜센터, 트롯신이 떴다, 트로트퀸, 트로트의민족 등 지상파나 종편을 가릴 것 없이 트로트 프로그램이 차고도 넘친다. 사랑의콜센터를 보면 복면가왕, 불후의명곡과는 참 다른 분위기다. 방청객은 없지만 노래방과 지역 행사장의 후꾼한 열기를 TV로 담아낸 것이 주춤한 야외활동 대신 TV에서 행사를 보는 느낌이다. 불후의명곡에선 감동하고, 사랑의콜센터에선 흥을 나눈다고 할까? 코로나로 지역행사가 없어지면서 TV로 트로트가수 활동이 유입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대중
지난 9일 인천 서구 왕길동 빌라 주민이 민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수돗물 유충 발견 신고가 서울과 경기 여러 지역, 멀게는 부산에서도 접수되는 등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인천지역을 제외한 전국적인 현상에 대해서 원인 규명이 지지부진하자 국민 불안이 가중되면서 수돗물포비아(공포증)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0일 전국 정수장 484곳에 대한 긴급 점검을 지시했지만 ‘소극 행정’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9일 인천지역에서 수돗물 유충 관련 민원이 처음 발생한 이후 20일까지 인천에서 90여 건, 전국에서 800여 건의 관련 민원 신고가 들어왔다. 실제 유충 발견 건수는 187건이다. 서울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서울에서도 지난 20~21일 이틀 동안 12건의 유충 발견 신고가 접수됐다. 아파트, 다세대 주택 등 서울 곳곳에서 같은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은 지난해 6월 ‘붉은 수돗물’ 사태로 큰 홍역을 치렀던 지역이다. 그 사실에 비춰보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또다시 벌어진 것이다. 수계를 바꾸면서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시민들의 공포를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건지 모를 일이다.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