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초,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직 후, 수유리 통일교육원 대강당에 통일부장관을 비롯한 전 직원이 모였었다. 청와대 안보실의 41세 김태효 비서관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강의요지는 한마디로 통일부는 가만히 있으면 되고, 올 여름이 가기 전에 북한은 굴복할 것이며 핵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다. ‘비핵, 개방, 3000’정책에 대한 확신이 도를 넘어 신앙으로 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이 후 통일부 과장보직이 15개 정도 축소되고 전임 정부의 활발했던 대북사업들을 대부분 잠재워야 했던 암울한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북한 핵문제 대두 후 지금까지 수 십 차례 가해진 UN, 미국, EU 등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굳건히 버텨오게 했던 그 본질적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그들이 내세우는 자력갱갱,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시장경제적인 사고틀로 북한 경제를 이해하려다 보니, 조금만 압박을 지속하면 북한경제는 붕괴될 것이고 결국 굴복할 것이라는 오해 때문이다. 6.25전쟁 이후 미국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으로 북한은 폐쇄적 자립경제와 산업의 지역분산 등으로 전쟁에의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내핍과 자립을 내세우면서 대외의존도를 극도
“대한민국은 심리적 G8 국가 반열에 올랐다.” 지난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담에 참여하여 활동한 성과에 대한 여당 대변인의 평가다. “심리적”이라는 형용에서 정부·여당의 ‘G8 한국’에 대한 열망과 아쉬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2021년 영국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에도 당시 여당은 “사실상 G8 도약”이라고 자찬한 바 있다. 왜 G8인가? G8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1976년 출범한 G7 정상회의는 냉전 시대 “자유세계의 운영위원회”로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고, 냉전 붕괴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였다. 2008년 미국·유럽발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G8(당시 러시아 포함)만으로는 대처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한국, 중국, 인도 등 중견 국가들을 포함한 G20이 대안으로 등장하여 세계 금융시장을 성공적으로 안정시켰다. 이후 세계 경제, 기후 문제 등은 G20 중심으로 운영되고, G7은 상대적으로 퇴락하였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G7은 재결집하는 반면, G20은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G7을 포함한 일부 국가만 참여하는 등 분열하고 있다. G7과 G20은 향후
경기도가 오는 2026년까지 신축과 민간·가정 어린이집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매년 국공립어린이집을 170곳씩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큰 틀에서 보면 국공립어린이집 증설은 ‘인구 절벽’ 위기시대에 필연적인 선택이다. 이런 정책이 잊을 만하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곤 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폐해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유아교육을 정부가 전면 책임지면서 수준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출생아 수 감소에 따른 인구 절벽 조짐은 경기도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외부전입에 의해 전체인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경기지역 출생아 수는 2018년 8만8175명에서 2022년 7만5300명으로 5년 새 1만3000여 명(14.6%) 감소했다. 영유아 수도 같은 기간 81만6247명에서 65만4856명으로 16만1391명(20%) 줄었다. 이런 이유로 폐원한 경기지역 어린이집도 5년간 4098곳이나 된다. 국공립어린이집도 같은 기간 28곳이 문을 닫아 현재는 1370여 곳이 운영 중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의 선호도가 높은 것은 당국의 인건비 지원 덕분이다. 국공립은 국비 50%, 도비 25%, 시·군비 25% 지원으로 만 0~2세 영아반의 경우…
역사가 잊은 사람 중에 신동 이갑이 있다. 1877년 평안남도 숙천에서 태어난 이갑은 겨우 열두 살에 진사시험에 급제했다. 나이를 세 살 올려서 응시한 결과였다. 집안과 이웃들에게 크나큰 경사였다. 그러나 이 경사가 멸문의 화를 불러왔다. 당시 평안감사 민영준은 이갑이 나이를 속여 진사시험에 응시했다는 이유로 이갑의 아버지를 끌고 가 갖은 고문을 했다. 극에 달한 민비 일족의 위세를 등에 업은 민영준은 이갑 집안의 농토 40정과 재산을 빼앗았다. 고문후유증과 화병에 시달리던 이갑의 아버지는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며 ‘원수를 갚아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부패한 세상을 바로잡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복수심을 안고 서울로 올라온 이갑은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1898년 동경으로 건너가 일본육사 15기생으로 입학했다. 그의 동기생들은 대부분 19세 전후였는데, 그는 26세였다. 그럼에도 그는 휴식시간에도 총검술을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육사 15기 동기생 중에는 한국인도 7명이 더 있었다. 한국인 동기들은 이갑을 중심으로 뭉쳤고, 스스로 ‘8형제배’라고 부르며 결속을 다졌다. 같은 평안도 출신으로 뒷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참모총장과 군
그림 하나가 하루를 점령한다. 일본 세키네 쇼지의 ‘죽음을 생각한 날’. 일본 배낭여행 중인 아들에게 남편이 SNS 가족방을 통해 보낸 글 중에 있었다. 학교를 자퇴한 열일곱 살 아들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유럽에 이어 일본을 떠돌고 있다. 아들이 나라 밖 문화, 예술을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남편은 거의 매일 ‘일본 예술 정보’를 보낸다. 세키네 쇼지의 그림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 어두운 나무들 속,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한 사내가 고개 떨구고 걸어간다. 그 배경 모두, 남자의 등을 누르는 십자가로 보인다. 또 다른 그림, ‘신앙의 슬픔’은 어떤가. 어두운 들판을 걷는 다섯 여인, 죄지어 끌려가는 듯도 하고 순교의 길인 듯도 하다. 손에 든 꽃은 사약처럼 느껴진다. 흰옷의 여인들 사이에서 혼자 붉은 옷을 입은 여자. 고개를 유달리 모로 꺾은 그 여인에게 시선이 오래 간다. 아, 그 여인의 배경 또한 십자가로 보인다. 사내와 붉은 옷 여인의 사연이 궁금하다. 미치도록. 화가에 대해 찾아본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스무 해를 살고 폐병으로 죽었단다. ‘죽음을 생각한 날’을 열여섯 나이에 그렸다는 것을 알고 충격받았다.
경기도의 미래발전 전략을 놓고 ‘경기분도론’이라는 큰 어젠다가 던져졌다. 본지는 이번 주 모두 5회에 걸쳐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이슈를 심층기획 보도했다. 한강 수계로 구획된 경기북부지역의 상대적 저발전 문제는 여러 통계 지표들을 통해 실증되고 있었다. 경기북부지역 주민과 기업의 그간 고통과 인내에 보답해야 한다는 문제인식은 같으나 해법을 둘러싸고 중앙부처, 여야 정치권, 기초지자체 간 다양한 의견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으로 한 틀로 찍어내기가 어려워 보인다. 와중에 경기북부지역에 속한 고양시는 ‘경기북부경제공동체’ 제안을 하는 등 특별자치도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경기분도론은 1987년 집권 민정당이 대선공약으로 최초 제기해 지난 36년간 선거철만 되면 출몰했다가 사라지는 담론이었다. 다수 도민의 삶속에서 끄집어낸 상향식 의견 수렴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하향식으로 “우리는 경기북부 주민들을 위해 이런 행정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이식하려 했다. 이번은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경기도지사가 사상 처음으로 공론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동연표 특별자치도’는 어떤 과정을 거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지 살펴보자. 첫째, 도민의
북쪽 고향에 있을 때 옆집으로 함흥여자가 시집왔다. 목소리도 굵고 행동도 씩씩한 그는 결혼 전까지 직장 출근하면서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러한 성실함으로 당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렵다는 입당도 했다. 공로가 커서인지 함흥여자는 내가 사는 동네에 시집와서도 괜찮은 직장 간부를 하게 되었다. 함흥여자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아 참으로 피곤했다. 어려웠던 1990년 고난의 행군 시기가 되자 많이 유연해졌다. 본인 자신도 아이 넷에 시부모까지 살려야 하는 생사의 기로에 있었다. 그리고는 동네에서 제일 먼저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라고 하면 부끄러워할 때 체면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나 했다. 나는 함흥에 외사촌들이 살고 있고, 친언니도 그곳으로 시집을 갔기에 함흥으로 자주 다녔다. 그때 만났던 함흥여자들은 억척스럽다. 억양이 높은 함흥 사투리로 말시비가 붙으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몸치장은 덜 하더라도 집 안에 있는 그릇은 빛이 나도록 반짝이게 닦는다. 남쪽에서 함흥 출신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개성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함흥여자들로 어쩔 수 없는 지역 특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북쪽에서는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