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의 ‘창가에 서 있는 소녀’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완성했을 때 그는 스물한 살이었다. 이 작품은 한때 젊은 여성들이 애독하던 한 유명 심리학 서적의 표지에 실린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창밖을 바라보며 서있는 뒷모습의 소녀는 그의 여동생 안나 마리아이다. 작품 전체에 감도는 차분한 색조와 단단한 느낌의 선들은 그녀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그녀가 팔을 기대고 있는 창턱은 드넓은 바다와 잇닿아 있고, 그녀가 입고 있는 굵은 하늘색 줄무늬 원피스는 그녀의 우아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는 동그랗게 말려 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뒷모습의 소녀가 바라보고 있다. 이즈음 살바도르는 아름다운 누이동생의 모습을 작품으로 몇 점 남겼다. 모두 서정적이면서도 단단한 형태를 지닌 그림이었고 주변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마드리드의 왕립 미술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달리는 학교 수업으로부터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학교와 숙소를 열심히 오가며 그림 공부와 작업에 파묻혀 지냈다. 특히 파리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던 같은 스페인 출신…
덫 /전형철 오늘 묵혀 둔 병이 당당히 생의 한 켠을 결딴낸다 비문을 파다 돌쩌귀가 떨어져 내리고 발바닥에 핏줄이 서고 딱 그만큼 내가 선 자리가 서서히 중심으로 깊어지는 딱 그만큼만 풀을 보며 생장점의 위치를 짚듯 천칭 저울의 정지를 점 찍어 두듯 명징한 공리(公理)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걸어온 발자국 불개미처럼 당신의 입가를 맴돌다 붉은 물집으로 남았거나 지렁이처럼 축축한 바짓단을 끌며 비 내린 골목을 걸었거나 문장과 마음 사이를 사포질하던 모래 폭풍이 썩은 이빨이었거나 - 전형철 시집 ‘고요가 아니다’ 공리(公理)의 사전적 풀이는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진리나 도리이다. 우리가 걷는 발자국에는 흔적이 남는다. 내가 살아온 모습과 태도와 모든 생각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그에 따른 여파로 또 다른 길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딱 그만큼 내가 선 자리가, 서서히 중심으로 깊어지는 딱 그만큼만, 그렇게, 그리고 풀을 보며 생장점의 위치를 짚듯, 천칭 저울의 정지를 점찍어 두듯이,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묵혀 두는 병이 생의 한 켠을 결딴내는 일이며 비문을 파다 돌쩌귀가 떨어져 내리고 발바닥에 핏줄이 서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
“정신과 행동의 불편을 겪는 분이나 좌절과 상심으로 행려나 노숙으로 고초를 겪는 분들 보다 더 불행한 이는 영적 장애인이다. 존재 자체가 거룩함이요 살아있는 것 자체가 축복” 이라고 ‘무지개 선물’과 ‘동행’의 저자이자 작은예수 수녀회 원장인 윤석인 수녀가 자신의 저서에 남긴 글이다. 그는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첫 장애인 수녀였다. 너의 기쁨도 나의 기쁨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삶의 기쁨을 함께 어우르며 살아가는 맑고 맑은 삶, 너의 아픔도 나의 아픔도 모든 괴로움을 서로 나누는 동행의 삶이 곧 영적인 삶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공동체가 바로 가정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공유체가 아닐 뿐만 아니라 능력으로도 소유할 수 없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돌출되는 불의의 사고, 예기치 못한 인연과 슬픔 등 모든 것을 함께 보듬어 품어 안고 가야 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고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앉은 적 없는 의자처럼 그지없이 외로운 것이 인생이라지만, 자기 자신과 만나고 낳아 키워 주신 부모와 또 한집안에서 태어난 형제자매가 공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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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수술실 CCTV’를 민간의료기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도내에서는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에서 ‘수술실 CCTV’가 운영되고 있다. 도는 오는 2020년부터 ‘민간의료기관 수술실 CCTV지원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한다. 먼저 공모를 통해 민간의료기관 10~12곳을 선정, 1개 병원당 3천 만 원의 설치비를 지원한 뒤 효과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확대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 관계자의 말처럼 수술실 CCTV는 도민들이 열렬히 지지하는 사업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도정 여론조사 결과 경기도민 93%가 ‘수술실 CCTV 설치 운영이 의료사고 분쟁 해소에 도움이 될 것’, 91%가 ‘도립병원 수술실 설치 운영에 찬성 한다’고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2월 안성병원의 총 834건 수술 중 523명(63%)의 환자가 촬영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전국 최초로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 수술실 CCTV를 설치했으며 올해 5월 수원, 의정부, 파주, 이천, 포천 등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병원에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난 전국 1천818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수술실에 CCTV를
어느 때 우리가 살아가면서 ‘영감의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창작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는 그런 순간을 ‘接神의 순간’이라고도 한다. 무속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接神이란 몸에 신령이 지피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소설 속에서 주인공과 작가가 동심 일체가 되는 순간이겠는데, 소설가들은 그냥 ‘접신의 순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소설가가 조선 시대에 살던 기생에 대해 소설을 쓴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순간에 그냥 주인공과 작가가 ‘붙는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글 쓰는 손가락에서 그 기생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막 아양 떠는 소리가 나오고, 작업실에서 글을 쓸 땐 진짜 소리까지 내면서 쓴다고 한다. 그럴 땐 작가의 뇌가 여자로 세뇌된 것이다.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쓸 땐 진짜 그렇게 나온다고 한다. 우스개로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접신이 됐다가도 잘못하면 떨어지는 수가 있다고 한다. “황진이를 쓰면서 굉장히 낭패였던 적이 있습니다. 한 1년쯤 고생해서 딱 붙었어요. 이제 손가락에서 여자 목소리로 막 나오게 됐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갔어요
수원지역 민주화운동 역사가 기록으로 남는다. 1980~2000년대 초반까지 운동사가 ‘온/오프’ 형태로 묶여진다. 과거는 흘러가는 범주지만 역사는 기록으로 남을때 그 의미가 찾아지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를 만드는 일에 ‘수원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편찬위원회’가 자처하고 나섰다. 수원 2049 시민연구소 유문종 소장을 비롯해 이종근, 구본주, 이상명, 오양섭, 강석우, 김영균, 홍현정 등이 일을 나눴다. 수원지역 종교·청년·대학·통일·여성 운동사를 총망라한다. 빠르면 2023년 말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편찬대장정의 뿌리는 박우석 전 민주주의 민족통일 경기 남부의장이 소장하고 있던 큰 종이 상자 10여 박스 분량의 방대한 자료다. 자료집과 전단지 등 20년 세월 동안의 지역 운동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를 바탕으로 파일 분류부터 D/B 작업, 박물관 소장까지 긴 여정을 떠난다. 지역 단체와 활동가 등과 협력하는 것은 물론이다. 올해 말까지 1차로 수원 EYC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와 불교청년운동에 대한 자료를 정리할 예정이다. 당시 지역 운동의 구심점이
경기도의회는 지난 달 6일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개정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입법예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종교계를 중심으로 경기도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핵심이유는 ‘사용자(민간인)는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의무부과 조항을 신설한 데 있다. 필자가 판단하건대, 이 조항은 자치법규 기본원칙에 어긋나며, 실효성도 극히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조례의 기본원칙에 대해 살펴보자. 지방자치법 제22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조례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상위법률인 ‘양성평등기본법’에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하여 조례로 시민에게 의무부과를 할 수 있도록 위임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자치법의 취지나 조례의 효력을 다투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비추어 볼 때 조례개정은 무효로밖에 볼 수 없다. 기본원칙상의 또 다른 결함은 공적 법체제 밖의 규범과 사회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기도의회가 법률이나 다른 대부분의 자치단체 조례와는 달리 굳이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다양한 성소수자의 권리를
‘밥도둑’. 간장게장의 별칭이다. 진한 간장에 은은하게 삭힌 게살의 쫀득하고 탱탱하면서도 짭쪼름한 감칠맛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쪽쪽 소리를 내며 연신 빨아먹고 집게다리 속살까지 발라먹은 뒤 게딱지 내장에 윤기 나는 밥 한 술 비벼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앉은 자리에서 밥 두 그릇 정도는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운다. 오래 전부터 간장게장은 귀하게 대접받은 진미였다. 조선시대 문인 서거정은 간장게장의 맛을 이렇게 노래 하기도 했다. ‘눈 내린 강 언덕에 얼음 아직 남았는데/ 이 무렵 게장 가격은 더욱 비싸구나/ 손으로 게 발라 들고 술잔을 드니/ 풍미가 필탁의 집게를 이기는구나’라고. 중국에선 기원전 7세기부터 게장을 천제(天祭) 에 썼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가하면 중국의 옛 문헌에도 게장 음식이 많이 나오는데, 서거정 시에 나오는 진나라의 필탁(畢卓)은 술안주로 게발을 항상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시인 이태백도 ‘월하독작사수시(月下獨酌四首詩)’에서 “한 손에는 게발을 들고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주지(酒池) 속을 헤엄치고 있으면 일생 살아가는 데 무엇을 더 바라리요” 하고 읊었다. 조선시대에는 민물게로 담근 참게장을 주로 먹었다. 임
돈은 그의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겨우 주린 배를 채우며 고등학교를 나오자 곧장 돈 버는 일에 달려들었다. 다달이 받는 월급은 그가 원하는 만치 돈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는 그 일을 집어치우고 아예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바닥에 와야 돈도 제대로 벌 것 같았다. 그는 포목점의 점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비단 장수가 돈 버는 요령을 익혔다. 그는 아니 입고 아니 먹으며 오직 돈만 모았다. 그 돈으로 작은 포목점을 차렸다. 당시만 해도 포목점이 귀한 시대라 조금씩 단골들이 몰려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돈이 모이니 살판이 났다. 그래서 아예 점포에 젊은 여자 하나를 심부름꾼으로 들여놓았다. 월급 몇 푼을 주고도 그는 그 여자를 입안의 혀처럼 부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돈의 위력이 그만큼 세다는 걸 나날이 실감한 그는 오직 돈 버는 일에만 눈이 멀었다. 통장에 돈이 좀 모였다. 집도 반듯한 것으로 샀다. 이제 세를 줄 반듯한 상가 하나를 사는 게 그의 꿈이었다.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날이 단골들이 늘어나고 그의 가게도 세를 더해갔다. 그러나 그게 한계였다. 그에게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