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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선 광복절 잔칫날인데… 정작 대한민국은…

62년전 고국땅 밟을 수 없던 러시아 동포들의 8.15
日징용 가서 맞은 ‘해방의 감격’ 못잊어

“우리에겐 광복절이 가장 큰 명절이어서 한달전부터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는데 여기 와서 보니 광복절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고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

 

1945년 8월 15일 당시 사할린에서 조국의 광복을 맞아야 했던 최인호(81)·정병기(81)씨는 광복절 맞는 우리나라의 무심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영주귀국해 인천사할린동포복지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인호씨는 1994년 4월 일제에 의해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가 1년이 넘도록 토목공사 등에 동원되며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일본이 전쟁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군수물자를 조달하는데 혈안이 돼 조선사람들을 사할린으로 끌고 갔었다. 비행장 활주로를 닦는 토목공사에 대부분이 동원됐는데 밤낮 쉬는 시간이 없이 일을 시키고 제대로 못하면 때리면서 시키고….”

이렇게 하루하루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 최씨는 광복을 맞았을때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하게됐다는 얘기를 들은 그날, 모두들 기뻐서 덩실덩실 뛰고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다. 그 끔찍한 노역을 그만 해도 되고 드디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어찌나 좋았는지….”

최씨처럼 사할린에서 강제 노역을 한 장병기씨는 “조선이 독립됐다는 얘기를 듣고는 모두 뛸듯이 기뻐했는데 원통하게도 광복 이후 일본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갈 수가 없게 돼 또다시 절망해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군이 철수한 후 구 소련이 사할린을 통치하게 되면서 이 곳에 있던 조선인들은 무국적자로 분류돼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통제된 것.

결국 대부분의 조선사람들은 소련 국적을 얻고 사할린 현지에서 탄광에 종사하거나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했다.

비록 조국으로 갈 수는 없었지만 광복의 기쁨을 기리기 위해 사할린 동포들은 해마다 8월 15일이면 술과 푸짐한 음식을 먹고 씨름, 그네 등의 놀이를 하며 큰 잔치를 열었다.

최씨와 정씨는 “대부분의 동포 1세대가 사라진 현재 사할린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점점 시들고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마저 광복절에 대해 무심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인천사할린동포복지관은 15일 처음으로 광복절 기념 잔치를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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