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고집스러움이 엿보이는, 나이 지긋한 한 남자가 쓸데없이 큰 책상 앞에 앉아 있고 그 앞으로는 여러 동물들이 나란히 정렬해 있다. 맨 왼쪽엔 언제든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새 한 마리가 단정히 앉아 있다. 그다음은 원숭이, 나무타기 명수인 그의 공인실력을 넘볼 동물은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펭귄은 쓸모도 없을 것 같은 날개를 달고 잘 걷지도 못하는 둔재 같지만 물속에서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극한기후를 두려워하지 않는 늠름한 녀석이다. 코끼리의 재능은 어떤 것일까? 어느 유아에게 물어봐도 이 설명보다 훨씬 더 좋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는 여기에서도 수조 안에 들어 있지만 아무도 왜 밖으로 나오지 않느냐고 항의하지 않는다(그들 중에 사람도 있었다면 수조에서 나와야 공정하다고 주장했겠지?). 거구를 웅크린 바다표범은 매우 둔한 것 같지만 물에만 들어가면 무서운 힘으로 헤엄칠 수 있다. 맨 끝에는 우리의 반려동물 개 한 마리가 서 있다. ‘엉뚱한 일을 시키진 않겠지?’ 생각하며 인간을 신뢰하고 안심하는 표정이다. 동물들 뒤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남자는 여러 동물들을 일부러 그 나무 앞으로 불렀다.
두통 /이서린 이미 저녁, 섬의 한 끝에 닿았지요 짙은 화장의 중년 여자가 시중드는 선창가 횟집, 바다 빛의 술잔에선 비릿한 향이 나고 바람에 덜컹이는 손때 묻은 창 너머 침울한 얼굴의 어부가 지나가더군요 목까지 차 오른 취기, 흩어지는 담배연기 사이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횟집을 나서자 해무처럼 몰려오는 어둠에 우리는 잠시 휘청거렸을 거예요 만조를 이룬 검은 바다, 등대가 있는지 멀리 불빛 깜박이고 돌아온 어선들이 일렬로 정박한 선착장은 곧게 뻗은 돛대들로 장엄하였구요 그 돛대 끝에 매달린 달이 바다에 투신하고 쿨럭이며 뒤척이는 내나로도의 밤을 낡은 생애들이 지나고 있거든요- 시집, ‘저녁의 내부’ 중에서 만조를 이룬 검은 바다를 지나 섬의 한 끝에서, 목까지 취기 오른 눈으로 달을 따라간다. 흔들리는 건 내가 아니라 달빛이고 휘청거리는 건 내 가슴이 아니라 그의 눈빛이다. 오늘 따라 짙은 화장의 선창가 횟집 아낙과 술잔과 손때 묻은 창은 왜 바람이 자신을 흔드는지 모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휘청거려지는 이 마음이 끝 간 데 모르고 날뛴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점점 낡아가는 생애가 계속해서 지나가고 일렬로 정박한 선착장의 곧게 뻗은 돛
겉은 멀쩡한데 극악한 죄를 저질러 놓고도 죄책감이 없는 사람을 ‘고장난 마음’의 소유자, 즉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 1920년대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한 독일 심리학자 슈나이더는 광신, 자기현시, 의지력 결여, 폭력적 성격 등 10가지를 특징으로 꼽았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냉담하다. 또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하는 유일한 범죄자 들이며 인구의 4%가 이런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도 한림대와 경기대 연구진이 전과 있는 강력범 450명을 조사해보니 25%가 사이코패스로 나왔다. 사이코패스의 재범률은 80%에 이르지만 이들을 격리할 대책은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누가 사이코패스인지 도무지 눈치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장 차림의 뱀’이란 별칭도 붙어있다. 1970년대 미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도 ‘귀공자’로 불릴 만큼 잘생긴 데다 달변이어서 피해자가 많았다. 100여명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번디는 35명 살해만 인정했다. 팔에 붕대를 감은 채 여성에게 책을 옮겨달라고 부탁한 뒤 둔기로 머리를 때려 납치하는 등 교활한 수법을 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이코패스는 정신병으로
제13대 대통령선거운동이 한창이던 1987년 11월 29일 김대중 후보는 영하 10도의 여의도 광장에서 연설을 했다. 130만 명의 시민이 여의도 광장과 인근 고수부지를 가득 메웠다. 이에 질세라 12월 2일 노태우 후보, 12월 5일 김영삼 후보도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외신들은 대중 집회에 동원된 사람 수가 당락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장면은 지난 주말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도 연출됐다. ‘검찰개혁’을 내걸고 집회를 주최한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는 20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반대편에서는 2천여 명이 모여 ‘조국퇴진’을 외쳤다. 한국당은 5만여 명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함께 150만 명이 모이는 개천절 ‘조국사퇴’ 집회를 예고했다. SNS에서 ‘좋아요’가 몇 건인지가 정당성과 돈벌이를 담보해주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졌다. 집회참가자 수가 정당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논리적 정당성을 따지지 않고 그저 주장자가 어느 편인지, 동조자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가…
내 나이 어언 백 스물둘이다. 오늘 일흔두 살인 내 손자가 죽었다. 그가 누구인가. 천금 같은 내 손자. 그가 내 무릎 위에서 재롱을 떨고, 내 등에 업혀서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이제 그는 하늘나라로 갔다. 슬프다. 슬픔이 앞을 가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모진 놈. 무정한 내 손자 놈. 이 할미를 홀로 두고 하늘나라로 간 내 손자가 너무너무 그립다. 내 품에 안겨 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머리에 백발이 와서 앉았다.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온전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몹쓸 당뇨병까지 덮쳤다. 내 손자는 늘 이 할미 앞에서 병든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약 먹으면 낫는다”고 했지만, 비싼 약값을 치를 돈이 없었다. 돈 없는 신세라니. 나도 그를 도울 만큼 부유하지가 않다. 그 위에 나는 그가 죽을 만큼 가난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현대의학이 어떠한가? 당뇨병 정도는 병도 아니다. 의사의 처방대로 약 먹고 주사 맞으면 백 스무 살까지 능히 살 수 있다. 그러나 내 손자는 현대의술을 거부했다. 그렇게 해서까지 연명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남들은 걸핏하면 장기를 바꾼다. 심장도 갈아 끼우고 위장도 인공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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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정부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분권과 자치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이 법안은 인구 100만 대도시의 ‘특례시’ 지위 및 추가특례확대를 비롯해 주민참여 권리 강화, 주민투표 등 주민참여제도의 실질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 확대, 중앙-지방협력관계 정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중요한 이유는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자치분권 추진을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는 지방자치 기본법이기 때문이다. ‘주민이 진정한 지역의 주인이 되는’ 자치분권을 활착(活着)시킬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역의 균형발전을 이루게 되고 국가의 번영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조속히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 국정철학과 지방분권 강화라는 시대적 흐름과도 일치한다. 전부개정안은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에서 발표됐다. 이후 국무회의를 거쳐 올해 3월 말 국회에 제출됐고 지난 6월 26일 행안위원회 상정되어 심사를 위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이첩돼 있다.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방의회 등에서는 조속한 법통과를 촉구하고 있지만 6개월째 계류 중이다. 전부개정안 국회 통과를 더욱 간절히 바라는 지자체는 경기도내의 수
경기도가 내년 2월까지 특별방역기간을 연장한다고 한다. 걱정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에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는 명분에는 동감하지만 이를위해 투입된 공직자들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살처분으로 명명되는, 동물학살에 동참한 이들의 후유증이 걱정돼 더욱 그렇다. 사람의 목숨이나 동물의 생명이나, 살아있는 것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비정함은 같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생명을 앗은 후에 ‘여시축생발보리심(如是畜生發菩提心)’을 발원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쟁 후 증후군으로 자살을 하는 많은 참전용사들의 고통도 다르지 않다. ASF와 AI, 구제역을 막기위한 최전선에 서 있는 공직자들의 헌신에 존경과 고마움을 보낸다. 특히 ‘눈가리고 아웅’식이 아닌 진심을 담은 방역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같은 열정은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의 예고없는 현장 방문에서도 증명됐다. 도는 이 기간동안 ‘심각 단계’에 준하는 최고 수준의 차단방역에 나서기로 했다. AI 차단 방역을 위해 10억 원을 투입하고 14억 원을 들여 5만 마리 이상 사육 산란계 농가 앞 통제초소를 운영한다. 철새 도래지와 반복적으로 AI가 발생하는 15개 시·군 102개 읍·면·동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끊임 없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고령 운전자의 수도 함께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안타까운 사고들이 계속되고 있다. 고령 운전자들의 사고 발생률이 높은 건 신체적 노화와 관련이 깊다. 만 65세 이상의 운전자는 노화에 의해 표준시력 평균치가 점점 저하될 수밖에 없으며, 운전 중 중요한 정보를 먼저 받아들이는 선택적 주의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고령 운전자는 운전 미숙보다는 노화에서 오는 인지능력 저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고령 운전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교통대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면허증을 반납하도록 유인하는 정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면허를 자진 반납할 경우 교통비를 지원하거나 상업시설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인센티브를 지원해주는 거다. 구리시에서도 10만 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지원해주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스스로 운전대를 잡지 않게 유도를 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우리 경찰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에서 교
지난 6월 서울 은명초등학교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대응1단계까지 발령된 대형화재로 번졌으나, 학생과 교사 전원 신속한 대피로 단 한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지난 3월 종로 한 상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건물 내 고시원 거주자 등 36명의 신속한 대피 우선으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화재 발생과 동시에 신속한 대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화재 발생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행동은 신고도, 초기진화도 아닌 신속히 대피해 큰 인명피해를 방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의 인식 속에는 대피보다 신고나 초기진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화재 시 행동요령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1위는 119신고, 2위는 소화기로 불끄기 등으로 선정됐다. 이에 ‘불나면 대피먼저’에 대한 각별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119신고나 소화기 등을 이용한 초기진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안전한 곳으로 대피 후 119신고, 초기 소화활동으로 이어지는 행동요령이 인명피해를 줄이는 중요한 대처방법이다. 이를 위해 평상시 대피우선 계획 및 훈련 등을 반복해야 한다. 영국, 미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