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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민주주의 고귀한 희생”

소설가 임철우

‘그해 5월 광주에서의 체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으리라.’ 소설가 임철우(53)씨가 장편소설 ‘봄날’의 집필을 끝낸 후에 꺼냈던 말이다.

 

임씨에게 광주는 하나의 운명이었다. 평론가 남진우씨는 작가란 천형(天刑)을 달게 받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세상과 끝없이 몸을 섞는 일을 형벌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의 형벌 또한 마찬가지였던 듯싶다.

 

“5·18은 민주주의 고귀한 희생”

 

 

“여러 곳에서 얘기했지만, 난 특별하게 한 것이 없다. 다만 한 사람의 시민이었을 뿐. 군중과 함께 몇 개의 돌멩이를 던지고, 개처럼 거리에서 쫓겨 다니고, 분노와 공포, 절망과 슬픔에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고…… 그게 전부이다. 내 선배들과 친구들 중엔 항쟁의 중심으로 뛰어들어 싸우다 죽고, 끌려가고, 행방불명된 이들도 있지만, 난 정작 겁에 질려 징징 울고 다니기만 했을 뿐이다. 그 일에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그 이후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고백하자면, 분노와 슬픔뿐만 아니라 바로 그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나 자신을 작가로 살게 했고, 감히 5월을 소설화하는 일에 매달리도록 한 것 같다.”

소설가 임철우는 자신이 겪은 광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임씨에게 광주는 그런 형벌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택한 것이 아닌 하늘에 의해 결정되는 것. 이는 한 시대를 고민하는 이들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 끝에 임씨는 지난 90년대 한복판에 5권짜리 장편소설 ‘봄날’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80년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긴박하게 돌아갔던 5·18 광주 민중항쟁을 힘겹게 들려줬다.

소설 ‘봄날’의 집필을 위해 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을 물었다.

“80년 당시에도 그랬고, 그 후로도 줄곧 꾸준히 자료들을 모아 왔다. 작품집필 기간이 10년이었지만, 자료 수집은 20년 내내 해온 셈이다. 증언과 체험은 넘치도록 많았다. 내 자신과 주변사람들, 아니 당시의 수십만 시민들 모두가 증언자이고 체험자였으니까. 가장 접근하기 힘들었던 건 군 측의 자료였다. 도중에 집필을 3년 정도 중단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다행히 청문회를 계기로 계엄군 측의 자료들이 많이 나오게 되어, 문제가 많이 풀렸다. 느낀 점이야 너무나 많다. 피해를 당한 이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한 발 비켜서있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 망각해 버린 과거의 진부한 사건들일 뿐이다. 그 완벽한 망각과 무관심이 때로는 전율을 느끼게 하고, 지독한 절망감에 빠지게 만들곤 했다. 어쩌면 나로서는 사람들의 그 망각과 무관심에 맞서겠다는 생각에 더더욱 작품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임씨는 현재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소설가이자 교수로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평범하다. 나이 때문일까. 그의 말 속에서는 뜻 모를 아쉬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학생들에게 소설 창작 실습 과목을 주로 가르치고 있다. 강의실에서는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있지만, 집필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아쉬움을 항상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뛰쳐나가겠다는 용기는 못 내고 산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서 조금만 무리해도 힘이 들고… 그 대신 절충안의 하나로, 학교 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최대한 집필과 구상에 쏟기 위해 가급적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행사 따위에 나가지 않고 지낸다.”

문득, 임씨가 쓴 작품 ‘봄날’의 작가노트가 궁금해졌다.

“내 청춘시절의 거의 전부를 바친 소설이니, 아무래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봄날’에 매달려 온 지난 10년 동안 무척 힘겨웠다. 때로는 더는 버티지 못할만큼 힘들고 지쳐서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실제로 그중 2년 동안은 아예 완전히 손을 놓고 지내기까지 했다. 그래도 끝내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끈질기게 몰아세웠던 것일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지금껏 나는 한번도 이 작품을 오롯이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수많은 원혼들의 육성을 대신 전해주는 ‘무당’의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는 자기암시에 한사코 매달렸다. 그러지 않고서는 참혹하게 죽어간 망자들과 팔십만 시민들의 그 엄청난 분노와 슬픔을 혼자서 감당할 만한 힘도 도저히 내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술에 취한 밤, 망월동을 찾아가 ‘제발 나 좀 도와주시오. 너무 지쳐서 더는 못하겠소’하고 울면서 무덤 사이를 헤매기도 했다. 나는 신내림을 원했던 모양이다. 이 소설은 결국 하나의 ‘푸닥거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임씨에게 있어 ‘봄날’은 무척이나 힘들었던 작업임에 틀림없었다. 아마도 이런 형벌이 아니었다면 쉽게 해내지 못했을 작품이었다.

그의 근작인 장편 ‘백년여관’에 등장하는 소설가 이진우를 떠올렸다. 책 속의 한 문장을 그에게 건넸다. ‘그래. 결코 지난날을 잊어서는 안돼. 망각하는 자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 기억해. 기억해야만 해. 하지만 친구야, 그 기억 때문에 네 영혼을 피 흘리게 하지는 마.’ 작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역사랄까 삶에 대한, 내 개인적인 신념이기도 하다. 어디 꼭 광주 항쟁 뿐이겠는가. 개인에겐 그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바로 그 사람 자신의 ‘총체’를 이루는 것처럼, 역사는 한 사회, 민족, 혹은 국가가 관통해 온 시간들의 총체이다. 개인이건 사회건 과거에의 무지와 무관심은 기억상실증을 가져온다. 기억상실증에 빠진 사회의 미래는 끔찍할 뿐이다.

한 화자의 말은 어쩌면 내 자신에게 하는 위로랄까 변명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의 소설가는 분명 나의 분신이랄 수도 있다. 그동안 너무 힘들어했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나 자신에게 건네는 자기위로 같은 것이랄까. 혹은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이젠 좀 더 건강하고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한참 뒤늦은 깨달음 같은 것이거나…….”

그는 말끝을 흐렸다. 분명, 자신이 세상 밖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말인 듯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써 27년이 지났다. 이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정말 20년도 더 지난 일이 되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도 내겐 바로 23년 전 일 같은데. 아마 그때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심정은 더 할 것이다. 물론 세월만큼이나 세상도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그사이 ‘양아치 불순분자들의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폭도들의 무덤들은 국가유공자 묘소로 바뀌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정직하게 자문해보자.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5.18은 진정으로 완전하게 복권된 것일까. 아직도 내심 편견과 무지와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이 땅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는 않는가. 부디 이런 새삼스런 내 질문이 잘못된 것이길 바란다. 하지만 해마다 이날이 와도, 기념식이 열리는 곳은 광주 지역 말고는 이 나라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너도나도 화해니 치유니 쉽게들 말한다. 하지만 혈육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유가족들, 부상자들, 내적 상흔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것이 그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 자신들의 몫으로 껴안는 일, 그것만이 진정한 화해와 위로가 될 것이다.”

임씨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 같았다. 세상을 보는 시선에 여유가 느껴졌다. 힘겨운 작업 끝에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5.18은 분명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자, 정의와 진실을 사랑하는 민중의 값진 싸움이라는 점을 우리는 종종 잊고 있다. 그건 패배가 아니라 영원한 승리의 기록이고, 우리 역사에서 당당하고 찬연히 빛나는,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의 기록이기도 하다.”

임씨의 천형은 아직도 유효한 듯 했다. 자신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그것에 대해 지속적인 창작활동이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10년 넘게 장편에만 주력해 왔다. 이젠 다시 짧은 호흡을 가진 단편소설도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근래 연작 형태의 소설들을 쓰고 있는데, 얼마 전 ‘문학사상’에 연재를 마친 연작소설을 올 가을 쯤 출간할 계획이고, 단편 서너 개를 올 해 발표할 예정이다. 물론 소재가 생기면 언제라도 장편은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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