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산에 올랐다가 느긋하게 내려온다. 그새 바람이 바뀌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꽃샘바람이다. 그야말로 봄바람이다. 바람치고는 이놈의 봄바람이 조금 묘하다. 따지고 보면 봄과 바람은 엄연히 다른 의미의 명사다. 그러나 이걸 붙여서 하나의 합성어를 만들어 놓으면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사실 우리말에 바람이 들어가면 왠지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느껴진다. 돈바람이 그렇고 치맛바람이 또한 그렇다. 봄바람에 처녀·총각이 바람을 피우는 건 괜찮지만 늙은이가 늦바람을 피우면 패가망신을 하기 마련이다. 그중에 듣기 좋은 바람이 바로 봄바람이다. 기나긴 겨울이 가고 산천초목이 눈을 뜨는 계절이니 오죽 반갑지 않으랴. 내 나이 이순(耳順)을 넘었건만 아직도 봄바람이 불면 가슴이 설렌다. 봄이 주는 이미지는 낭만과 쓸쓸함이 함께 한다. 봄은 그만큼 여린 감정의 선을 잔잔하게 흔든다. 우리 조상들은 봄을 일 년이 시작되는 계절로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한 해를 말할 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한다. 한겨울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대문짝에 써 붙이진 않는다. 반드시 봄에 써 붙인다. 아마 한 해의 시작이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 같다. 우수 경칩이 지나면 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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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요즘과 같은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저장해 놓은 식량이 다 떨어지고 대체식량인 보리는 아직 수확하기 이른 때라 먹을 것이 없어서였다. 당시 서민들은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예부터 이 시기를 1년 중 빈곤함이 가장 극에 달했다고 해 ‘보릿고개‘라 불렀다. 그리고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라고 했다. 춘궁기를 지내기가 오죽 힘들었으면 이런 말까지 생겨났을까 생각하면 짠하다.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는 노래가 인기다. “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가슴 시린 보릿고개길/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초근목피의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중략)”가수 진성이 부른 ‘보릿고개’ 라는 노래다. 코로나19로 먹고 사는 문제가 반세기전 보릿고개를 넘던 어려움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서민들이 많이 부르고 있다. 사실 작금의 우리네 경제 상황은 과거 춘궁기 보릿고개 그 이상이다. 당장 중소 자영업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봐도 ‘적막강산(寂寞江山)’이 따로 없다. 평균 매출과 순이익이 40% 이상 줄었다. 소상공인들 중 63.4%는 현 상황이 지속될
봄이 맨발로 호수를 건너다 /동시영 오늘을 데리고 호수에 간다 햇살 타고 날아오는 천상의 소식 풀 위에 나무 위에 무지개처럼 뜨는 꽃들 봄이 맨발로 호수를 건넌다 바람이 몰고 온 미소에 호수가 활짝 웃고 있다 ■ 동시영 1952년 충북괴산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독일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인문학부 수학, 한국관광대학교, 중국 길림재경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계간 『다층』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동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신이 걸어주는 전화』 외 여섯 권, 저서 『현대 시의 기호학』 외 다섯 권을 출간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도, 화재예방도 결국엔 기본 안전수칙 준수가 답이다! ‘코로나19’사태로 온 국민이 불안감을 멈추지 못하는 시기에 갑자기 내린 대설은 또 큰 교통사고로 이어져 전북 남원의 연쇄 추돌사고 등 소중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다. 뉴스를 보는 모든 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똑같겠지만 직업정신상 그 현장에서 사고를 수습하는 소방관의 마음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같은 때, 더욱이 소방관의 마음속에는 ‘제발 화재로 인한 대형인명피해만큼은 없어야 할 텐데’라는 염원이 생긴다. 그런데 그 대형인명피해라는 것이 참으로 사소한 것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코로나사태에서 또 한 번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기상청은 늘 일기예보 때마다 눈길 감속운전 및 블랙아이스(도로결빙)를 조심 하라고 강조해 왔고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자가격리수칙 준수 및 마스크착용 등의 기본 예방 수칙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본을 중요시 여기지 않아 결국 차량 30여 대가 연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자각격리 상태에서 기본 수칙을 어기는 행동은 결국 제3자의 감염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 소방 역시…
어머니란 자식을 출산하고 기르는 자로, 육아를 하고 입양을 하였거나 보육원을 책임지는 여성일 경우에도 어머니로 불려진다. 그리고 우리사회에서는 배우자의 부모님도 자신의 부모님이 된다. ‘어머니’, ‘엄마’는 눈물을 동반하는 단어이다. 어려서 다치거나 아플 때 ‘엄마!’하면서 우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힘들 때면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장탄식하거나 울기도 한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어머니’라는 세 글자만 봐도 눈물이 나며, 어머니 사진을 보거나 어머니와 처음 전화 통화를 하게 되면 대개는 눈물을 흘린다. 또한 5~60대 나이가 들어갈 무렵 어머니가 작고하시고 안 계시면 어머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멍멍해져오고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미국의 사회개혁가였던 헨리 워드 비처는 ‘우리가 부모가 됐을 때 비로소 부모, 특히 어머니 사랑의 고마움이 어떤 것 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기성세대들의 어머니들은 어떠하셨는가? 한여름 뙤약볕을 머리에 인 채 호미 쥐고 온종일 밭을 매셨고, 그 고된 일 끝에 찬 밥 한 덩어리로 부뚜막에 걸터앉아 끼니를 때우셨으며, 한겨울 꽁꽁 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하셨고, 보이그룹 g
코로나19 상황을 이용한 사기 행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 판매 사기에 이어 코로나19 재난 기금을 가로채기 위한 스미싱과 보이스피싱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인터넷상에 허위로 마스크 판매 글을 올리고 돈만 받아 챙긴 혐의(사기) 등으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공판부가 구속·기소시킨 30대의 경우 올해 2월 26일부터 3월 4일까지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글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리고 9천260여 만 원을 가로챘다고 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관리중인 코로나19 관련 사건은 22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총 519건이었다. 이 가운데 마스크 관련 사기 사건이 241건(기소 8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11일 코로나19와 관련해 마스크, 손 소독제 구매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며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이어 재난기본소득을 노린 범죄도 시작됐다. 경기도의회가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조례안’을 의결, 재난이 발생할 경우 도민을 대상으로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근거 조례안을 전국 최초로 마련하고 지난 9일부터 신청·지급을 시작했다. 중앙정부의 재난기본소득 지급문제는 야당의 견제로 아직 확
유년 시절 어느해 가을이었던가 시골 면소재지에 임시로 가설된 천막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에서 소림사의 무술승들이 화려한 권법으로 악당을 통쾌하게 쳐부수는 장면을 보며 환호했던 추억이 있다. 그때 본 소림권법은 너무도 멋지고 근사하여 중학교를 마친 겨울에 부모님 몰래 몇달 정도 쿵후 도장을 다닌 기억이 있다. 당랑권법은 청대 초기, 산동성 묵현(墨縣)의 반청복명(反淸復明)지사인 왕랑(王朗)에 의해 창시됐다고 하는데, 한때 한국에도 머문적 있고 이후 대만에서 무술을 전수했던 장상삼 노사(張詳三 老師)의 말을 인용해보면, “왕랑은 소림사에서 권법을 배웠으며 절을 떠나 수행 중 단통이라는 권법가와 겨루었다. 왕랑은 3일에 걸쳐 그와 싸워보았으나 이길 수가 없었다. 시합 후, 나무 아래에서 왕랑이 쉬고 있는데 매미 소리가 요란해 그쪽을 보니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 해(당랑포선, 螳螂捕蟬) 나뭇가지를 주워 사마귀를 찔러 방해하자 매미는 도망가 버렸고, 사마귀는 나뭇가지를 향해 공격 태세를 취했다. 흠칫 놀란 왕랑은 나뭇가지로 이리저리 찌르고 사마귀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양앞발을 자세히 보니, 때로는 오른쪽이 앞, 왼쪽이 뒤, 때로는 왼쪽이 앞, 오른쪽이 뒤였다. 한동안 지
대구 달성 도동서원으로의 여행을 이어가보자. 보물 담장과 환주문을 지나면 도동서원의 강당 중정당이다. 중정당으로 들어서면 중정당 마당 한가운데 박석이 깔린 좁은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길 끝자락에서 거북이를 만난다. 거북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길을 향해 앞만 바라본다. 이 길은 유생들이 함부로 지나다니는 못했을 길이다. 어쩌면 거북이는 이를 지키느라 두 눈을 부릅뜨고 엄숙하게 지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정당의 기단은 아주 독특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보통 건물의 기단은 사각형의 장대석들을 쌓아 올린 모습으로 네모반듯한 모습을 띤다. 하지만 중정당의 기단은 모양과 색깔이 모두 제각각이다. 흡사 테트리스 게임을 한 듯한 느낌이다. 어떻게 기단의 돌들이 모두 각양각색일까? 이유는 유생들에게 있다. 도동서원에 기거할 유생들이 각자 고향에서 돌을 가져와서 서원을 건축하는데 뜻을 보탠 것이다. 즉 중정당은 유생들의 마음을 디딤돌 삼아 세워진 강학공간인 셈이다. 중정당의 기단에는 눈에 띄는 장식들이 있다. 첫째는 다람쥐모양의 세호이다. 세호는 조선의 왕릉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문양이다. 왕릉의 세호와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중정당의 세호
인간은 자신을 합리화하는 존재다. 미국 사회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이 같은 심리를 일찍이 ‘인지부조화’라 규정했다. 그는 ‘합리화에는 여러 가지 덫이 있다’고도 했다. 스스로 현실을 왜곡하고 자기 중심적 사고의 결과물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것도 그중 하나며 기억의 왜곡도 포함된다고 했다. 한 예로 잘못된 물품을 구매한 경우 어떻게든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하는데 인지부조화의 일종이라고 한다. 자기 합리화 현상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사회학자들은 지적한다. 특히 성(性)과 관련한 사건 사고 발생시, 가해자로 지목됐을 경우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약자 일 수밖에 없는 여성에게 남성우월주의의 굴레를 씌워 정당성을 강조하거나, 심지어 ‘원인제공’이란 ‘아전인수’격 주장도 서슴지 않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물론 반대의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 만연된 남성들의 이러한 성관련 인지부조화로 인해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당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음지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억울함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미투’ 운동 덕분이다. 아울러 이 운동은 우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