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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에 대한 무관심 20년후 사회문제로 확산”

5월의 시인 하종오

시인 하종오(53)씨는 80년대에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와 ‘사월에서 오월로’ 등의 시집을 낸 바 있다. 이름 바 광주를 배경으로 한, 5·18광주정신을 바탕으로 쓴 민중시들이다. 이는 역사적 현실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법을 제시했던 시들이다.

 

하씨는 그 시절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눈을 떴던 오월에/저버린 사람을 저버리지 않았다 마라(시집 ‘사월에서 오월로’, ‘오월에3’中)’는 등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5·18민주화운동 27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서울 종로 인사동에서 시인 하종오를 만났다. 최근 그는 시집 ‘국경 없는 공장’과 ‘아시아계 한국인들’을 펴냈다.

 

“내가 생각하는 시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쓰는 시들은 말을 하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는 표현을 낯설게 하는 게 아니라 인물을 한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것이다.”

이번 시집은 외국인노동자의 삶에 대해 집요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은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하씨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같다. 80년대엔 5·18과 관련한 민중시를 쓰는가 싶더니, 90년대에는 고독한 자아 성찰의 길을 걷는 면을 볼 수 있는 ‘님시편’이나 ‘쥐똥나무 울타리’ 등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그는 90년대에 잠시 펜을 놓은 적이 있다. 절필은 아니었다. 잠시 시를 쓰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 무렵,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인천에 있는 강화도로 떠나 살았다. 이후 강화도에서 돌아온 이후에 쓴 시집들이 ‘쥐똥나무 울타리’와 ‘님시편’이다.

80년대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시인이 9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 어떤 사고의 변화를 거쳐왔는지 궁금했다.

“나는 80년대 민중시에서 작품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민중시들은 운동성이 강해지는 반면에 작품성이 결여되곤 했다. 나의 주장을 두고 외부에서는 문학주의라고 비난했다.”

문학이 프로파간다(선전)의 수단으로 쓰이는 과정에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기계적 전형성이 문학의 고유한 상상력을 훼손한 점이 없지 않았음을 볼때 그의 80년대에 대한 회고에는 씁쓸한 기억이 배어있다.

하씨는 민중시 가운데에서도 작품성을 강조해왔다. 그런 그를 가리켜 일각에서는 서정적인 민중시를 쓰는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90년대에 들어 내 시에 대한 실험적인 노력을 다 해본 것 같다. 내게 80년대는 격정적인 시기였고, 90년대에는 80년대의 격정을 걸러버렸다. 그래서 삶에 대해 다소 너그러워진 것 같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80년대 시인이라고 했지만, 문학평론가 고명철씨는 하씨가 이번에 쓴 시집의 발문을 통해 ‘하종오의 시는 그 생명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타오르게 하는 객토된 민족민중문학의 새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적고 있다. 그러고 보면 종잡을 수없는 하씨의 글쓰기는 끊임없이 시적 실험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봇물 터지듯 시를 써내고 있다.

그의 이번 시집은 코시안들을 담고 있다. 그가 주목하는 이들은 외국, 특히 동남아시아 여성들이며,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을 온 여성들과 도시 변두리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다. 그들의 소외된 노동은 과거 한국의 여성노동자들이 하던 일이었고 이제는 그자리를 동남아시아 여성노동자들이 대체하고 있다.

하씨는 이와 관련해 농촌의 문제도 지적한다.

“노동을 해도 잘 살수 없으니 (젊은 여성들이) 농촌으로 시집을 안 간다. 그래서 농촌 남성들이 장가를 못가니 외국인 여성들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2세들이다. 이들이 초·중학교 다닐 나이가 되고 있다. 아버지가 가난하고, 어머니가 한국말을 못하니까. 아이들이 겪어야 할 문제는 크다. 이들은 가난의 재생산 구조에 포박돼 있다.” 하씨는 이제 달라진 사회경제적 토대 위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약자가 되고 있다며 이들의 삶에 주목한다.

“80, 90년대의 사회적 약자는 교육을 못 받은 여성이었지만, 현재는 한국으로 시집온 동남아시아 여성들이다. 또 그들의 아이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한국인으로 정착하기 위해 도움을 줘야한다. 이들이 이 사회에서 건강한 일원이 되기 위한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대로 방치된다면 2세들이 성장하며 많은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합법이든 불법의 신분이든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가정을 꾸려갈 것이고 이들과 이들의 아이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10년 내지 20년 이후에도, 이들이 정착하지 못하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하씨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외국인노동자가 겪고 있는 삶의 고통이다. 시인은 작품을 통해 한국의 가난한 농촌으로 시집온 아시아 여성들의 실존적 문제를 헤아린다.

“외딴집 젊은 여자가 앞섶 풀어진 채/외마디 지르며 마당으로 뛰쳐나왔다/강간하지 말아욧//겉늙은 사내가 고의춤을 잡고/한마디 내뱉으며 뒤따라 나왔다/부부관계 안 하려면 결혼 왜 했냐!//순간 시어미가 방문 벌컥 열고는/고래고래 소리쳤다/네년을 베트남에서 데려오느라/몇 년 농사진 것 다 들었다/갈 테며 2천만원 내놓고 가!”(‘아시안계 한국인들‘중 ‘코시안리18’ 부분).

하씨는 시를 통해 코시안들의 실존적 문제에 천착하며 머지않아 한국에서 혼혈적 존재들이 한국사회의 또 다른 주체로서 당당히 제 몫을 떠안아야 한다고 전망한다.

“머지않아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아내가 부른 배 부등켜안고 있으면/남편이 쳐다보며 웃었다/첫 아이 낳아도 혼혈이라는 것/둘째 아이 낳아도 혼혈이라는 것/아내는 생각하지 않았고,/걔들이 농토의 주인이라고/걔들이 가문의 후손이라고/사내는 생각하였다(‘코시안리6’ 부분)

이번 시집에서 약간의 달라진 점은 조심스럽게 사회문제를 표출하고 있는 점이다. 80년대 그가 쓴 시들과 맥을 잇고 있는 점이기도 했다.

하씨는 산문과 운문의 경계가 없는 글을 추구해왔다.

“너무 거친 표현인데, 소설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어떤 것이 소설 같은 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 시집에 장시가 있는데 그런 시를 쓰기 위한 형식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운율로 드러낼 수 있는게 많다. 시가 그 장르적 특성을 잃지 않은 채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로 확장되게 하고 싶다.”

그의 시쓰기는 끊임없이 실험될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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