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상업예술? 영화산업이 예술성보다 상업성에 치우쳐서 그렇지 맞는 말이다. 대규모 기업자본이 참여하면서는 영화 상영 구조가 기형적으로 더욱 변질됐다. CGV, 메가박스 등 대형 영화관들이 예술·실험·독립 영화 등 비상업영화보다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 위주로 패턴을 바꾼 것이다. 영화적 실험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블록버스터가 판치는 요인이다.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불만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영화를 접할 권리와 기회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겨난 모임이 ‘영사기(영화사랑세상읽기)’. 시조시인인 정수자(56·여) 영사기 회장을 영화 상영 장소가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났다. 영화사랑에 푹 빠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다. “수원은 인구 110만을 넘어선 전국 최대의 기초자치단체예요. 하지만 아직까지 예술영화전용관이 없어요. 우리들의 ‘영사기’는 독립영화, 예술영화, 비주얼영화 등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모임입니다.” 낮은 톤으로 취지를 설명하는 정수자 회장의 얼굴에서는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영사기는 20
중국의 쑨원(孫文)은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이라 했다.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람을 고치고,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는 말이다. 이렇듯 남다른 열정과 노력으로 환자의 몸과 마음을 모두 고치는 의사가 있다. 바로 유주석 대한민국정형외과병원 병원장이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내 관절·척추 분야 치료에 있어 최고를 달리고 있는 유 원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병원 운영 및 의학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2007년 1월 수원시 장안구에서 ‘국내 최초로 관절 특성화 치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첫 개원한 대한민국정형외과의원은 1년 만에 2천건의 수술 건수를 기록했고, 2010년 4천건 성공, 2011년 5천건 성공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지난해까지 7천건을 돌파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바로 ‘어깨’였다. “어깨 관련 전문 의사가 없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깨’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요.
올해 초 경기도청 공무원노동조합 홈페이지에 가슴 아픈, 하지만 따뜻한 사연이 하나 올라왔다. 내용인즉, 오랜 기간 병마와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동료 직원들로부터 온정의 손길이 전달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내용이다. 사연을 올린 차덕배(45) 주무관은 17세 때부터 만성 신부전을 앓아 왔다. 신부전증은 악화되지 않도록 평생 관리를 받아야 하는, 완치가 어려운 난치 질환으로 신장의 손상과 기능의 감소 정도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차 주무관은 근무하던 경기도 해양수산자원연구소도 휴직하며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병세는 점점 악화돼 현재 4단계에 접어들었다. 조만간 투석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느라 가정 형편도 여의치 못해 휴직 후 고향인 전북 임실로 내려갔고, 치료를 위해 한 달에 1~2번 정도 부천 가톨릭성모병원을 찾고 있다. 기약 없는 투병으로 심적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차 주무관에게 지난해 말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동료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성금 전달과 함께 차 주무관이 주의해야할 음식과 치료 시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한 조언도…
박모세(21).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에서 탄생한 인간승리의 아이콘이다. 네 번에 걸친 수술로 뇌의 90%를 절단해 냈지만 개막식이 열린 강원도 평창의 용평돔을 가득 메운 4천여명이 환호할 정도로 애국가를 100% 소화해 냈다. 지적장애 3급, 지체장애 3급, 시각장애 4급, 중복장애 1급 등 모든 장애를 갖고 태어난 그가 모든 장애를 이겨내고 전 세계인 앞에서 노래를 완벽하게 부른 것이다. 기자는 장애인의 희망으로 떠오른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박군과 그의 어머니 조영애(49)씨를 만났다.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 번의 죽을 고비.. ‘모세의 기적’ 수원시 영통구 하동 광교신도시에서 부모님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는 그는,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는 기자를 “오셨네요” 하며 반갑게 맞이한다.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됐다. 20여년 전이다. 임신 4개월이 되었을 무렵, 박군의 어머니 조씨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곳에서 조씨는 ‘살 수 없는 아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후두부 뼈가 없어 태아의 뇌가 흘러나와 가망
“소통과 공감을 통한 생기 있는 공단을 만드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지난 2월1일 창립 8주년을 맞은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이광수 이사장의 의지가 드러나는 말이다. 그동안 고객중심 경영을 표방하고 내적인 체계 구축과 서비스 만족을 위해 노력해 온 가평군시설공단은 군 단위의 열악한 환경과 규모에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내실 있는 중견 공기업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안정적 운영시스템으로 이용하는 고객뿐만 아니라 지역민과 함께 동고동락해 이제는 우리 공단이 군민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체계적·안정적 시스템 구출 2010년 제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광수 이사장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시스템의 정착’이다. 이를 위해 그는 취임 직후 조직을 개편하는 한편, 직원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기 위한 제안제도를 활성화하고, 내부 결속과 나눔경영을 위한 봉사단 발족, HRD·로하스·일하기좋은 기관·웹 접근성 우수기관 등의 인증사업을 통해 대외적 확보와 공단 운영의 실질적 체계 구축에 많은
1963년 창설된 후 올해로 창설 50주년을 맞는 선거관리위원회. 우리나라의 정치가 발전할수록 투명한 선거문화 정착을 위한 선관위 역할도 날로 커지게 마련이다. 이런 시점에 선관위 역사와 함께해 온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이재태 사무처장에게 이번 대선에서의 개표부정 의혹제기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사무처장은 “선관위가 그동안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질적·양적인 면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괄목할 만한 발전에 기여해 왔다고 자부한다”면서도 “하지만 우리의 노력이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은 불신과 오해를 낳는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도선관위 홍보방향도 국민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은 물론, 나아가 국민을 감동시키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 선관위 역사와 함께 했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으로 선거운동이 자유화되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이 두드러졌던 1987년, 선거운동 자유화에 따른 불법·탈법사례 급증으로 선관위는 감시·단속을 전개하기 시작, 인력 증원이 절실했고 당시 관세공무원
신용보증기금 인천영업본부가 2013년 인천지역 신용보증 1조원시대를 맞이하고 1조263억원 규모의 기업 신규보증지원에 나서 연초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이에 1990년 2월 신설돼 현재 인천광역시와 부천, 시흥 등 경기 서부권지역 중소기업의 자금지원을 총괄하고 있는 신용보증기금 인천영업본부의 정재식 본부장(54)을 만났다. “지역기업들과 함께 성장하는 신용보증기금 인천영업본부를 만들겠습니다. 알짜기업 육성, 맡겨만 주세요.” 지난해 7월 신보 인천영업본부장으로 취임과 함께 인천지역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밝힌 정재식 본부장의 당찬 포부다. 장기화된 인천지역의 경제침체로 인해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들을 위해 맞춤형 보증지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해 나가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는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장’에서 다져진 감성리더십 정 본부장은 1986년 공채로 입사한 이후 남대문지점, 영등포지점 등 여러 영업조직을 거치며 10여 년간 중소기업 현장을 누볐다. 이후 오랜 현장의 실무경험과 탁월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비서팀장을 거쳐 비서실장, 홍보실장, 청주지점장, 보증심사부장,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올 한 해 더욱 노력해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오는 외국인에게 친절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박찬호(58) 소장은 외국인에 대한 친절을 강조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러야 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지만 우리에게는 낯설다. 우리에게도 낯선데 외국인들에게는 얼마나 낯설겠는가. 그래서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는 방문 외국인에게 친절과 긍정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박 소장은 수원과의 인연이 유독 깊다. 소장으로 근무한 것만 벌써 두 번째다. 2006년 3월부터 1년 3개월간 사무소장을 역임한 뒤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 그는 “구운동 임대청사 근무 당시 청사가 비좁아 민원인과 직원 모두 고생이 많았다”고 감회부터 떠올린다. 경기남부권 12개 시·군, 체류외국인 14만여명을 관할하는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는 늘어나는 외국인과 업무의 급증으로 2009월 11월 30일 수원 영통에 현재의 신청사를 건립해 이전, 업무를 수행중이다. 매년 3월이면 대학 개강과 맞물려 유학생들도 많이 찾
‘축구도시’ 부천이 한국 프로축구 무대에 다시 돌아왔다. 지난 2월16일 오후 시청 어울마당(대강당). 부천의 시민 프로구단인 부천FC가 올해 K리그의 활약을 선언하는 성대한 출정식을 열었다. 2007년 12월 같은 장소에서 부천시민이 주인인 시민구단으로 첫 출발을 선언한 후 5년여만의 역사적인 장면이다. 연고이전 빈자리, 서포터즈가 직접 채웠다 부천FC의 시작은 부천에서 프로축구가 떠나는 사건부터 시작됐다. 부천시를 연고로 했던 K리그 구단 ‘부천SK’가 2005년 연고를 제주도로 이전을 결행하게 된다. 우리나라 축구응원 문화를 선도했던 부천SK 서포터즈 ‘헤르메스’는 응원할 팀을 하루아침에 잃고 좌절감에 빠졌지만 헤르메스 운영진들은 곧 주도적으로 팀 창단에 나섰다. 오로지 부천시민이 주인 된 팀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의기투합해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에 의해 만들어진 축구단 ‘부천FC 1995’를 탄생시켰다. 피땀으로 '부천FC 1995' K리그 진출 2007년 12월 창단 후 부천FC 1995의 지난 시간은 험난함 그 자체였다. 프로선수의 급료
‘Another Challenge.’ 경기도문화의전당의 올해 캐치프레이즈다. 지난해 9월 연임한 손혜리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이 다채로운 페스티벌과 문화나눔 복지사업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꿈에 도전하고 나섰다. 지난해에는 경기도민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함께 나누고(÷), 화합하고(+), 공감하며(×), 삶을 치유하는(-) 차별화 된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특히, 지난해 ‘천지진동’, 또 하나의 애국가 ‘아리랑 아라리요’ 페스티벌을 성공시키며 명실 공히 경기도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임을 입증했다. 이렇듯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손혜리 사장도 연임을 앞두고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는 “전당을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한 만큼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 없이 소신껏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그를 만나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사업계획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는 천지진동 같은 스타일은 하지 않고, 우리 아리랑을 전 세계에 알릴 예정입니다. 그래서 재즈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