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황희(1363~1452)정승은 태조에서 세종까지 4명의 임금을 모셨고 영의정만 18년을 했다. 원칙과 소신을 견지하면서도 관용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해 전해지는 일화도 많다. 하루는 여종 둘이 싸우다가 한 명이 황희정승에게 달려와 상대방을 힐난했다. 황희정승이 “네 말이 옳다”고 하자, 싸우던 다른 여종이 자신은 억울하다며 상대방을 탓했다. 그러자 황희정승은 “네 말이 옳다”고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조카가 어찌 제대로 판정해주지 않느냐고 하자 “네 말도 옳구나” 했다는 이야기. 훗날 율곡 이이는 주자의 군자소인론을 따라 붕당론(朋黨論)을 폈으나, 심의겸과 김효원의 시비로 인한 동인서인의 당파싸움 조짐이 보이자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으로 바꾸어 보합조제론(保合調劑論)을 제시했다. 비생산적 논쟁을 끝내고 함께 조정에 나와 보다 막중한 국사와 민생문제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정신은 나중에 영조의 탕평책에서도 확인된다. 물론 조선시대에 비생산적 대립이 많아서 이런 방안들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장기간의 국회파행과 여야 대립을 보면 이런 선현들의 지혜가 더욱 필요해 보인…
이별의 질서 /서안나 간절한 얼굴을 눕히면 기다리는 입술이 된다 한 사내가 한 여자를 큰물처럼 다녀갔다 악양에선 강물이 이별 쪽으로 수심이 깊다 잠시 네 이름쯤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피가 당기는 인연은 적막하다 내가 당신을 모르는 것은 아직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슬픈 육체가 육체를 끌어당기던 그 여름 당신의 등은 짚어낼 수 없는 비밀로 깊다 꽃은 너무 멀리 피어 서러움은 뿌리 쪽에 가깝다 사랑을 통과한 나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비애 우리는 어렵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내가 놓아 보낸 물결 천천히 밀려드는 이별의 질서 나는 당신을 쉽게 놓아 보내지 못한다 강물에 손을 담그면 당신의 흰 무릎뼈가 만져진다 봄은 연분홍 화신(花信)과 함께 남쪽에서 온다. 3월 하순 제주를 점령한 벚꽃은 섬진강과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마침내 4월 중순에는 춘천에까지 당도하여 활활 불타오른다. 봄꽃이 피면 사랑도 따라서 핀다. 나비와 새들이 어지러이 날아들고 바람은 간드러지게 살랑거린다. 바람의 애무에, 메말랐던 나뭇가지는 촉촉하니 물이 오르고 대지는 연초록으로 배경색을 바꾼다.이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에 이별이라니… 섬진강 평사리, 악양의 사내는 큰물처럼 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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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원조(元祖)를 자처하는 나라는 여럿 있다. 이탈리아도 그중하나다. “로마시대 네로 황제가 시칠리아섬 에트나산 정상에서 가져온 만년설에 과일 등을 섞어 먹은 것이 최초의 아이스크림 기원”이라 주장하고 있어서다. 그런가하면 그리스 사람들은 기원전 5세기에 눈가루에 꿀을 섞어서 먹었다며 원조를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것을 아이스크림이라기 보다는 셔벗의 원조에 가깝며 2세기경 우유와 쌀을 얼려서 혼합해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은 자신들이 원조라 주장한다. 아이스크림을 얼음이라는 의미의 ‘글라세(Glace)’라고 부르는 프랑스도 원조격에 낀다.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다. 1774년 루이왕가의 요리사 ‘제랑드 티생’이 최초로 우유와 크림을 사용하여 아이스 디저트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후 아이스크림은 200년 동안 부유층의 전유물로 이어져 왔다. 그러다 1851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제이콥 푸셀’이 남는 크림은 얼려서 보관하면서 대중화되었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만국박람회에선 와플 장수와 아이스크림 장수가 공동으로 와풀에 아이스크림을 담은 콘을 선보였고 곧바로…
시골에 한 농부가 살았다. 그에게는 외동딸 하나가 살았다. 그는 딸을 애지중지 키워 대학까지 보냈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고향으로 내러오지 않았다. 거의 소식도 끊어졌다. 그는 딸이 궁금했다. 사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딸이 살고 있는 서울로 찾아갔다. 낯선 길을 물어물어 겨우 딸이 살고 있는 지하 단칸방으로 찾아갔다. 농부가 문을 두드리자 딸은 죽을상을 하고서 아버지를 맞이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이 측은해서 물었다. “얘야? 무슨 좋지 않는 일이라도 있니? 왜 그렇게 얼굴이 상했느냐?” 그러자 머뭇거리고 있던 딸이 대답했다. “아버지, 저는 지금 되는 일이 없어요. 직장을 구할 수가 없어요. 이력서를 내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요. 그래서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아요. 그런데다 며칠 전부터 독감에 걸려 이렇게 시름시름 앓고 있어요. 병원에 가도, 약을 먹어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요. 뿐만 아니에요. 제 꼴이 이러니 사귀던 남자친구조차 등을 돌렸어요. 저는 이제 어떡하면 좋아요, 아버지?” 딸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
지난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로 304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중인 한국인 33명(패키지 관광객 30명, 인솔자 1명, 현지 가이드 1명, 사진작가 1명 추청)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해 많은 한국인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상황이다. 이처럼, 잊을만하면 터지는 해상 참사에 대해 온 국민은 슬픔에 잠겼으며, 국·내외 여행, 체험을 막론하고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있으며, 최근 발생한 헝가리 유람선 참사에 대해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조사를 위해 촉각을 다투고 있다.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헝가리 유람선 참사의 원인으로는 대형 크루즈선과의 충돌, 유람선 구명조끼 미배치, 미착용, 악조건인 기상상황을 들고 있다. 이날, 기상여건이 좋지 않아 대부분의 관광객이 선체 내부에서 구명조끼 미착용 상태로 있었다고 한다. 이상하게 사고의 원인을 언론을 통해 듣다보면, 잊혀지지 않은 악몽으로 자리잡은 세월호 참사와 헝가리 참사가 오버렙이 되어 온다. 출항시 악조건의…
2014년 /최문자 2013년 다음에 2015년이었으면 좋겠어 오늘도 어김없이 건초 더미 사이로 2014년이 보인다 (………) 삶과 죽음 어느 것이 더 무서운가 죽음은 죽자마자 눈을 더 크게 떠야 할 삶이 기다리고 있다 남자는 뭉텅뭉텅 사라지는 중이었고 나는 왼쪽 폐 반을 자르고 진통제 버튼을 계속 누르다가 살아나는 게 무서워 함부로 하나님을 불러냈다 매일매일 새까만 풀씨가 날아와 물에 젖고 차가운 흰 꽃이 피고 미숙하고 슬픈 기사처럼 함부로 시계바늘을 돌렸다 절벽과 산맥을 넘다 밤늦게 돌아와 미래가 적힌 달력을 찢었다 - 시집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 2019·민음사 어디에 도착했다는 것은 어디선가는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처럼 가장 지우고 싶은 시간은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살아나고 그 자리에 예기치 못한 꽃마저 피어난다. 생애의 절벽과 산맥을 넘어 어디론가 돌아온다는 것 혹은 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허허로우며 찢고 싶은 미래인가. 시인이 들여다 본 카이로스의 시간, 지금과 겹칠수록 그의 시가 누군가의 영혼 속에 유영하고 있음을 시계바늘처럼 느낀다. 슬
지난 5월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30대 젊은 집배원의 과로사에 대한 내용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충남 공주시 한 우체국에서 3년째 집배원으로 일하던 중 5월 13일 새벽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만34살 비정규직 집배원의 형이었다. 청원내용은 우체국 집배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것이었다. 청원인은 동생이 “과중한 업무와 부족한 인력으로 산더미처럼 밀려드는 일을 매일같이 강도 높은 일을 묵묵히 하다 새벽에 차가운 몸으로 변했다“고 탄식했다. 청원에 따르면 고인이 맡은 지역은 이동거리가 많은 농촌지역으로 하루 배달한 우편물량은 1천200여건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전국 집배원 평균보다 200건 이상 많은 것이라고 한다. 기록에는 오전 8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6시에 퇴근했다고 되어있지만 기록과는 달리 매일 2~3시간 연장근무를 해야 했고 우편물을 집에까지 가져와서 분류작업을 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주말에도 밀린 일을 하러 나가야 했고 상사의 이삿짐 운반, 사택에 키우는 개똥 청소, 사료주기 등 개인적인 일도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청원 내용이 맞다면 정규직이 꿈이었던 고인은 상사의 사적인 일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에만
모든 처음은 낯설고 설렌다. 그래서 사람들은 ‘첫’자로 시작하는 모든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도 모른다. ‘첫’사랑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은 16일 새벽 또 하나의 ‘첫’을 경험했다. 국제축구연맹(FIFA6777) 주관 남자축구 결승 진출이 그것이다. 20살 이하의 젊은 발들이 이뤄낸 기적. 아니, 국민들의 염원이 하나 돼 만든 역사겠다. 정정용 감독이 이끈 한국팀 이야기다. 이들은 폴란드 우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FIFA 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한국 남자 축구사상 FIFA 주관 대회 첫 준우승이라는 역사를 쓰며 ‘새벽 감동’을 국민들에게 안겼다. 박수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자 대표팀이 지난 2010년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인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U-20 여자월드컵 3위를 차지했으니 남자들이 조금 더디게 일궈낸 수확이기는 했다. 그래서 기쁨이 두 배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영웅’들을 맞이하는 국내 분위기도 분주하다. 대한축구협회는 영웅들을 환영하는…
통도사는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경남 양산에 자리한 통도사는 수도권에서 출발해 다녀오기에는 늘 큰맘을 먹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통도사는 불자가 아닌 필자에게도 큰 의미로 와 닿는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보사찰로 불리는 통도사로 여행을 떠나보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르면 통도사 진입로인 ‘무풍한솔길’을 만난다. 물론 왼쪽으로 차도가 나있지만, 사찰여행에서 사찰의 첫 이미지를 결정하는 첫 만남을 무정하게 차로 할 수는 없는일, 당연히 오른쪽으로 나있는 숲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1㎞ 남짓 걷게 되는 무풍 한솔길은 우거진 나무숲을 아치 삼아 꽤나 넓은 도보길이 나있다. 통도사는 전각들의 배치가 조금 독특하다. 왼쪽으로는 통도사 전체를 휘감고 흐르는 물길이 있고, 물길 건너편으로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전각들은 위에서부터 3개의 영역으로 구분해 상, 중, 하의 이름을 붙여 상노전, 중노전, 하노전 영역으로 구분한다. 아래 하노전부터 차례로 만나보자. 천왕문을 들어서면 하노전이 시작된다. 하노전은 여느 사찰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물이 걸려있는 범종각과 만세루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하노전의 가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