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스무 살이 된 풋풋하고 싱그러운 새내기 대학생이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선거들을 생각해보면, 저절로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내게 ‘선거’라고 하면 먼저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반장, 부반장, 회장, 부회장 선거들이 떠오른다. 눈을 감고 거수로 했던 선거, 쪽지에 이름을 적어서 했던 선거 등 다양한 투표방식들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선거는 열혈엄마들의 인기투표였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선거운동도 하게 됐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군것질도 해가며 친구들에게 동정의 표를 얻고자 했던 기억도 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 반을 위해 선생님을 도와 물심양면으로 두 발로 열심히 뛰겠노라 친구들에게 외쳤다. 맨발로 스프레이 인조 눈을 설정으로 흩날리고, 물뿌리개에 물을 담아가서 머리위에 뿌렸던 공약 아닌 공약들이 떠오른다. 더불어 친구들 역시 즐겁게 웃으면서 몰표를 주었었던 기억들…. 오빠가 전교 학생 부회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오빠를 도와 색상지에 사진을 오려붙이고 예쁜 손 글씨(POP)로 공약을 써서 아침 등교시간, 점심시간, 하교시간에 피켓을 들고 서있기도 했다. 학교 교문 앞, 운동장을 친구들과 함께 기호
17세기 중국 명청교체기에 어떻게 100만명에 불과한 만주족(여진족)이 백배가 넘는 1억명의 중원을 정복하고 지배했는지 미스테리다. 물론 다양한 분석이 제시된 바 있는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명으로 지도자의 식견과 포용력, 그리고 실용주의를 들 수 있겠다. 여진이 여러 부족으로 갈라져 있던 16세기 말 건주여진의 추장이던 누르하치(청태조)가 여진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해 통일하고 후금을 세웠다(1616년). 그 후 홍타이지(청태종)에 의해 청나라가 세워지고(1636), 강건성세(康乾盛世)라 불리는 강희제와 건륭제까지의 138년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맏아들이 아니었다. 홍타이지는 8남, 순치제는 9남, 강희제는 3남, 옹정제는 4남, 건륭제는 4남이었다. 순치제의 숙부로 실질적으로 명을 멸망시킨 도르곤은 누루하치의 14남이었다. 홍타이지가 청나라 황제에 오를 때는 친형인 다이산까지 나서서 홍타이지에게 황위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장남이 황위를 계승하는 명에 비하여 실력이 있는 자에게 황제자리를 맡김으로써 국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홍타이지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명의 장점을 배워 나라를 정비했다. 명나라에 의해 고비사막 이북으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들으며 정일근 시인의 시를 읽는다. 시인은…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첨탑과 지붕이 붕괴했고, 내부의 유물도 상당 부분 소실됐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첨탑 보수공사를 위해 설치한 비계의 상부 쪽에서 불길이 시작돼 내부 목재 장식 등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 문화유산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하루 평균 3만여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관광명소이다. 성당 내부에는 ‘장미의 창’이라는 이름의 스테인드글라스, 대형 파이프오르간, ‘에마뉘엘’이라는 이름의 종 등 유물이 있고, 성 십자가, 거룩한 못 등 가톨릭 성물이 상당수 보관돼있다. 목재만 해도 가장 오래된 것은 1160년경 벌목됐다. 860년 가까이 버텨온 목재 구조물들이 한순간 화재로 허망하게 사라진 것이다. 이번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지난 2008년 2월 10일 밤에 발생한 국보 1호 숭례문 화재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국민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영욕의 역사를 지켜본 대한민국의 상징 숭례문이 순식간에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봤다. 이보다 앞서 2005년에는 강원도 양양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식목일인 4월 5일 우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가 지난 11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결정문에서 일부 임신 여성들이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임신·출산·육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만약 자녀가 출생하면 어머니가 될 자신뿐만 아니라 태어날 자녀마저도 불행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낙태를 결심하고 실행 한다”면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해준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해 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원치 않는 임신은 축복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성계 등 낙태죄 폐지를 주장해 온 단체들은 헌재의 결정을 환영하고 나섰다. 그동안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며 헌재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진행해 온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한국여성단체연합 등 23개 단체 참여, 이하 공동행동)’은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2019년 4월11일은 그동안 여성을 통제 대상으로 삼아 책임을 전가해왔던 역사에 대해 마침표를 찍은 중대한 날” “역사를 바꿀 지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들어 낙태죄가 유지돼야
수원화성 동남각루의 연혁을 살펴보면, 1796년 7월 정조의 지시에 의해 창건되었고 어느 때인가 소실됐으나 그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 다만, 1917년 수원 지도에서 동남각루는 보이지 않고 치성만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소실된 하한선은 구한말과 일제강점 초기로 추정할 수 있다. 동남각루의 복원은 1978년대 수원성 복원정화사업 4단계에서 포함돼 1천682만원이 들었다. 동남각루의 해체보수는 2016년에 있었는데 당시 각루는 복원한지 약 30년이 되어 초석이 내려앉고 기울어진 상태였다. 공사 이전 보수설계 단계에 필자는 운 좋게 참가할 수 있었다. 보수설계의 목적은 현황시설을 그대로 해체복원을 하는 것이지만, 필자는 당시 해체보수를 통해 혹시 잘못된 문제가 있으면 원형을 찾는 기회로 삼고자 하였다. 역사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하고 이를 근거로 복원설계도를 작성했다. 그 결과 여러 문제점이 돌출되었는데, 첫째는 용마루의 방향이 남쪽을 향하지 않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점이다. 둘째는 계단이 있는 후면부에 계단이 중앙에 있고 벽이 흙벽으로 되어 있는 점이다. 셋째는 1층에 있는 군인이 사용하는 온돌방의 위치가 성벽 쪽에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복원에서는 의
21세기 들어서 더욱 중요해진 것이 교육이다. 창의적 인간을 기르기 위해 나라마다 교육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으며 그 목적도 한결같이 국가 경쟁력 제고에 두고 있다. 따지고 보면 창의력이 중요한 까닭은 개인의 생존과 직결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과거 변화 속도가 느린 사회에서는 창의력이 없어도 선배들의 지혜와 생활방식을 익히면 평생 동안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었다. 따라서 학교에서도 축적된 문화유산을 전수하고 선조들의 지혜를 가르치는데 힘써왔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사회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이나 생활방식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처하면서 살아가기 힘들어졌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아마 가정에서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냉장고, TV, 에어컨, 세탁기, 컴퓨터, 휴대폰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전자제품들은 출고 된지 3년만 지나면 신제품에 밀려 고물이 되고 만다.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적 특징을 2016년 타계한 미래학자 엘빈토플러는 신기성·잠시성·다양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기성이란 모든 변화 양상들이 놀라울 정도로 신기하다는 것이다. 각종 전시장에 가보면 어제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신기한 제품들이 즐
…
두레마을에서는 이번 주에 감자 심기에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내일까지 심으면 500여 평 심게 됩니다. 우리가 심는 감자는 여느 감자와는 다릅니다. 대관령에 있는 국립감자종자연구소에서 농학자들이 개발한 신품종 감자를 종자로 받아 심고 있습니다. 오늘 심은 감자는 품종 이름이 ‘아리랑’입니다. 금년에 처음으로 실험장에서 나온 감자입니다. 아리랑 감자는 기능성 감자로 노화방지와 여성들의 피부 미용에 기여하는 특수 품종입니다. 두레마을은 국민들의 감자를 많이 먹기 운동을 시작합니다. 독일 사람들은 1인당 일 년 감자 소비량이 100㎏이 넘습니다. 유럽인 전체로는 80㎏ 이상입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소비량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작 13㎏ 정도입니다. 적어도 너무 적습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1인당 매년 감자 소비량이 30㎏ 수준으로 까지는 올려야 합니다. 문제는 좋은 품종의 감자를 개발하는 일과 병충해의 피해 없이 자연농법으로 깨끗한 감자를 기르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감자 농사는 특성상 독한 토양 소독제와 살충제 같은 유독성 농약을 사용하여야 하기에 이를 극복하고 자연농법으로 깨끗한 감자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도록 재배하여 보급하
상속세는 부의 집중현상을 조정하고 소득재분배 기능면에서 소득세의 기능을 보완·강화하는 사회정책적 의의를 갖는 조세로 이해되어 오고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도입된 우리나라 상속세는 재산규모에 따라 현재 10~50%의 누진율로 과세된다. OECD 국가 평균 상속세 최고세율이 26.6%인데 비해서 우리나라 상속세는 국제 비교해 높은 수준에 있다고 보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황망한 가운데 장례를 지내고나서 상속인들 간의 재산의 이전, 세금신고 등 법적절차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경우 최소 10억 원 상속공제가 되므로 상속재산이 10억 원 이하라면 상속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사망 당시 재산 뿐만 아니라 10년간 사전 증여한 재산·생명보험금·퇴직금·사망 전 2년 이내 처분해 인출한 재산으로 용처를 못 밝히는 재산도 상속재산에 포함되므로 이 모든 것을 합해 10억 원이 초과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상속재산은 돌아가신 분의 유언이 있는 경우에는 유언에 따라 분배된다. 상속인들이 동의 못하는 불균등유언에 대해서는 상속인의 최소한 권리를 유지하기 위한 민법상의 유류분 제도를 통해 법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