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공직에 몸담은 이들이 가장 가슴 벅차올랐을 때는 언제일까. 행정고시(行政考試)나 그와 동등한 자격을 통해 5급으로 공직에 입문한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사무관(事務官) 승진’을 꼽는다.
현재 9급과 같이 밑바닥부터 시작한 공무원들은 산업화와 현대화 그리고 복지국가를 이루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봉직했다. 새까만 머리는 반백이 됐고, 늦은 밤 귀가 후 얼굴을 비비던 아이들은 성장해 청년이 됐지만 서먹하다. 그저 공직이 천직이겠거니 살면서 하루하루 ‘공든탑’을 쌓아왔을 뿐 아버지로서 역할을 할 시간이 없었다. 이들에게 꿈이 있다면 ‘사무관’이 되는 것이다. 누구처럼 시장이나 군수 혹은 국장으로 출세하고자 하는 욕심은 일찍이 버렸다. 하지만 사무관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이자 인생의 전부다. 그리고 공직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최소한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사무관은 5급 공무원으로 대부분이 행정공무원인데 중앙부서와 경기도 등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는 팀장(계장)으로 불리며, 일선 시·군·구에서는 과장(課長)으로 1개 과를 통솔한다. 6급인 주사에서 사무관으로 승진하면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우선 사무관 승진자들이 가보처럼 보관하는 임명장을 받는데, 여기에는 국새와 대통령 직인이 박혀있어 받는 사람은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무궁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처음으로 직원들을 거느리는 메인 책상에 앉아 결재를 하고, 때로는 부서를 대표해 회의에 참석하기도 한다. 읍·면·동장으로 부임하면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대접을 받는다. 월급도 인상되고 정년과 출장비 등에서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하지만 눈에 드러나는 이런 변화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자부심을 대신할 수 없다. 흔히 노령의 사무관 승진대상자들은 “학생부군신위는 면해야 할 거 아니야”라며 승진의 절박감을 표현한다. 여기서 학생부군신위란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는 제사 때 쓰는 지방이나 묘비에 사용되는 명칭을 이른다. 사무관이 되면 학생이라는 명칭 대신에 사무관이라는 직명이 박힌다.
요즘 사무관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5급 승진시험은 사라졌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승진을 결정짓는 기초자료는 근평으로 불리는 근무평가다. 공직경력, 주요부서 근무경력, 상급자의 평가, 상벌사항 등이 종합된다. 여기에 직렬별 균형까지 맞아야 비로소 사무관이 눈앞에 다가선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인사권자의 입맛에 따라 ‘조직안정’ 혹은 ‘발탁’이라는 명목으로 승진서열이 춤을 추기 때문이다.연말연시 정기 인사철이다. 투명한 인사는 공무원을 춤추게 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