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드라마
감독 : 데이비드 젤너
출연 : 키쿠치 린코
대도시 도쿄에서 살아가는 29살의 쿠미코는 누구보다 절박한 외로움을 느낀다. 장래가 없는 회사 생활과 모욕을 주는 상사,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매력적인 후배들, 결혼을 재촉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까지, 쿠미코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쿠미코는 동굴 속에서 영화 ‘파고’의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한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남자가 눈밭에 돈가방을 묻는 것을 본 쿠미코는 그 보물이 실재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결국 회사 법인 카드를 훔친 쿠미코는 직접 만든 보물 지도를 들고 얼음 덮인 미네소타를 가로질러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한 예측 불가능한 여정을 시작한다.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의 중심에는 코엔 형제의 1996년작 ‘파고’가 있다. 쿠미코는 우연히 발견한 영화 ‘파고’를 계속 돌려보다 마침내 테이프가 늘어지자 가차없이 변기에 버리고 ‘파고’ DVD를 산 다음 다시 영화에 몰두한다.
얼마든지 복제 가능한 영화 매체의 속성을 모독하는 듯한 이 장면 외에도 쿠미코가 무모한 여행을 준비하고, 마침내 도착기까지 모든 여정은 갖가지 디테일로 가득차 있다.
한편 쿠미코가 그토록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본 이유는 ‘보물지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TV 화면과 지도의 축척을 고려해 가며 자기 나름대로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보물지도를 만들고, 헤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천에 수를 놓는다. 지도가 완성되자 유일한 친구였던 토끼 ‘분조’를 방생하기 위해 데리고 나간다. 애통한 마음으로 토끼를 내려놓았지만 가버리지 않자, 쿠미코는 “분조! 자유야 자유라고!”라며 고래고래 소리침으로써 토끼가 아닌 자신이 부자유스러운 심리에 놓여 있음을 부각시킨다.
재미있는 디테일과 허를 찌르는 대사는 쿠미코가 미네소타에 도착하고 극대화된다. 황량한 도로를 달리던 중 버스기사는 갑자기 손목 터널 증후군을 호소하며 운전대를 놓는다. 정지된 회사 법인카드를 모텔 주인이 카드를 긁고, 또 긁는 장면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세심하게 묘사돼 웃음을 안겨 준다. 쿠미코에게 진심 어린 호의를 보여주는 경찰관은 중국 식당 주인에게 통역을 부탁하지만 중국인과 일본인 사이에도 언어가 달라 소용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장면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이처럼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는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영화다. 묘사가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우리는 쿠미코가 하려는 것이 여행이기보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목표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추구하는 순례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 만든 미로에 들어간 쿠미코가 반복해서 소통에 실패하고 코너에 몰리는 과정을 쫓다 보면 어느 순간 관객은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민경화기자 mkh@