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밥에 어떤 돌이 들었느냐. 토벌도 새문안 거지바위, 배꼽바위, 문턱바위, 문바위 동구재 배꼽바위, 밧바위, 유갈골로 내려 필운대 삿갓바위…’ 민요타령처럼 해발 630m의 관악산은 돌산이다.
그런 만큼 그 자신은 무척 답답한 산이기도 하다. 집채보다 더 큰 바위를 가슴에 얹고 머리에 이고 사는 것이 오죽 고통이겠는가.
수십억 년을 그렇게 묵묵히 사는 모습이 일견 대견스럽기조차 할 정도다.
경기 5악(岳)으로 꼽히는 관악은 봄이면 온갖 꽃들이 군락을 이뤄 피는 것도 아니고 가을이면 빨강 노랑 단풍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화려한 산도 아니다.
그럼에도 수도권 시민들의 가장 사랑받은 산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관악을 택하는 연유는 무엇 때문일까.
관악산 등산길은 여러 갈래이나 가장 애용하는 코스는 과천향교를 옆에 끼고 올라가는 길이다.
조형미가 뛰어난 다리 밑으로 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 흘러온 계곡물은 산천어나 쉬리가 노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맑디맑다.
땡볕이 기승을 부릴라 치면 제법 넓은 웅덩이에 개구쟁이들이 텀벙 뛰어들어 재잘거리는 소리가 숲 사이로 퍼져나가고 늦가을이면 갈색 낙엽이 그 물위에 무임승차해 세상구경에 나선다.
가끔은 주변정취를 훔쳐 화폭에 담는 무명화가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과천향교에서 정상 아래인 연주암까지는 3.2㎞.
쉬지 않고 걸으면 1시간 거리나 기왕 산행을 즐길 참이면 주변경관과 땅을 뚫고 올라온 온갖 식물들의 활기찬 생기를 몸과 마음을 느끼며 가도 좋을 듯 싶다.
계곡을 끼고 난 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관악산 정상을 향하는 첫 번째 고비인 깔닥고개를 만난다.
경사가 가팔라 자연 상태라면 미끄러지기 십상인 이 고개는 등산객 편의를 위해 돌계단을 만들었지만 끝나는 지점에 달하면 호흡은 가빠오고 숨은 턱에 찬다.
별로 짐스러워 보이지 않는 배낭을 메고도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동행에게 뒤쳐진 등산객이 “어제 술을 과하게 먹었더니 힘들구먼” 하고 혼잣소리같은 변명을 늘어놓는 최초시점이기도 하다.
목이 탈 즈음 바위틈새에 솟아나는 약수터가 기다린다.
‘향을 사름은 마음의 악취를 없애고자 함이며 촛불을 밝힘은 마음의 어두움을 밝히고자 함이며 맑은 물은 마음을 청정케 하고자 함이며…’.
타는 듯한 목마름에 약수 한 모금을 들이켜 갈증을 달려고 고개를 들어보면 언제 누가 새겨놓은 지 불분명한 네모반듯한 오석에 새긴 글귀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약수터 주변엔 10여명은 족히 앉아 쉴만한 너럭바위가 있어 돌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면 다람쥐가 사람과 눈을 맞추며 숨바꼭질을 하자고 말을 거는듯 하다.
관악산엔 땃쥐, 두더지, 멧토끼 등 16종의 야생 포유류가 산다.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연주암 500m’란 이정표가 나타날 즈음 숨 가쁜 오름세는 다시 이어지고 연주암에서 들려오는 불경과 목탁소리가 산자락을 파고든다.
신라 문무왕 17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연주암 경내에 들어서면 세월의 더께가 곳곳에 묻어날 만큼 사찰은 고색창연하다.
삼층석탑과 효령대군 영정 등 문화재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주암으로부터 정상부분에 오르기 직전 바위를 깎아 만든 수백계단은 등산객에게 정상의 자리를 쉽게 허용 않겠다는 관악산의 마지막 자존심이 버티고 있는 자리다.
부처에게 삼천배를 해야 불가의 깨달음을 주듯 관악은 이 계단을 오르는 이에게만 신의 걸작품인 기암괴석을 접하는 영광을 안겨준다.
죽순이 솟아오른 듯한 모양의 기암절벽은 절리(암석의 갈라진 틈)의 절묘함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그 위에 석축을 쌓아 만든 암자인 연주대는 필설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정경이 빼어나다.
바위 틈새에 뿌리박고 끈질긴 생명을 이어온 참나무 등은 기암괴석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사진작가들이 관악산을 찾는 이유가 오로지 이 한 컷을 담기 위해서다.
연주대에는 고려말 충신들의 망국의 한(恨)과 조선조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의 애틋한 사연도 담겨 있다.
2평도 채 되지 않은 연주대 암자에 이르기 전 삼각형 모양의 바위에 오르면 관악산 최정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과천시가지와 여의도 63빌딩, 명주 폭처럼 굽이쳐 흐르는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양주와 광주의 중첩된 산들의 능선이 여인의 허리처럼 물결 같은 곡선을 그리며 다가온다.
쾌청한 날이면 사방 100리가 훤히 보이는 정상의 전망은 관악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연출할 수 없는 정경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도 남는다.
하산길 막바지엔 예전 선술집을 연상케 하는 음식점들이 나래비를 선다. 시장기와 지친 다리를 달랠 겸 파전에다 막걸리 한잔 걸치면 산행으로 인한 피로가 싹 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