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노선은 사업자 소유가 아니라 시민들의 교통권을 대신해 편의 제공 및 서비스 향상에 책임이 수반되는 운수사업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오산시 갈곶동 233의1 (주)시원운수 송정휘(54) CEO.
고작 버스 2대를 10년도 안돼서 67대로 늘린 신화창조(?)의 장본인이다.
지난 2000년 무렵 도내에서 마을버스 업계의 대부로 불렸던 송 CEO의 이름 석자 앞에 붙었던 수식어다.
그가 운수업에 발을 들여 놓은 건 78년 제대 후 2년간 종사했던 농사를 접고 화물차 핸들을 잡으면서 인연이 됐다.
택시, 트럭 운전경험을 밑천으로 91년 인천 부평에서 출발한 마을버스 운수업을 시흥과 부천까지 연계하며 97년까지 몸이 부스러질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다.
사업기반과 노하우를 축적한 그는 같은해 용인으로 옮겨 2대로 시작한 마을버스가 해마다 사세 확장에 따라 30개 노선을 운행하면서 2005년 사업종료 시점에는 67대로 불어났다.
극도로 악화된 건강 문제와 어머니가 별세하면서 어쩔 수 없이 15년간 올인한 마을버스업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년쯤 휴식을 가졌던 송 CEO는 옛 동료들의 권유로 지난해말 평택 성호여객에 이어 지난 1월 오산 창운여객을 인수했다.
부실노선과 경영난으로 허덕이던 2개 운수회사(시내버스)를 기사들의 임금체불 등 내부 문제까지 말끔히 해결하고 정상궤도에 올려 놓았다.
이제 대중교통 운수업이 그에게는 피해가지 못할 천직이 돼 버린 셈이다.
형언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지금의 송 CEO를 존재케 한 원동력은 근면·성실을 가르쳤던 아버지 송두규(90)옹이 버팀목으로 지켜줬기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였던 송 옹은 30대 중반인 53년 2월 평택에 요셉고등공민학교(현 학교법인 한광학원 산하 한광중·고등학교)를 설립한 교육자.
4남매를 둔 송 CEO는 또 우리말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장남 바위솔(22), 장녀 한별(20), 차녀 한비(12), 차남 시원(8)으로 이어지는 우리말 이름은 그가 예전에 수족처럼 부렸던 마을버스에도 ‘한별교통’·‘한비운수’·‘시원교통’·‘시원운수’란 이색적인 명칭을 붙일 정도로 남달랐다.
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솔선수범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용인 서북부장애인복지센터 후원회장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 부평사회복지시설 이사 등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서 구절 처럼 어려운 이웃을 보듬고 있다.
또한 설을 앞두고 사회복지시설을 도와 달라며 지난 9, 12일 평택시와 오산시에 라면 2천 박스(시가 2천800만원)를 기탁했다.
85년 부천에서 택시를 운전할때 택시강도를 검거, 용감한 시민상도 받았던 그는 無心之道(무심지도-마음을 비우면 길이 보인다)자세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자’는 평범한 좌우명을 강조했다.
송 CEO는 “준법·안전운행을 통해 시민들이 편안하고 쾌적하게 버스를 이용하는데 정성을 다하고,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직원들이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성심을 바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산=조윤장기자 j60@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